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파친코를 통해 본 애플의 생각: 애플은 왜 방송 사업을 시작했을까
글로벌 시총 1~2위를 다투는 빅테크 기업 애플은 얼마 전 한국인 배우들이 출연해 한국의 가슴 아픈 역사를 담아낸 시대극 <파친코(Pachinko)>를 제작해 전세계에 공개했다. 파친코는 100여 년간 한국인 4대가 한국, 일본, 미국을 떠돌며 차별과 멸시를 견뎌낸 가슴 아픈 역사를 다룬다. 공영방송 KBS가 큰 영향력을 떨치던 1980~90년대, <토지>, <용의 눈물>, <태조 왕건>과 같은 대하드라마를 꾸준히 방송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내고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어왔지만, 최근 영향력이 크게 낮아진 KBS에서 이런 작품을 보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이처럼 국내 공영방송에서나 볼 수 있던 대하드라마를 혁신가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으로 유명한 미국의 빅테크 회사인 애플이 제작해 전세계에 공개한 것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이 작품에는 국내 제작진이 없다는 것이다. 제작사는 제니퍼 애니스톤과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The Morning Show>를 제작한 헐리웃 제작사인 Media Res Studio이며. 감독을 맡은 코코나다와 저스틴 전은 모두 한국계이기는 하지만 미국인이다. 그 동안 넷플릭스가 제작한 한국 콘텐츠가 모두 국내 제작사에서 국내 제작진을 통해 제작된 콘텐츠라는 점과 전혀 다르다. <파친코>는 미국 자본이 미국 제작사를 통해 미국인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진 완전한 미국 콘텐츠이다.
제작 주체도, 제작 방식도 낯선 이 독특한 콘텐츠는 여러 가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먼저드는 생각은 세계 최대 빅테크 기업인 애플은 도대체 왜 방송 사업을 시작한 것인가? IT 혁신의 상징 애플과 방송 콘텐츠는 언뜻보면 잘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애플은 왜 한국의 대하드라마를 1000억 원이나 들여 제작했을까? <파친코>에 등장하는 언어는 주로 한국어이며, 다음이 일본어 그 다음이 영어이다. 영어의 비중이 상당히 낮은 이 콘텐츠를 애플은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제작했을까? 이 글은 <파친코>라는 독특한 콘텐츠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요인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필자)
1. 애플은 왜 방송 사업을 시작했을까?
1) 애플의 콘텐츠 서비스 사업
"워렌 버핏은 애플을 기술기업보다는 진짜 소비재 기업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절대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왜 애플과 같은 회사에 크게 투자를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팀쿡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팀 쿡) 첨언한다.
"우리는 기술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용할 때 도와주는 배경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습니다."
애플은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차고에서 만든 컴퓨터 회사이다. 이 기업은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상용 PC에서 구현하여 이를 대중화 시키며 개인 컴퓨팅 환경의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또한, 휴대용 개인 컴퓨팅 기기인 아이폰을 출시하며 오늘날 모바일 혁명의 시초를 제공하였다. 애플은 기술혁신을 거듭하며 오늘날 우리가 사는 환경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회사이다. 이런 회사의 수장인 팀 쿡은 애플을 언제나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는 고객 중심 회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애플은 점점 서비스 회사로 변모하고 있다. 애플은 아이클라우드, 애플뮤직, 애플 케어, 애플 뉴스, 애플TV, 애플 피트니스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 군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며 서비스 부문을 확장하고 있다. 10년 전만해도 애플 전체 매출액의 8.2%에 불과하던 서비스 부문 매출 비중은 2021년 기준으로 18.7%까지 성장하며, 애플에서 아이폰 다음으로 가장 많은 매출 비중을 기록하는 사업 부문으로 자리잡았다. 애플 서비스 부문의 2021년 매출액은 $684억으로 국내 최대 온라인 플랫폼 기업 네이버의 동년 매출액보다 10배 이상 높다.
애플은 2000년대 초 아이팟 출시 이후 서비스의 위력을 경험했다. 2001년 애플은 휴대용 MP3 플레이어 아이팟을 출시했다. 처음에는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큰 반응이 없던 아이팟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아이튠즈 4.0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이전까지 아이튠즈는 아이팟에 MP3 음악을 담기 위해 제공되는
소프트웨어였는데, 아이튠즈 4.0에는 직접 음악을 구입할 수 있는 음원 유통 플랫폼인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가 추가 되었다. 당시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에서는 미국 5대 메이저 음반사들이 제공하는 20만여 곡을 한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당시만해도 P2P 음악 프로그램 냅스터의 음원 불법 유통, 그리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각 음반사들이 각각 만든 디지털 음원 공급 사이트들이 MP3 음원을 구할 수 있는 창구였는데,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에서는 합법적으로 주요 음반사들이 제공하는 다량의 음원들을 한곳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서비스를 출시한지 6일 만에 100만 곡 이상의 곡이 판매되었다. 이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향한 폭발적인 반응과 맞물려 아이팟의 판매량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뮤직스토어 출시 2년 만에 아이팟은 미국 MP3 플레이어 시장의 75%를 장악하였다.
