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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itarius Jan 13. 2020

50대 퇴사, 전직 이야기

 (1)

"사표 쓰고 싶어 죽겠는데 아침마다 참고 있어요"

"일단은 버티고 버티려고.. 월급 받는 낙으로"

"언제 이직할까요. 부장은 달고 나가야겠죠?"



50대 초반 4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90년대만 해도 '처음 직장=평생 직장'이었다.  지금은 정년퇴직이란 말은 사어(死語)가 되다시피 했고  2, 3개의 직장 이력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로 됐다.


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했다. 요즘 20대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돌아오는 답은 '꿀빨던 시절'이다. 맞다.  그때는 그런 시기였다.

대학교 4학년 때 기업들이 대학을 방문하면서 "제발 와 달라"라고 호소했던 '아름다운 시절'이었으니.


우연히 들어간 첫 직장의 일과 문화는 내가 가진 성향이나 소망과 너무나 달랐다. 하루도 못 다닐 것 같은 곳이었지만 그래도 만 9년 정도를 열심히 다녔다. 사직서를 써서 가방 안에 늘 넣어 다녔지만 차마 제출은 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다녔다.

다니다 보면 욕심도 생기고, 적응도 된다. 첫 직장을 다니며 결혼도 하고, 출산도 했으니 20~30대 초의 황금기를 보냈다. 사회적 지위와 월급이라는 달콤한 유혹은 나를 매일 출근하게 만들었고,  동료들과 선배들도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직장과 인간관계가 구분이 잘 되지 않던 문화였다.


그러다 둘째를 낳고 뉴밀레니얼(2000년대) 광풍이 불면서 당시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 내 직업의 전망이 하루가 다르게 내려가기 시작했고(지금은 지하를 뚫고 내려간 것 같다), 나는 출산 후 부기가 덜 빠진 상태에서 과감하게 모험을 했다. 


벤처의 붐을 타고 30대의 부푼 세속적 꿈을 안고 새 직장으로 옮겼다. 회사 규모도 작고, 신생 기업이라 대부분 말렸지만 나는 안정보다 리스크와 그 과실에 몸을 실었다. 결과는 적중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나았다. 회사 투자금도 어느 정도 회수했다. 일하는 재미,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가 얼마나 즐거운지 깨달았다. 퇴근하기 싫을 정도였다.


그러나 벤처회사의 끝은 다 비슷하다. 1. 망하거나, 2. 흥해서 분열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다닌 회사는 2번이었다. 지분 싸움, 파벌 싸움, 편법 거래 등이 판치며 회사의 덩치가 크는 것과 비례해 조직의 한쪽이 급속히 썩어나갔다.


15년 이상 두번째 직장에서 일한 뒤 또 갈림길에 섰다. 내가 정의감이 투철한 인간인가? 이 회사가 객관적으로 아주 나쁜가? 순백의 회사를 원하는 것인가?  내 대답은 ' 아니다'였다.

 다닐만은 했다.


하지만 이직했을 때 기대했던 모든 것들이 후퇴한 회사에서 더 이상 다니는 것과 과감하게 새 길을 나서는 것을 다시 한번 저울질했다. 마침 나이도 50이었다. 관리자로 올라가는 시기. 관리자라면 회사 CEO나 오너와 뜻을 같이 해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동조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치일 수도 있지만, 뜻이 너무 다른 사람에게 나를 맞추기 보다는,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서점에 가면 매대에 놓인 책들중 퇴사란 단어가 유독 많이 보인다. 퇴사는 모든 직장인의 로망일까.

2년쯤 지난 지금,  당시 퇴사를 돌이켜보면 '역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결정을 합리화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지금 그 회사의 상황을 보면 내 입장에선 탈출한 것이고, 남아 있었으면 계속 편하고 익숙해서 안락한 생활은 했을지언정 마음속은 늘 갈등과 불만으로 뒤엉켰을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현재 직장 다니며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유행이라는 퇴사를 권할 생각은 없다. 


퇴사는 숙고에 숙고를 거듭해야 할 결정이다.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혼자 벌판에 나선 나는 평소 마음속에 두었던 이런저런 1인 사업을 하고 싶었다. 탐색도 하고, 사람도 만나러 다녔다. 그런데 선뜻 시작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두려웠다. 시드머니를 날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맨땅에 버려지는 공포. 그 앞에서 내 몸과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극심한 불안이 시간과 함께 옅어진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그 두려움의 근원은 준비가 너무 돼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낀 마음 아래에는 내가 그 일을 그토록 열망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막연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 기분? 거기에 추가로 당시 유행 타는 테마(공유경제)를 선택한 것이다. 남에게 그럴싸하게 들리는 일을 택한 게 아니었을까. 결국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데 실패한 상태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나를 다그쳤던 것 같다. 


 이렇게 나이브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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