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시대정신을 잡아야 살아남는다

<비상선언> & <범죄도시2>

by KinoDAY

2022년 여름, 길었던 팬데믹의 터널 끝에서 한국 영화계는 마침내 햇빛을 마주했습니다. 그러나 그 빛의 의미는 달랐죠. 누군가에게는 땡볕과도 같은 여름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환하고 쨍한 여름날이었습니다.


전자는 <비상선언>, 후자는 <범죄도시2>의 이야기입니다. <비상선언>은 흥행과 비평 양쪽 모두에서 실패했죠. 반면에 <범죄도시2>는 팬데믹 이후 첫 천만 영화라는 금자탑을 쌓는 데 성공했습니다.


두 영화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화려한 캐스팅과 스타 감독의 협업, 뛰어난 기술적 완성도와 흥행에 유리한 여름 성수기라는 외적 요소를 갖추고도 왜 <비상선언>은 <범죄도시2> 만큼 관객을 사로잡지 못했을까요?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나올 수 있고, 바이럴 마케팅 논란처럼 외부적 요인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작품 내적으로도 두 작품의 결정적 차이는 존재합니다. 바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 변화를 포착했느냐, 그러지 못했느냐'죠. 그 핵심 키워드는 '희생'과 '복수'입니다.



<비상선언> - 희생은 더 이상 선함의 덕목이 아니다


딸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을 무릅쓰고 인천발 하와이행 KI501 항공편에 탑승한 '박재혁(이병헌)'. 그는 공항에서 딸에게 이상한 말을 하던 '류진석(임시완)'이 같은 비행기에 탄 것을 보고 불편함을 숨기지 못하며 비행기 사무장인 '김희진(김소진)'에게 진석의 수상한 점을 알린다. 한편, 형사팀장인 '구인호(송강호)'는 류진석이 바이러스를 이용한 살인 용의자이며 전날 비행기 테러 예고 영상을 올린 사실을 파악하고 수사에 착수한다. 그 와중에 기내에서는 온몸에 수포와 각혈이 증상을 보이다 죽은 사망자가 나오고, 부기장 '최현수(김남길)'는 승무원들과 승객들의 동요를 막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점점 기침과 가려움을 호소하는 승객들이 늘어나면서 비행기 안은 혼란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에 국토부 장관 '김숙희(전도연)'는 대테러센터를 구성하고 비행기를 착륙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한국의 재난 영화와 세월호 사고

<비상선언>에 앞서 잠시 한국의 재난 영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는 공동체의 집단적 경험을 비추는 창이죠. 특히 재난 영화는 스크린에 투사된 가상의 재난을 매개로 현실의 재난을 비추어 보게 하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관객들은 가상의 재난에 맞서는 이들을 보며 현실의 재난을 이겨내지 못한 과거를 반성합니다. 함께 상처를 보듬고,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다짐도 공유하죠.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을 아름다운 혜성에 담아낸 <너의 이름은.>이 대표적입니다. 즉, 재난 영화는 오락 영화이고 스펙터클이지만, 동시에 사회를 비판하는 메신저입니다.


2014년 이후 한국의 재난 영화에서도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보입니다. 세월호 사고의 흔적이죠. <엑시트>의 두 주인공은 학원에 갇힌 고등학생들이 먼저 구조되도록 양보합니다. <터널> 속 유가족은 구조를 기다리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지만, 사회적 압력에 괴로워하고 살아남은 걸 미안해합니다. <판도라>처럼 무능한 정부 부처의 대응이 등장하는 건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죠. 이 모든 특징의 근간에는 공통의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부나 사회적 시스템은 재난에 빠진 우리를 도울 수 없다.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구원자도 없다. 대신 개개인의 인간적 연대로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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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를 투영한 항공재난영화 <비상선언>

<비상선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작품은 항공기 재난의 스펙터클을 활용한 블록버스터이자 한국 사회 속 세월호 사고의 트라우마를 비추는 거울이죠. 영화는 이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풀어냅니다. 전반부에는 재난영화에 기대하는 장르적 재미가 집중되어 있고, 후반부는 제 역할을 못 하는 시스템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개인들로 가득한 사회 드라마죠.


