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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Jan 08. 2020

춤바람 난 아내

고무라면 연상연하 커플 부부 이야기


   상황 #1


   저녁 7시 20분. 띠리링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보글거리는 김치찌개를 매몰차게 뒤로하고, 앞치마를 한 남편은 아내를 반긴다. 가정 경제를 위해 종일 일하느라 기진맥진해야 마땅할 그녀는 지친 기색도 없이 갑자기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춤을 추며 격한 반가움을 표한다. 그 현란한 골반의 궤적에 연하 남편은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몹시 힘들다. 찌개는 가차 없이 쫄아만 가는데, 댄스에 심취한 그녀는 멈출 기미가 없다.


   상황 #2


   아침 8시 10분. 앞치마를 채 벗지 못한 주부 남편은 출근하는 아내를 배웅하기 위해 현관문을 박력 있게 열어재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 짧은 틈새를 참지 못하고, 아내는 나를 바라보며 엉덩이로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은 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으로 정자세를 취한다. 시크한 손짓으로 ‘안녕’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도하게 자취를 감춘다.






   해가 넘어간 세월의 얄궂음에 혹시 (섭섭하게도) 고무라면을 잊으셨거나, 난생처음 제 황당한 글을 접하신 분을 위해 간략히 소개를 하자면, 저는 연하이고 남편이고 주부입니다. 실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인데, 방학이 되면 부산에 계신 누님 아내의 외조를 위해 주부로 돌아와요. 누가 봐도 만만하고 한심한 B급 에세이를 지향한답니다(쩝). 뭐 이런 개인적 사정과 문학적 지향점 따윈 아무도 관심 없을 테지만, 저는 많이 그리웠어요. 글쓰기와 독자님들이.





   이제 겨우 본론으로 돌아와(저는 이토록 융통성 있는 남자랍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춤바람이 나버렸다. 우아한 몸짓의 발레리나도, 귀엽고 풋풋한 아이돌도, 무대를 휘어잡는 댄스 가수와도 거리가 먼 30대 중반이 된 그녀가 춤 맛을 어찌 알아버린 걸까. 유감스럽게도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재작년 가을, 운 좋게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초대받았다. 나름의 눈물겨운 사연이 있었다.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나는 14년도에 남아공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현지에서 먹었던 남아공식 BBQ, 브라이(Braai)를 잊지 못한 채 지금껏 살아왔다. 인생은 개척하는 사람의 것. 그 맛을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느끼기 위해 대사관에 ‘나도 브라이 파티에 가고 싶다!’라는 공손한 메일을 보냈고, 그들도 내 간절한 소망에 남몰래 눈물을 훔쳤는지 ‘환영합니다'라는 답장을 받았다. 거기에 아내를 데리고 갔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실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아프리칸 음악이 튕겨져 나오는 비트에 온몸 구석구석을 격하게 흔들어 대는 흑인들의 댄스를 눈앞에서 목격한 것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아프리칸 소울로 충만한 춤은 그 아우라가 엄청나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심장이 두근두근 뛰게 하며,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눈이 휘둥그레 할 정도로 역동적인 마력이 넘친다. 마침 노래 한곡이 나오자 수많은 흑인과 백인들이 느닷없이 떼창을 부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려하고 유연하며 일사불란하고 파워풀한 군무를 추니, 오랜만에 이런 광경을 마주한 나조차 압도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마땅히 옆자리에 있어야 할 아내는 어느새 저기 외국인들 사이에서 같이 춤을 추고 있네. 그 후로는 틈날 때마다 엉성한 댄스를 즐기는 그녀다.



   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내의 골반이 매우 걱정된다. 최근 검사 결과 골반이 약간 틀어졌다고 하는데, 이게 다 그녀에게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준 내 탓이 아닌가 시시때때로 자책이 든다. 허나 남편이 아무리 말려도, 소울 넘치는 그녀의 아프리칸 댄스를 말릴 길이 도통 없어 보인다. 이런 연유로 난 지금 대단히 우려되면서도 퍽이나 난감하다. 이러다 조만간 헤드스핀까지 마스터하시려는 건 아닌지.



   굳이 말씀드리자면, 나는 아프리카 교환학생 당시 ‘댄스 동아리’ 활동을 했다. 의기양양하게 아프리칸 댄스를 배우고자 가입했으나, 흑인들의 힙한 몸짓과 우월한 몸매에 심히 주눅이 들었다. 결국에는 타고난 몸치란 걸 스스로 깨닫고 나니, 동방에서 온 한류 병풍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이왕 춤 얘기가 나왔으니까 그런데, 중후하고 멋지고 느끼하게 이 말만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쉘 위 댄스?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거라잖아요. 독자님들 모두 녹록지 않은 삶일지라도, 춤추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꾸벅.



* 후. 이제 다시 조심스럽게 글쓰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게 바로 남아공식 BBQ, 브라이(Braai)랍니다. 맛있겠쥬? 아... 먹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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