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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Feb 22. 2023

숯불이 꺼지면 재는 찬다


한껏 타오르던 불이 꺼지면 그 자리엔 재가 남는다.


어둡고 아름답지만 곱진 않은 그 가루엔 어쩌면,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때론 그 온기가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준다.





번아웃.

이라고 말한다.


지쳐 쓰려져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


아니 할 수 없을 때.


오직 앞을 보며 달려온 우리가 어느 순간 갑자기 식어버렸다.


평소에 ‘나’라는 불에 기름이 되어줬던 모든 것들이 이제 소용없어졌다.


내가 밝혔던 불이 꺼지고 나자 나는 주위와 함께 어두워져갔다.





그냥 달려온 게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갖고 싶은 것을 잊으며


웃음 대신 집중을, 눈앞의 행복 대신 먼훗날의 행복을 선택하며 달려왔다.


그렇게 뜨겁게 타올랐던 내가 갑자기 비에 맞은 듯, 푹.


붉은 화염 대신 회색빛 연기만을 내뿜으며 그 자리에 멈춰있다.





노곤함과 허망함 중 무엇이 더 큰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맑은 하늘이 싫어 고개를 아래로 내린 채 걸을 뿐이다.


거울 보기를 거부하며 이윽고 어두운 색안경을 꺼내고 만다.


그러다 한번.


그토록 뜨거웠던 불이 차가운 물로 바뀌어 눈을 타고 흘러내린다.





우리는 그렇게 차가워져간다.


열기를 내뿜던 불이 열을 빨아들이는 재로 바뀌어간다.


나의 지난날들과 나의 흔적들이 모두 재로 바뀌어간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길 거부한 채


한줌의 재가 되어버린 하나의 삶을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한다.





‘나’를 향한 외면.


‘나’를 향한 신뢰와 격려의 손실.


그렇게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곳으로 스스로를 밀어넣는다.





시간이 지나고.


나에게서 어떠한 온기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되었을 때


완전히 재가 되어버린 나의 지난 시간을 바라본다.


어둡다.


결코 곱지 않다.


어느새 주변까지 검게 물들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불규칙적인 그 잿더미 사이에서 낯선 온기를 느낀다.


분명 다 식었어야 할 것들인데 어째서.





결론을 낼 순 없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 온기가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줄 수 있다.


어쩌면 그 온기만이 우리를 다시 일으킬 수 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여기에서 쉬어갔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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