이 중 영화(감독)가 진짜 전하고 싶은 말은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앞서 본 한국의 재난 영화들과 궤를 같이하죠. 세월호 사고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정부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 그 빈자리를 채울 개인들의 연대가 후반부 1시간 20여 분의 러닝타임을 꽉꽉 채웁니다. 배가 아닌 비행기가 배경이지만 다양한 장치 덕분에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는 게 어렵지 않기도 합니다. 인솔자도 없이 교복을 입은 채 하와이로 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이 대표적이죠. 대통령의 부재도 상징적입니다. 얼굴은커녕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대통령 때문에 KI501 편은 그저 하늘을 배회할 뿐이죠. 안에서 사람들은 다치고 죽어가고 있고요. 이처럼 <비상선언>은 배경과 장소는 달라도 분명히 세월호 사건 당시의 충격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투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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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현실 비틀기

이때 <비상선언>은 현실을 두 번 비틀며 속에 품고 있던 진심을 꺼내 놓습니다. 먼저 판타지다운 방식으로 현실을 한 번 비틀죠. 그다음에 바로 그 판타지라는 껍질을 스스로 깨부숩니다. 부서진 껍데기 속에 개인의 희생과 연대라는 진주가 있기 때문이죠.


기내 생화학 테러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영화 속 정부 시스템은 멀쩡히 굴러갑니다. 경찰은 사소한 제보를 놓치지 않고, 신속하게 범행의 전모를 밝혀냅니다. 국토부 장관도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상황에 대응하죠. 청와대도 빠르게 대처 센터를 수립합니다. 이는 하나의 판타지입니다.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의 존재는 이 재난이 금방 해결될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줍니다. 비협조적인 제약 회사를 직접 압박하는 장관은 팬데믹 초기 일부 정치인들의 행보를 연상시킵니다. 세월호 사고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생일>에 출연했던 전도연이 국토부 장관을 맡은 건 판타지의 정점이나 다름없죠.


그러나 온전히 작동하는 이 시스템도 끝내 승객들을 재난으로부터 구해내지는 못합니다. '비상선언'의 의미와 효력을 상세히 설명하는 오프닝 크레디트와 달리 작중 '비상선언'이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듯이. 달리 말해 <비상선언>은 정부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영화이고, 판타지를 깨부수는 방식으로 그 불신을 표출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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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선언>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연대와 희생의 가치

대신 <비상선언>은 개인의 희생과 연대가 시스템을 대신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항공사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재혁은 관제탑 대신 자신의 직감과 판단을 믿는 것처럼요. 특히 개인의 희생이 쓸모없는 시스템과 리더의 부재를 대체할 수 있다고 강조하죠. 이 대목에는 개개인의 자발적 참여를 요구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팬데믹의 경험이 깃든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영화 곳곳에는 희생의 가치가 두드러지는 장면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희진은 감염된 와중에도 해열제를 승객들에게 양보합니다. 감염된 현수를 대신해 조종간을 잡은 재혁도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딸의 말을 듣더니 지상에 착륙하지 않겠다고 통보하죠. 지상에서 실험 대상을 자처해 치료제의 효력을 증명한 인호의 희생은 승객들의 희생에 보답합니다. 이처럼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덕분에 KI501편은 무사히 한국에 착륙하죠.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희생을 개인주의적 사고와 열망이 초래한 비극과 대조합니다. 그 중심에는 스마트폰이 있죠.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모바일 공간에서 승객과 가족들은 극심한 악플에 시달립니다. 마치 코로나 초기 확진자 신상털이를 보는 듯하죠. 악플은 이내 양극단으로 갈린 청와대 국민 청원으로 확대되고, 탑승자들의 착륙을 반대하는 시위로 확장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스마트폰에 또 다른 의미를 더하면서 메시지를 극대화합니다. 지상에 착륙하지 않겠다며 죽음을 각오한 승객들이 암흑 속 비행기에서 하나둘 켜지는 핸드폰 화면에서 치료제 효능이 확인됐고, 착륙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개인주의적 욕망을 발산하는 도구가 개인의 희생과 연대라는 희망을 비추는 수단으로 변하는 것이죠. 이렇게 <비상선언>은 여러 방면으로 시스템의 존재가 무의미한 듯한 세상을 빛내 줄 개개인의 판단과 협력, 연대와 희생의 가치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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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담았지만, 코로나의 본질은 읽지 못한 <비상선언>