이후 출시된 아이폰에서도 이와 같은 서비스 결합 전략은 이어졌다. 2007년 애플은 아이폰을 출시하며 앱스토어를 같이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애플은 이 혁명적인 휴대용 인터넷 기기가 그 효용성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구동되는 프로그램들이 충분해야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에 앱을 구매할 수 있는 앱 유통 플랫폼인 앱스토어를 아이폰에 탑재시키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아이폰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커다란 시장이 창출되었다.
2) 애플의 TV 사업
애플은 컴퓨터로 시작해 모바일 사업으로 큰 도약을 이루어낸 회사다. 그런 애플이 또 하나 성장시키고자 노력하는 분야는 TV이다. 애플은 2007년 아이폰을 발표한 날 ‘애플TV’라는 이름의 TV 셋톱박스를 출시했다. TV는 애플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애플은 종합 미디어 회사가 되고자 하는 야망이 있는 회사다. 개인의 방과 회사에서 이용하는 미디어 기기인 컴퓨터, 개인이 들고다니는 휴대용 미디어 기기인 모바일 폰 시장에서 애플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종합 미디어 회사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진출해야하는 분야는 바로 TV이다. TV는 가장 오래된 디스플레이 기반 미디어로 애플 생태계를 끊김없이(Seamless) 연결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분야이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결합해서 성공해온 회사이기 때문에 TV 시장에서도 콘텐츠를 통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애플은 아이튠즈에서 비디오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아이튠즈 비디오는 건당 구매를 요구하는 TVOD(Transaction VOD) 시스템이다. 콘텐츠를 건당 돈을 받고 판매하는 종합 유통 플랫폼이라는 측면에서 기존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와 동일하다. 그러나, 이 서비스는 뮤직 스토어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 이전까지는 한곳에서 모든 메이저 음반사들의 음원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뮤직 스토어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튠즈 비디오 서비스의 경우는 이미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강력한 사업자들이 존재했다. 콘텐츠 사업자들과 공고한 관계를 구축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실시간과 VOD로 제공하는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그들이다. 애플 입장에서는 이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 빈틈을 파고든 것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기존 방송시장의 전통적인 문법들을 파괴하며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애플이 기존 아이튠즈 문법을 TV 시장에 그대로 이식하려다 실패한 사이 넷플릭스는 기존 문법을 파괴하며 성장해가고 있었다. 넷플릭스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콘텐츠 사업자들이 작은 기업이었던 넷플릭스에 큰 경계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2008년에 영화와 TV시리즈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스타즈(Starz)와 아주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하였다. 약 2,500개에 달하는 영화와 방송 콘텐츠를 2~3천만 달러에 4년간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이처럼 콘텐츠를 상당한 저가에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었던 것이 넷플릭스가 초기 성장동력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요인이었다. 넷플릭스는 이를 기반으로 가입자를 끌어모았고, 넷플릭스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이후에야 콘텐츠 사업자들은 본격적으로 견제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거대한 기업이었던 애플에게 콘텐츠 사업자들은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음원시장에서 애플이 콘텐츠 사업자들을 제치고 주도권을 확보하는 모습을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애플이 TV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이 넷플릭스는 계속해서 성장해 나갔고 시장은 SVOD를 기반으로 하는 OTT 시장으로 재편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애플은 넷플릭스가 만들어놓은 OTT의 문법을 따라 별도의 OTT 서비스를 출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애플이 다음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미디어는 자동차이다. 단순 이동 수단이었던 자동차는 최근들어 점점 컴퓨팅 기기로 진화하고 있다. 디스플레이가 점점 커지고 있고 통신기기가 탑재되어 인터넷에 연결되고 있다. 이른바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로 진화하며 그 안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애플은 2025년 내에 애플카라 불리는 완성차를 내놓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애플의 자동차 시장 진출은 모든 미디어를 하나로 이으려는 애플의 또 다른 시도다. 새롭게 등장할 또 다른 미디어 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거대한 미디어 기기에서 핵심 콘텐츠 중 하나는 동영상 서비스가 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커넥티드 카의 킬러 서비스로 유튜브, 넷플릭스, 티빙과 같은 OTT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웹 앱을 개발하는 중이다. 운전자 중심의 자동차 환경에서는 음악이 자동차 이용 경험에서 중요한 요소였지만 운전자의 개입이 덜한 완전 자율 주행차 환경에서는 동영상이 핵심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새로운 미디어 시장을 놓칠 수 없는 애플은 이용자 경험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OTT 서비스인 애플TV+를 적극 활용하려 할 것이다.
=> part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