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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 Jan 20. 2023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로

사소한 풍경들이 달리 보일 때




이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새 휠체어는 참 반짝였다.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게 이런 걸까. 투박하게 생기긴 했지만 제법 튼튼해 보였고, 어서 빨리 시운전을 해보고 싶었다. 배송해 준 당일 집에서 휠체어를 타고 컨트롤러를 조작하며 앞으로 뒤로, 제자리돌기를 하고 속도를 높이고 내리면서 갑자기 설레는 마음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겠다!, 숨이 차지 않아도 되는구나.’ 앉아서 다녀야 한다며 슬퍼하던 나는 어디 가고 슝슝 달릴 생각에 들뜨다니. 아직 나가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지만 그래도 설레는 걸 어쩌나, 어서 빨리 인도 주행(?)을 기다렸다. 마치 이 기분은 운전면허를 처음 배우고 도로주행에 나갈 때의 기분과 같았다.


수동휠체어의 경우 내가 직접 바퀴를 밀어가며 팔 힘을 많이 써야 하지만, 팔 힘조차도 얼마 쓸 수 없는 내가 타기엔 무리여서 외출할 땐 전동을 택했다. 전동은 컨트롤러 하나면 전진, 후진, 회전 모두 내가 할 수 있었다. 집에서 조금 작동을 해보고 약간의 자신감이 붙어서는 산책을 하고 오겠다고 당당하게 엄마에게 말했다.


“절대안 돼. 혼자서 그걸 타고 어딜 나가?, 혼자는 나가지 마”


엄마에게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그동안 매일 밖을 나설 때, 한 발자국 떼는 발걸음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깨와 목에 힘이 잔뜩 가고 다리에는 힘이 없으니, 어디 얕은 턱에 걸리기라도 하면 주저앉게 되거나 넘어져버리기 일쑤였으니까. 그러던 내가 휠체어를 타고 혼자 나간다니. 그냥 나가는 것도 걱정이지만 엄마는 이것도 많은 걱정이 됐나 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나갈 날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기다렸다.

이후에 몇 번을 시도했지만, 엄마는 혼자 나가려는 나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결국 아빠의 퇴근 후 시간이나, 쉬는 날을 기다렸다가 처음으로 나가는 순간이 왔다.


드디어 첫 인도주행이다. 막상 나가려니 너무 떨렸다. 손을 컨트롤러 위에 올리고 위로 천천히 밀면서 작동했고, 집에서 테스트 운전을 해봤지만, 실내와 밖은 사뭇 달랐다. 수동휠체어와 비교하면 마치 작은 경차를 타다 세단으로 바꾼 기분이랄까? 심지어 속도도 최대 시속 10km까지(내 휠체어 기준) 가능하다니 마음에 들었다. 물론 속도를 내는 것보단 줄이고 천천히 다니는 걸 권했다. 위험할 수 있어 자주 속도를 내진 않았다. 평지에서는 수동이나 전동휠체어 모두 타고 다니기 좋지만,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인도는 생각보다 굴곡짐이 있었다는 걸 휠체어를 타면서 많이 느꼈다. 세상에 계단은 왜 이렇게 많은지. 평소 걸어 다닐 때 아무렇지 않게 다녔는데. 이젠 단 몇 센티의 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휠체어를 타면서부터는 장애물이 돼 버리니까. 그래도 전동휠체어는 무게와 힘이 있는 덕에 아주 얕은 턱들은 올라갈 수 있었다.


집 밖을 나서서 천천히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옆에서 아빠는 어떤지 물었고, 나는 평지이면서 직선구간이 나오자 속도를 올려 빠르게 지나갔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은 없었기에 할 수 있었다. 깜짝 놀란 아빠는 뛰어왔고 나는 제자리에 서서 한참 웃었다. ‘왠지 모를 통쾌함? 이 기분은 뭘까, 내가 앞서갈 수 있다는 기분이 이런 건가?’ 멈춰서 생각하며 웃음이 났다. 아파트 주변을 서서히 휠체어로 운전하며 한 바퀴 돌았다. 하나 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걷기에도 벅차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풍경이 보인다. 속도를 내면 센 바람을 맞고, 느리고 천천히 가면 살랑거리는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풀인지 꽃인지 모를 보라색 식물이 눈에 띄었고 잠시 멈추어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맞는 바람일지라도 행복감이 가득 차올랐다. 앞으로 다닐 생각에 신나고 기대감이 커졌다. 걱정이 기대감과 설렘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아파트 한 바퀴를 돌고 난 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생각보다 다니기 너무 좋아."

"아파트 뒤에 못 보던 벤치가 있었네?, 새로 생겼나 봐 산책하기 좋겠어!”

“조심히 다녀, 조심 또 조심!”


나가기 전이나 후나 엄마의 걱정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무사히 주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잠을 자기 전 밤에 휠체어를 타고 어땠는지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몸은 이전보다 편해질 수 있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했다. 백 프로 좋기만 했다면 거짓말이다.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도 휠체어를 타고 밖에서 다녀야 할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나 보다. 앞으로 받게 될 시선들, 내가 상처받는 상황이 많아질까 걱정되는 마음이 교차한 게 아닐까. 좀처럼 잘 울지 않는 엄마의 눈물에 담담하려 했던 나도 그 순간만큼은 무너졌다. 함께 울며 그 순간의 슬픔을 털어냈다.


모든 것들이 처음이었던 날.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내딛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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