문제는 <비상선언>의 메시지 자체가 다양한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코로나 시국의 경험을 반영한 여러 디테일 때문에 세월호 사고를 투영한 이야기가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죠. 사실 영화의 여러 디테일과 전반적인 메시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해석도 가능합니다.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적 방역의 성공 서사는 구원자가 되지 못한 시스템을 대체할 것이다. 또 재난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길도 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듯하죠.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K를 생각한다>의 작가 임명묵이 지적한 것처럼, 이른바 K-방역은 부분적으로 한국 사회의 반자유주의적, 비민주주의적 시스템이 만든 결과이기도 합니다. 서구 국가들과 달리 마스크를 무기처럼 대량 생산하고, 의료 영역을 국가가 징발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할 수 있는 군사주의, 전체주의적 국가인 한국이기에 K-방역이 가능했다는 것이죠. 이 경우 <비상선언>의 메시지는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희생과 자유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더 깊어진 사실을 간과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즉,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개인의 희생을 곧추세우는 영화의 메시지는 자칫 단순한 집단주의, 전체주의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비행기 승객들은 세월호 탑승자를 연상케 하는 고등학생부터 평범한 민간인들에 이르기까지 그저 재난에 휩쓸린 이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착륙하지 않는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그 어떤 의무도 없습니다. 군인, 경찰, 소방관처럼 사회적 의무가 주어진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대목은 마치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마땅히 개인의 생명과 존엄,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승객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화상통화를 하며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은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체념 혹은 포기에 가까운, 자발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선택을 마치 대를 위한 소의 고귀한 희생으로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 같죠. 더 이상 개인의 희생이 당연하지 않으며 자유에 대한 감수성이 더 예민해진 지금 시대에는 적절하지 않은 감수성입니다. 따라서 사회 드라마로서 온전히 기능하려면 <비상선언>은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와 논쟁에 대해서도 충분히 답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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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선언>의 신파는 독이다

안타깝게도 바로 이 대목에서 <비상선언>은 동력을 잃어버립니다. 위 문단에서 답이 나오기도 하지만, 후반부에 범람하는 신파 때문이죠. 물론 <비상선언> 속 신파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로 활용됩니다. 영화는 희생에 이르는 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주목하죠. 그런데 러닝타임 상 모든 인물에게 충분한 서사를 부여하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다양한 캐릭터에게 주연급 배우를 배치합니다. 스타 배우들의 존재감으로 모든 인물에게 설득력 있는 감정선을 부여하려 하죠. 하지만 그 인물들의 수가 많고, 지상과 상공에 흩어져 있다 보니 그들의 감정선이 응축되지 않습니다.


결국 <비상선언>은 그 감정선을 신파적 연출로 대체합니다. 인호의 아내가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예상 할 수 있는 과잉된 감정선은 재혁과 현수의 악연을 거쳐 승객들 간의 연대, 그리고 승객들과 가족들 간의 화상통화를 거치며 절정에 달합니다. 하나의 영화로서 극적 완성도를 올리려는 시도로 신파를 선택한 것이죠.


하지만 흩어지는 개연성과 설득력을 한데 모으려는 신파의 연속은 영화의 메시지를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극단적으로 만든다는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 결과 <비상선언>의 신파는 시대에 맞지 않고, 위험해 보이죠. 비록 한국 영화의 신파가 흥행 보증수표였기에 이러한 선택을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 영화에서는 신파의 반복보다는 자가당착을 피할 수 있는 세심한 스토리텔링이 더 필요했을 거라는 아쉬움도 떠나지 않죠. 이는 <비상선언>이 팬데믹을 경험하며 개인의 자유와 희생 사이에서 더 예민한 감수성을 갖게 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원인일 겁니다. 이렇게 한국 영화계가 선보일 수 있는 최대 규모의 블록버스터 중 하나는 난파되고 말았습니다.




