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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Feb 03. 2023

공항에서

Road to Iraq (2)


  익숙함은 설렘과 함께 긴장을 잡아먹는다. 그래서 익숙함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 설렘과 긴장을 평생 누린다는 건 어쩌면 원대한 꿈일지도 모른다.

  공항은 처음 가 봤던 그 순간부터 설렘의 상징이 되었다. 기억을 되새겨보면 설렘이 너무 컸던 나머지 긴장했던 순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기억에는 항상 행복이 따라다닌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꼭 있을 것이다. 공항은 그런 곳이다. 항상 동반하는 설렘과 긴장이라는 두 감정 중에 설렘을 압도적으로 강하게 느끼게 하는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래서 공항이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 것도 맞다. 나이를 먹으면서, 더 많은 걸 경험하면서 우리는 그런 소중한 것들을 잃어간다. 점점 설렘은커녕 긴장도 사라지게 된다. 이 사실을 아이들이 알게 되면 아무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해서 어른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만들어낸 걸지도 모른다. 우리 마음속에는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이름 모를 본능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우리에게 들킬 때면 우리는 동심을 찾아 설렘을 느끼기 위해 발버둥 친다. 하루라도 일찍, 다 사라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나에겐 공항이 그런 곳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성인이 됐다. 커다란 숲 속의 작은 바위 밑에 살고 있는 한 마리 개미처럼 나는 나의 일을 했다. 새로운 환경, 그러니까 낯선 곳에서 직업을 가지고 사람들과 조화되어 살아가기 시작했다. 노력했다. 마음속으로 찡그린 표정보다 웃는 표정을 더 많이 짓게 되고 퇴근 후 쓰러진다기보다 조금 지친 하루였구나 생각하게 됐다. 나도 적응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해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곧 여유라고 불리는 그것이 생겨났다.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 빛나는 감정이 그리워서 주말에 혼자 공항에 갔다. 마음을 흥분시키는 설렘과 가슴을 뛰게 만드는 긴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웃으며 반겨줬다. 나는 그 설렘을 따라 책을 읽으러, 끄적이러, 걸으러, 하다 못해 밥을 먹으러 공항에 갔다.

  한 번, 두 번 공항에 갈 때마다 나는 점점 무뎌져 가고 있었다. 차라리 중독될 수 있는 것이라면 중독되고만 싶었다. 중독과는 반대로 나는 완전히 공항을 익숙하고 당연한 곳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마음의 거리가 멀어져 갔다. 이제 아무 감흥이 없는 장소는 말 그대로 어떠한 감정도, 흥분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내게도 그런 장소가 이미 몇 군데 있었다. 이제 공항도 그 목록에 포함되려고 했다. 그래서 공항에 가길 멈추고 오히려 공항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에 이번에 업무의 목적으로, 다시 말해 해외 근무를 위해 공항에 오게 됐다.

  오랜만에 만난 인천공항은 반가웠지만 바쁜 상황들이 연속되어 충분히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원래 일 때문에 찾은 공항이 이런 얼굴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예상만큼 아쉽지 않았다. 그저 거쳐가는 승강장으로 제 역할을 다할 뿐이었다. 그런데 환승역으로 내린 두바이공항은 조금 다른 인상을 풍겼다. 같은 공항이었지만 분명히 다르게 느껴졌다. 낯설다는 건 그토록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설렘과 긴장은 여전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지만 나는 그곳에서 잠이 깨는 순간을 맞이했다.

  

  두바이 공항에 도착한 건 현지 시간으로 새벽 다섯 시 즈음이었다. 더울 줄만 알았던 중동은 쌀쌀한 공기로 우릴 마중했다. 이곳의 겨울도 분명히 겨울이리라. 끝나지 않을 줄 알았던 사랑이 막을 내리듯 사막에도 비가 내린다. 같은 논리로 이곳에서도 패딩을 입는다. 매섭진 않더라도 추위라는 것은 우리가 옷을 여미게 만들었다. 그런데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니었다. 반팔과 반바지 차림으로 자신의 겨울을 뽐내는 사람들이 두툼한 겉옷을 입은 우리 일행을 지나쳐갔다. 추위는 상대적인 것이다. 상대적이지 않은 게 있겠냐마는, 막상 눈으로 보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밤 사이 내린 대설로 고통받았다는 한국의 소식을 어찌 믿을 수 있으랴. 피부에 와닿는 온도가 달라지니 한국이 더 멀어져 버렸다. 벌써 우리라고 부를 수 없는 그들로 느껴졌고, 그들의 이야기는 공감되지 않는 하나의 소식이 되었다. 이미 시차가 다섯 시간 멀어졌으니 그럴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내 속마음은 이를 인정하기 싫어했다. 씁쓸해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우리는 환승게이트를 통과해 사람으로 가득 찬 여러 모퉁이를 지나쳤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같은 비행기에 탔던 사람들은 공동의 도착지가 있었지만 이곳은 그렇지 못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 어쩌면 지구의 반대편에 각각 도착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스쳐 지나갔다.

  이동하다 만난 승강기는 나의 잠을 가장 먼저 깨웠다. 공항은 끊임없이 자동으로 저 혼자 오르고 내리는 커다란 승강기를 설치해 뒀다. 승강기는 우리 일행에게도 그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마치 공항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을 잘 알고 있다고 얼른 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겁고 커다란 캐리어 여러 개를 싣고 카트를 질질 끌고 다녔야 했던 인천공항에도 이런 녀석이 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란 생각이 우리 일행 모두에게 반짝하고 떠올랐을 것이다. 크기도 크고 움직임도 둔해 보이는 것이 가로로 세 개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새벽인데도 이렇게 성실히 움직이니 낮에는 말할 것도 없겠다. 해가 졌을 때 해가 떠 있을 때만큼 열심히 살려면 정말 기계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승강기는 냉정하게 자신의 일을 이뤄냈다. 입을 벌리고 사람을 삼킨 채 중력을 거슬렀다가 사람을 뱉었다. 위층에 도착하자 우리도 한 번에 내뱉어졌다.

