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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유 Aug 17. 2022

IT 회사에 비(非)개발자로 취업했습니다

IT 회사에는 개발자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IT 회사에서 일한다’고 나를 소개하면 십중팔구는 '개발자세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그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하는 순간 다들 갈곳을 잃은 눈빛이 된다. 이해는 된다. 최근 몇 년새 '개발자'라는 직업의 수요가 급증하고 대우도 좋아지면서 유망 직종으로 부상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당연히 IT 회사의 직무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IT 회사에 취업한 비전공, 문과생 출신 개발자들의 경험담이 주목을 받는 반면, 상대적으로 비개발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는 것 같다.


나는 IT 회사에 취업한 문과 출신 비개발자다. 약 3년간 IT 회사에 마케터로 입사해 PR, 영업, 고객 관리까지 다양한 부서의 비개발직군으로 일했다. ‘비’개발직군이라고 표현하니 마치 ‘연예인 A씨, 몇 살 연상의 ‘비’연예인과 결혼’과 같은 기사 제목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실제로 내가 일한 회사에서는 직군 체계를 개발직군과 비개발직군으로 분류했다. 회사 인력의 대부분이 개발자다 보니, 직군 체계에서도 힘의 무게가 쏠린다고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개발자 중심의 IT 회사에서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느낀 비개발직군의 이상과 현실은 어떨까? 만약 영화나 드라마에서 찾으라고 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장면들을 고르고 싶다.


이상: 멋들어진 PT로 모두를 홀려버림 (드라마 <미생>)
현실: 배 밑바닥에서 죽어라 노 젓는 격군들 (영화 <한산>)


IT 회사에서 마케터, 영업사원, 고객 관리 매니저는 최전방에서 고객과 제품을 연결하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내가 기획한 마케팅 콘텐츠의 반응이 좋거나 신규 계약을 따낼 때 희열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는 물밑듯이 들이치는 문의와 불만, 그리고 갑작스레 해지하겠다는 고객들 때문에 괴롭기도 하다. 배 밑바닥에서 죽을동 살동 노를 젓고 있는데 갑자기 방향을 틀라고 하면 또 미친듯이 방향을 틀어 노를 계속 저어야만 한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어떤 회사의 어떤 직군이든 그들 스스로가 격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순신 장군의 해전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를 해냈기 때문이니, 그 누가 격군인들 중요하리오.


물론 나의 경험을 모든 IT 기업의 사례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니 오해하지 말자. 내가 이 이야기를 쓰려는 이유는 단지 신세 한탄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조차도 입사 전후로 이 세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탓에 많이 헤맸던 경험이 있어서다. 업계 종사자들, 또는 취직을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쓰게 되었다. 더불어 IT 회사를 이끌어가는 다양한 직무에 대해서도 좀 더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이 매거진을 만들기로 결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망설였다. ‘과연 내가 남들에게 얘기해줄 만큼의 성공을 한 적이 있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개발자와 밥을 먹었다. 그는 요즘 개발자 블로그를 쓰고 있다고 했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 실은 나도 쓰고 싶은데 "성공 사례는커녕 어정쩡한 실패담뿐이라 못 쓰겠다”고 슬그머니 고백했더니 그가 말했다. 실패한 결과면 어떻냐고. 나도 실패한 사례까지 다 쓴다고. 그래서 이것은 성공기가 아닌 실패기에 가깝다. 아무렴 어떤가, 인생은 실패로 가득하고 우리는 항상 그 실패에서 배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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