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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몽 Oct 23. 2024

모두가 얼음이 되면 이기는 게임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가 선보이는 얼음땡 놀이


모두가 얼음이 되면 이기는 게임


얼음땡 놀이를 좋아했다. 누구나 유년시절 한 번 쯤은 해보았을 놀이다. 술래가 쫓아오면 도망다니다가, 잡힐 것 같으면 '얼음'을 외친다. 얼음을 외친 아이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멈춰서고, 술래는 그 아이가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쫓는 것을 포기하고 쫓을 아이를 다시 찾는다. 얼음을 외친 아이는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땡'을 외쳐야만 움직일 수 있다. 모두가 얼음을 외쳐서 모든 아이가 투명인간이 되었을 때, 술래는 혼자 남아 승리하고 게임이 끝난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유쾌한 놀이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가 선보이는 <얼음땡>


정식 명칭은 '몸이동' 준비운동 <얼음땡> (이하 얼음땡).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는 모두예술극장 '모두스테이지' 행사를 통해 <얼음땡>을 선보였다. <얼음땡>은 춤추는허리의 2023년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몸이동 프로젝트>의 준비운동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장애여성들의 <몸이동> 프로젝트 이전의 과정, 혹은 <몸이동> 일련의 과정을 나누는 퍼포먼스가 <얼음땡>인 것 같다. 



공연장 바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양이 붙여져 있다. 무언가 중심에서 퍼져나가는 그 문양은 마치, 얼음이 깨질 때 생기는 틈 같기도 하고, 뇌, 세포, 혹은 바이러스 같기도 하다. 그 정체는 장애여성 배우가 가진 병이 유전병이라는 것을 듣고 나서 눈치를 챘다. 공연이 시작하면 휠체어를 여성 배우가 무대에 등장한다. 그리고 외친다. 


'사람들이 제 연기가 애매하데요. 제가 장애가 있어서 그럴까요?'


관객들은 웃는다. 배우는 준비운동을 한다며 무대를 돌아다니고, 그와 똑같이 생긴 배우가 나와 함께 그녀의 뒤를 쫓는다. 그들은 쌍둥이였다. 쌍둥이는 말한다. CMT가 생길 확률 0.5%, 쌍둥이를 낳을 확률 2%, 그리고 CMT가 유전될 확률 50%. 자신들은 그 모든 확률을 뚫고 태어났다고 이야기하며 너스레를 떤다. 쌍둥이라서 힘든 점은 모든 것이 2배라는 점. 쟤가 잘못하면 내가 욕먹고, 내가 잘못해도 쟤가 욕먹는다고 말이다. 두 배우 뒤에도 계속해도 새로운 장애여성배우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유머스럽게 풀어낸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무게있는 말들이 있었다. 


나의 과거는 어두었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수만 있다면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무대의 마지막, 장애여성 모두가 나와 함께 들국화의 '행진'을 부른다. 관객들도 함께 따라 부른다. 노래를 이끄는 중증장애 여성 배우를 비롯해 모든 배우들은 유머가 넘쳤던 공연과 대비되는 표정으로 아주 진지하게, 하지만 즐겁게 노래를 부른다. 그들 뒤로는 <몸이동> 영상이 상영된다. 그들은 이동하며, 행진한다. 과거가 어둡고 힘이 들어도 말이다.  


과거가 어둡지 않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장애인, 비장애인을 떠나, 우리는 모두 힘든 과거를 안고 살아간다. 그 누구도 행복한 기억만 품은 사람은 없다.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나 역시도 마친가지일 것이다. 때로는 그 과거 매몰되고 고착되어 '얼음'을 외칠 때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 우리를 쫓고,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고, 세상에 오직 혼자만 남겨진 듯 외롭다고 느낄 때, 우리는 '얼음'을 외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투명인간이 되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서로 그것을 깨줄 수 있다. 


얼음땡 놀이에서도 얼음을 외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술래를 피해 얼음이 된 친구에게 다가가 땡을 외치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 다가가 땡을 외쳐주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얼음이 되어 게임이 끝나버리고 만다.  



오랜만에 정말 즐거우면서도 여운이 남는 공연을 보았다. 모두예술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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