  두바이 공항은 깔끔했으며 충분히 길을 잃을 만큼 컸다. 또 복잡했다.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기적의 오일시티는 공항에도 적잖은 기름을 부었다. 한글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구불구불한 아랍어가 적힌 크고 작은 간판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참 이국적이긴 했다. 친구에게 메신저로 “진짜 외국 온 것 같다, 사람은 많은데 한국인이 아예 없다”라고 말했다가 “같은 게 아니라 외국 맞는데”라고 구박받았다. 이상하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쉽다고 해야 하나. 앞서 말한 설렘과 긴장이라는 만반의 준비 두 가지 중에 무엇도 하지 못한 채로 먼 타지에 와 있는 내가 싫었다. 차라리 두려워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만약 다음에 여행지에 갔는데 이런 기분에 놓인다면 그건 필히 벌을 받는 것일 테다.




  나는 일행들과 함께 탑승 플랫폼 근처에 있는 나름 입맛에 맞을 듯한 햄버거 가게에서 아침을 때웠다. 의도된 어두운 조명은 아직 컴컴한 창밖의 풍경 때문에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배고픈 손님인 우리에게 배고픔을 넘어서는 졸음을 선사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식당에서 일하게 된다면 반드시 붉고 푸른 조명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튀어나왔다. 만약 꼭 그런 조명을 사용해야 한다면 나는 안주는 일절 없이 오로지 도수 높은 술만 팔아야 하고, 그러면 손님들이 세상을 울긋푸릇하게 보더라도 아무 불평 없이 웃어줄 것이라는 생각도 같이. 다행히 아직은 메뉴판에 익숙한 요리들이 적혀 있어서 금방 메뉴를 고를 수 있었다. 아니, 거를 음식을 쉽게 거를 수 있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우리는 메뉴판에 적힌 금액이 달러인 줄 알고 식겁했다가 곧 마음을 놓았다. 이미 와본 적 있는 어르신 한 분이 두바이에서는 아랍에미리트 화폐인 디르함을 사용한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래. 레몬에이드 한 잔에 사만 원을 받는 건 역시 말이 안 되는 거지. 나는 레몬에이드 한 잔과 식당의 상호명이 붙은 버거를 주문했다. 음식은 금방 나왔다. 입 안 가득 퍼져오는 버거의 짠맛과 레몬에이드의 신맛이 내 입 안을 조이며 침을 끌어냈다. 이걸 먹고 잠에 들 수 있으려면 며칠은 꼬박 새워야만 했다. 이런 경위로 모든 사람이 강제로 뜬 눈이 되어버렸고 우리 일행에겐 이제 공항에서 다섯 시간만 버티면 되는 상황이 찾아왔다.

  우리는 각자 흩어져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공항 안에서 작은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즐겨도 못 즐겨도 어쨌든 보딩 타임 십 분 전까지 탑승 플랫폼에서 만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일단 자유를 찾아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두바이 공항은 경유지였기 때문에 아쉽게도 공항 밖으로는 나가지 못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부르즈 할리파를 찾아 구석구석 돌아가 봤다. 놓고 온 모자와 덜 챙긴 반팔티를 사기 위해 공항 안에 있는 의류 매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 간판은 잊을만하면 튀어나왔다. 면세점은 자신이 술을 파는 마지막 장소라며 이라크로 가는 우리 일행을 유혹했다. 심지어 구석에는 피시방도 있었다. 충분히 즐길거리로 여겨질 수도 있었겠지만, 집에서 나온 지 30시간이 되어가니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저렴한 샤워시설이 있었으면 이용했을 텐데.


비행기 꼬리날개 오른편에 얇고 길게 세로로 뻗어 있는 건물이 부르즈 할리파다.

  결국 모든 사람이 탑승 플랫폼에 준비된 기울어진 의자에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일행이 이미 모여있었다. 나도 자리를 잡고 의자에 기대 누웠다. 호기롭게 사진 찍으러, 혹은 무언갈 사러 갔던 나를 기억하는 일행들이 내게 무엇을 샀냐고 물었을 때의 눈빛은 내가 아무것도 안 샀다고 말한 뒤의 눈빛과 크게 차이가 났다. 옆자리 어르신과 스타벅스에 다녀오고 난 얼마 뒤, 이라크에 가본 두 명이 이라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걱정이 많은 내 옆의 동료직원은 졸린 눈을 동그랗게 떠가며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한편 나와 다른 사람 몇 명은 귀를 닫고 플랫폼 한편에 누운 채 잠에 들 준비를 했다.


  계획된 시간이 되자 우리는 짐을 챙겨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조금은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라크행 비행기는 두 시간 반 만에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기내 디스플레이에 적힌 "IRAQ"라는 단어와 창밖으로 보이는 갈색 땅 덩어리는 이제야 나에게 무언가를 실감시켜 주려했으나 그것에 집중하지는 못했다. 정말로, 정말로 도착을 했기 때문이다. 이라크라는 생소한 미지의 나라에 비행기의 바퀴가 내려앉았고 이제 나의 두 발이 그 땅에 발을 디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로소 느낄 것이었다. 나는 멀리, 아주 먼 곳으로 왔으며 고향 땅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이곳은 내가 내뱉었던 발 없는 말도 결코 닿지 못할 것 같은, 천 리의 몇 배는 되는 거리에 떨어진 이국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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