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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몽 Sep 10. 2023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면서요

  나는 한국적인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한복을 즐겨 입으며, 자개 카드지갑을 들고 다니고, 악세서리로 노리개를 사용했다. 현재는 어쩌다보니 예술가가 되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주로 단청을 촬영해 새로운 패턴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순수 사진에 디지털 변형을 가하여 현상에서 본질을 찾아내는 작업인데, 사진이 가진 장르의 가능성을 실험 중이다. (저의 작업이 궁금하시다면 전에 쓴 글을 참고 바랍니다!) 작품의 소재로 단청을 활용하는 이유는 순전히 개인의 취향인데, 단청이란 이미 완성된 하나의 예술에서 또 다른 신비한 단청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이 참 매력적이다. 


단청을 변형한 새로운 단청 패턴

  한복을 입고, 자개나 노리개를 사용한다고 이야기 하니 내가 봐도 굉장히 괴짜같아 보인다. 실제로 그렇진 않지만 글로 푸니 꽤나 과해보인다. 그런데 왜 '한복'과 '자개', '노리개', '단청' 등을 글로 표현하니 과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위에 언급한 '한국적인 것'의 이미지가 '오래되어 촌스러운 것', '일상에서 벗어난 전통'이어서 그럴 것이다. 전통의 가치는 중요하지만, 조선시대는 이제 지났으니 말이다. 최근 이러한 소재들을 디자인이나 인테리어에서 '힙'하게 사용되기는 해도, 아직 한국다움은 '촌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의 전통 노리개

 

 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도 도쿄와 오사카를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꼭 이런 말을 했다. '거기 한국인 많아서, 한국이랑 별 차이 없을껄?'. 실제로 그랬다. 여기가 신주쿠인지, 홍대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국 관광객이 많은 탓만은 아니었다. 건물의 모양도, 사람들의 옷차림도, 심지어 간판의 언어도 비슷했다. 간판의 언어가 자국어가 아닌 영어라는 점이 특히. 신사나 성을 가야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다움이 느껴졌다. 일본도 '일본다움'을 생각할 때 오래된 것에서 찾아낼까?



  자국다움을 전통에서 찾으려는 현상은 한국과 일본뿐만이 아닐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며 물리적 거리는 의미가 없어졌고, 전세계 생활양식이 일률적으로 변했다. 우리는 어디를 가도 비슷한 건물에서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만난다. 네모난 빌딩 속에서 수트를 입은 수많은 직장인이 나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것은 어느 나라를 대입해도 똑같지 않을까? 수많은 것들이 편리와 효용성을 이유로 규격화되어 집단 고유의 특색은 점차 사라지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도시가 구성되고 있다. 그렇기에 그 나라다움을 오직 '전통'에서만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그 나라다움'과 '전통'이 동의어가 되어버린 것인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일본은 한국과 공통된 특징이 많았지만, 외국인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일본다움도 찾을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일본다움은 바로 귀여운 캐릭터가 정말 많다는 것인데, 애니메이션과 피규어 외에도 어느 곳에서나 캐릭터를 볼 수 있었다. 지하철 광고판부터, 안내 포스터, 전광판 등 어디를 보아도 귀여운 캐릭터가 즐비했다. 서브컬쳐로 불리는 '오타쿠 문화'와 '카와이 문화'가 일본 곳곳에 녹여져 있던 것이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무라카미 다카시'였다.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이름은 생소해도 카이카이키키 플라워, 해피 플라워, 무라카미 플라워, 무지개꽃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의 작품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23년 1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 전시가 크게 유행해 한국에서 그의 유명세는 더욱 높아졌다. 무라카미는 '일본다움'이 무엇인지 가장 고민을 많이 해본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은 귀엽고 행복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강한 독과 비판이 담겨있다. 그는 도쿄예술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하며 '일본의 미술이 서양 예술의 모방'이라고 느꼈다. 다카시는 그렇게 느낀 이후 진정한 '일본다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그 해답을 찾은 것이 바로 '오타쿠 문화'였다. 일본은 패전 이후 문화가 거세되어, 귀엽고 어리숙한 오타쿠 문화를 발전시킬 수 밖에 없었는데, 이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터부시해온 미성숙함, 무기력함, 성적 대상을 작품 전면에 드러내게 된 것이다. 


<미스 코코>,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표작 중 하나


  무라카미 다카시는 이후 아시아의 앤디워홀일고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에 선정될 정도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었다. 다카시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라 더욱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다시 주제로 돌아오도록 하자. 다카시는 일본의 천박한 저급 문화와 대중문화, 그리고 일본 전통 회화의 고급 문화를 융합해 가장 '일본다운' 예술 문화를 이끈 것이다. 그는 '슈퍼플랫'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팝아트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네오팝아트' 사조의 선구자가 된다. 진정한 '일본다움'이 무엇인지 오랜 숙고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든 것이다. 


"가장 한국다운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문장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가장 한국다운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문구이다. 한국의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하나의 구호였지만, 지금 시점에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기도 하다. '가장 한국다운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외치며 우리의 전통 문화를 전세계에 알리려 노력했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때는 우리 모두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태권도와 사물놀이 등으로 표현한 비빔밥 광고를 보며 민족주의에 취했었다. 하지만 이후로는 세계적인 것을 만들어 수출하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누구는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모두 똑같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며 한국적인 것을 모두 잃어버렸다한다. 그리고 가장 나다운 것이 동시대적인 것이라 말한다. 나다움을 통해 전세계를 관통할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한국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을 때, '진동벨'과 '식당의 스텐컵'이라 답했다는 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한국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한국의 '전통'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전통의 가치를 이어 민족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별개로, 진정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인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시대의 더이상 쓸데 없는 고민일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가의 역할아니겠는가? '한국성'과 '한국전통성'을 구분해 사용하며, 다카시의 사례를 통해 한국다움도 더욱더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보자.  




  가끔은 한국적인 것이 '빨리빨리'인 것 같고, '전통과 자연과 현대의 융합'인 것 같기도 하다. 안국역을 가면 산(자연)과 고궁(전통), 높은 빌딩(현대)을 한 자리에 서서 볼 수 있는데 그러한 광경이 전세계 어디를 가도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꼭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도는 것이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빌딩숲 사이에서 산을 등지고 있는 경복궁이 더욱더 한국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신은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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