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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May 14. 2024

성공적인 박사과정을 위한 조언

지인이 학문적으로 생산적으로 사는 법(academically productive)에 관해 물었습니다.

아직 연구라는 커리어 초입에 서있는 박사과정생이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저는 2020년 8월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해서 올해 2023년 12월에 졸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목표대로 박사를 마무리하면 3년 반 만에 박사과정을 마치게 되는 셈입니다.

타지에서 양가 부모님은 차치하고 어떤 도움도 받기 힘든 상황에서 애 둘을 기르면서 박사 과정을 한 것치고는 꽤 빠르게 끝내는 겁니다. 저희 학과만 봐도 일반적으로는 5년 정도가 보통이니까요.

둘째는 학기 중에 출산했습니다.

다행히(?) 코로나 시기라 모든 수업이 줌으로 전환되었던 터라 진통이 오기 전까지 take-home 시험을 치고 출산 후에도 누워서 줌으로 수업을 듣고 과제도 하고 리딩도 했습니다.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처럼 아이를 기르면서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혹은 비교적 공부에만 전념하기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있을테고요.

아래의 조언은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적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 상황에는 잘 맞았던 조언이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거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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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뚜렷하고 구체적인 목표, 박사과정의 청사진을 그리십시오.

저는 구글 캘린더로 일정을 관리하는데 최근에 달력을 보다보니 이상한 일정이 눈에 띄었습니다. “타임머신” 이라는 일정에 블로그의 주소 링크가 달려있었습니다.

클릭해보니 박사 학위를 시작하기도 전, 무려 3년 전에 제가 쓴 블로그 페이지였습니다.

3년 전에 쓴 목표가 적혀있었는데 그 목표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1. 3년 안에 박사 과정 마치기

2. 졸업 전에 논문 적어도 5편 퍼블리시

3. 일 년에 학회에서 적어도 발표 1-2번

4. 그리고 연구만을 위한 연구를 하지 않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남을 널리 이롭게 하는 연구를 하는 것!

이 계획을 세울 때는 고려하지 못했던 변수, 둘째를 박사과정 중에 출산하고 키우면서 계획에 조금 차질이 생겼지만 큰 방향에서는 많이 이뤘습니다.

계획대로 올해 12월에 졸업을 하면 3년 반 만에 졸업을 하게 되는 셈이고 올해 졸업 전에 논문 5편을 첫 번째 저자로 출판하거나 적어도 투고할 예정입니다.

작은 학회나 발표 기회까지 포함하면 3번도 대충 이뤘고, 올 여름에는 북미에서 가장 큰 제 분야 보건 관련 학회에서 발표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예전 마라톤을 즐겨하는 분과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마라톤은 10km, 41.195km 등으로 거리가 정해져있는데 노력에 따라서 그 거리를 달리는 시간이 단축되는 게 눈에 확 보이기때문에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운동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체력과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운동을 하는 좋은 이유가 되지만 '몇 킬로그램을 감량하겠다' 혹은 '마라톤을 완주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얼마나 단축하겠다' 라고 하는 구체적 목표가 있으면 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됩니다.

박사 과정을 하는데 굉장히 많은 변수가 있지만, 박사 과정을 몇 년 안에 끝내고 싶은지, 박사 과정 가운데 꼭 이루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좋습니다. 끝내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목표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목표는 최대한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저는 박사과정의 큰 목표를 정한 다음, 그 목표를 세부 목표로 나눴습니다.

3년 안에 박사과정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 각 학기별로는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를 하기 위한 펀딩 소스는 어떤 것이 있고 각각의 지원 시기는 언제인지 등을 다 조사하고 정리해서 학기별로 세부 목표를 정하고 매월 목표를 정했습니다. 졸업하기 위해 꼭 해야하는 행정적인 절차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걸 주간 목표로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당장 급한 과제를 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내가 해야하는 일들을 놓치지 않고 해내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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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멘토를 구하고 목표를 더 정교화하고 수정하십시오.

이건 비단 박사과정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조언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이미 가본 선배들과의 대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입학 전에 박사과정 마무리 단계에 있는 사람들, 박사과정을 이미 마친 사람들과 별도로 미팅을 잡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학과에는 학생 홍보대사들이 있는데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메일을 써서 미팅을 요청했습니다.

제가 혼자 계획을 세우면서 궁금했던 부분들을 정리해 질문했습니다.

내 계획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어떤 단계를 그 시기에 하려면 그 전에 어떤 것들을 미리 해두어야 하는지 등, 특히 박사과정을 마무리 하는 사람들이나 금방 박사과정을 마친 사람들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팁들을 많이 주었습니다.