<범죄도시2> - 사람들은 이제 '희생' 대신 '복수'를 원한다


가리봉동 소탕작전 후 4년 뒤, 금천서 강력반은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가 현지 영사관에 자수했으니 그를 인도받아 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이에 베트남으로 향한 부반장 ‘마석도(마동석)'와 반장 ‘전일만(최귀화)'. 그들은 영사관에 갇힌 것을 꽤 만족스러워하며 하루빨리 한국으로 인도되기를 바라는 현지 용의자에게서 수상함을 느낀다. 찝찝한 마음에 베트남에 자리 잡은 한국인 조폭들 사이에서 수상한 사건이 없는지 수소문하던 마석도는 무자비한 악행을 벌이는 ‘강해상(손석구)'의 존재가 자수 이유였음을 알게 된다. 그는 더 큰 사달이 나기 전에 강해상을 체포하려 하나 예상치 못한 이유로 실패하고, 결국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은 과거의 인연인 '장이수(박지환)'의 도움을 받아가며 한국으로 되돌아온 강해상을 본격적으로 쫓는다.

<비상선언>의 실패는 새로운 의문을 낳습니다. 희생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 자유에 대한 감성이 더 깊어진 시대. "이 변화는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어디서 확인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비상선언> 이전에 등장한 한 영화는 이미 그 답을 알 수 있는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바로 팬데믹 이후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 <범죄도시2>죠.


흥행에 성공한 모범적인 액션 영화, <범죄도시2>

<범죄도시2>는 꽤 무난한, 어찌 보면 무난함을 넘어서서 모든 능력치를 잘 갖춘 육각형 공격수와 같은 영화입니다. 우선 전편에 비해 분량을 줄이고, 갈등 구조를 마석도와 강해상으로 단순화시키면서 착실히 판을 깔죠. 그 후에 빌런이 어찌할 수 없는 마석도의 초인적인 피지컬을 활용해 범죄자를 벌하는 액션의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립니다. 영화관을 울리는 마석도의 주먹 소리는 좀처럼 잊기 힘들죠.


마석도와 대비되는, 동물적인 움직임에 기반한 강해상의 액션 덕분에 눈이 더 즐거워지기도 합니다. 이에 더해 '진실의 방' 같은 유머도 타율이 높은 편이죠. 그 결과 딱히 단점도, 아쉬운 점도 없습니다. 흥행 면에서는 성공한 전편을 넘지 못하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완벽하게 극복했죠. 작품 내적으로 진일보한 매력 포인트는 다음 시리즈를 더욱 기대케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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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2>를 슈퍼히어로 영화로 본다면?

그런데 호쾌한 주먹으로 강해상을 때려잡은 마석도의 존재, 그에게 열광하는 영화 내외의 반응에서는 약간의 씁쓸함도 느껴집니다. 특히 마석도를 일종의 한국형 슈퍼히어로라고 생각하면 그 씁쓸함은 더욱 진하죠. 마치 99%짜리 다크 초콜릿을 먹는 것처럼요. 슈퍼 히어로라는 존재가 근본적으로 동시대 대중들이 느끼고 공유하는 상실감이나 결핍을 환상으로나마 치유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히어로의 활약상이 많은 공감을 사고 큰 환호를 받을 때, 그 히어로를 필요로 하는 현실에는 깊은 흉터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죠.


예를 들어 2000년대 미국의 슈퍼 히어로들은 미국 사회에 테러가 끼친 영향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장 아프가니스탄 테러 집단으로부터 탈출한 아이언맨은 슈트를 만든 후에 자기를 납치했던 테러리스트들을 공격하죠. 이는 미군의 이라크 침공이 9.11 테러라는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보복성 공격이었던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크 나이트> 속 배트맨의 영웅적 활약이 역설적으로 더욱 강력한 악당인 조커를 끌어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죠. 중동의 테러리스트를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미군이 오히려 ISIS와 같은 또 다른 테러 집단의 등장 원인이 되어버렸던 국제정치적 상황에 대한 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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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도를 향한 환호성에 담긴 진짜 의미

그렇다면 마석도의 활약 기저에 깔린 한국 사회의 흉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나날이 커지는 엄벌주의에 대한 갈망이 마석도의 주먹에 담겨 있죠. 엄벌주의는 사회문제를 형사처벌로 대응하고, 처벌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인식입니다. 달리 말하면 강한 처벌이 없기 때문에 특정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죠.


사실 가해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것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습니다. 해당 문제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며, 재발 방지를 약속할 수도 없죠. 처벌 강화를 명시한 '정인이 법'이 시행되었는데도 입양아가 죽는 사건을 막지 못했던 사례가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즉, 문제를 초래한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범죄자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엄벌주의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법과 제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 처벌과 후속 대책이 미흡하기 때문에 법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시스템이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이죠. 이처럼 사회가 혼란스럽고, 정의는 실현되지 못하는 듯 보이며, 서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부조리가 만연하면 결국 누군가가 강력한 힘으로 정의를 실현하기를 바라는 열망과 환상은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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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2>에 담긴 복수의 열망

이러한 관점에서 <범죄도시2>를 보면 마석도를 향한 환호와 응원이 마지노선 위에 아슬아슬 걸처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복수'가 있죠. 강해상에게 납치당해 죽은 아들 '최용기(차우진)'의 복수하려는 '최춘백(남문철)'의 행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아들의 실종신고를 하는 대신 직접 사람들을 보내 강해상을 죽이려 하죠. 경찰과 형사로 대변되는 원칙을 믿는 대신 금융회사 회장인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경제력을 동원해 사적 제재에 나섭니다. 물론 그는 엄연히 피해자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작중 도시 한복판을 혼란에 빠뜨리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만큼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영화는 마석도와 동료들의 입을 빌려 최춘백의 행동에 대해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죠. 그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영화 말미에 그가 불구속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단신이 유일하죠. 어찌 보면 범죄자에게,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직접 복수하는 게 틀리지 않다는 심리가 살짝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결국 법과 경찰의 시스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표출된 대목이고요.


특히 복수를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잡은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사실 복수라는 감정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됐을 때 생깁니다. 이때 개인들에게 주어진 권리는 생존권부터 명예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중요한 건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고, 또 구제받아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유를 깊고 예민하게 받아들일수록 자신의 자유는 물론 타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에 날 선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복수를 열망하게 만들죠. <비상선언>이 미처 담아내지 못한 변화를 <범죄도시2>는 정확하고 날카롭게 잡아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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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도의 주먹이 씁쓸한 이유

그래서 강하면 강할수록, 타격감이 좋으면 좋을수록, 효과음이 크면 클수록, 강해상과 범죄자들이 아파하면 아파할수록 마석도의 주먹은 탄성과 환호를 자아냅니다. 베트남 현지 경찰과 영사관의 저지를 무시하고 강해상을 추적하는 마석도의 모습도 사이다입니다. 현실에서는 국제적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쁜 놈은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열망이 마석도에게 반영된 모습이죠. 더 나아가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향후 제작될 <범죄도시> 시리즈도 쉽게 실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른 예상을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마석도의 주먹은 통쾌한 만큼이나 그 주먹이 필요한 이유로 씁쓸합니다. 유달리 큰 효과음 잔상이 뇌리에 길게 남기도 하고요. <비상선언>과 달리 <범죄도시2>가 극장가에 사라잡을 수 있었던 이유, 달라진 시대정신을 잡을 줄 아는 통찰력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


그래도 슈퍼 히어로 마석도가 배트맨 같은 자경단이 아니라 엄연히 경찰의 일원인 형사로 묘사된 점이 위안이 됩니다. 아직 마지막 선을 넘지는 않았으며, 무너진 사회적 신뢰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이 지점에서 엿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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