가장 유용했던 조언은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언니가 해준 조언이었는데, 필수 과목을 들을 때 내가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과제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들 대부분 본인의 수업이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과제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자기 연구 주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교수님과 협의해서 과제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언대로 저는 가능하면 코스웍의 과제들을 제가 연구하고 싶은 주제와 관련해서 했습니다.

이를테면 연구제안서를 쓰는 과제가 있다면 제 연구주제를 적용해 연구제안서를 적고, 통계학 수업에서도 제가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실제 데이터 세트를 적용해서 과제를 한 다음, 수업이 끝나고 그 과제를 보완해 저널에 투고하기도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작성했던 프로토콜이나 연구제안서는 나중에 제가 실제로 연구비를 지원하거나 연구를 수행할 때 초안으로 잘 활용되었습니다.  

포닥 지원을 앞둔 지금, 내가 원하는 커리어 트랙을 거쳐 교수가 된 분들을 여러 분 만나뵙고 또 조언을 구했습니다.

다들 바쁘신 분들이지만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조언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연구 관심사를 알릴 수 있고 적어도 네트워킹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조언을 줄 위치가 된다면 좋은 멘토가 되어 받은 도움을 사회에 되돌려 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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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행하십시오.  (가급적이면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적이고 탄탄한 계획을 세웠다면 수행해야합니다.

아무리 근사한 청사진이 있다하더라도 그걸 바탕으로 충실히 벽돌을 쌓아올리고 지어올리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헛수고가 됩니다. 하지만 계획대로 수행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의 성취를 점검할 수 있는 서포트 그룹이 있으면 참 좋습니다.

저는 이미 박사를 끝낸 분의 조언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일일체크방을 하고 있습니다.

일일체크 카톡방에서는 매일 아침 자신의 그날 목표를 자발적으로 올립니다. 그런 다음, 하루를 마무리할 때 그 목표 중에 어떤 것을 이루었는지, 어떤 것을 이루지 못했는지를 또 올립니다.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보면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들만 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코스웍이 끝난 박사 후반부로 접어들면, 마감기한도 없고 나를 재촉하거나 매일 나의 성취를 점검해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매달 해야할 일, 매주 해야할 일, 매일 해야할 일을 점검하다보면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들을 꾸준히 점검해나갈 수 있고 하루 스스로 정한 일들을 잘 마무리했다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매일 모든 항목을 끝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꾸준히 이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자신의 성취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저는 박사공부와 관련된 것 외에도, 영어 공부, 스페인어/아랍어 연습, 운동, 책읽기 등 매일 꾸준히 해야하는 일들도 목록에 넣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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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유를 가지십시오.

"Live as if you were to die tomorrow. Learn as if you were to live forever" By Gandhi.

요즘 가장 마음에 와닿는 말은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라"는 말입니다.

이 모든 조언의 근간이 되는 주요한 포인트는 나를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방향성을 가지고 걷는 것입니다.

아무리 매일 열심히 걸어도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내 인생의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설정하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매일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생각하고 그걸 수행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박사과정을 10년 안에 끝내든 5년 안에 끝내든 속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졸업할 시기가 되어서 떠밀리듯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기를 주도적으로 즐겁게 방향성을 가지고 보내는 것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흥미와 적성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보건/의료

천문학

언어학

수학

예술

교육

여러 분야에서 각자의 적성과 재능과 소명과 잠재력을 온전히 깨닫고 발휘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더 풍성하고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계획을 세우면서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점검하면서, 오늘 당장 하기 싫은 굉장히 지루한 일도 내 인생에 거대한 마스터 플랜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동기부여가 됩니다.

그리고 일상을 음미하고 즐기며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여유를 찾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더 사랑한다고 말해줄 걸' '아이들을 더 안아줄 걸' '매일을 더 소중히 여길 걸' 하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매일 후회없이 완결된 하루를 살도록 노력하는 편입니다.

특히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루틴, 혹은 일상의 의식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매일 아침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면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왜 공부를 하는지, 내가 이 세상에서 아직 숨쉬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제게 주어진 소명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밤에 아이들을 재울 때면 아이들을 안고 기도를 합니다.

매일 하루 각자의 자리에서 안전하게 하루를 보내고 다함께 잠자리에 들 수 있음에 감사기도를 올립니다.

그렇게 감사기도를 올릴 때면 가족 모두 건강한 것, 무탈한 것, 큰 어려움이 없는 것 그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종교가 없더라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그날 감사한 일을 떠올리면, 지친 하루였더라도 평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요약하면, 방향성을 가지고 즐겁게, 함께 걷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즐겁고 유익한 여정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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