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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itarius Jul 21. 2020

내 마음의 짐,  밥.. 밥.. 밥

최근에 '정년 아저씨 개조계획'이란 일본 소설을 읽었다. 제목만 봐도 짐작이 가는 내용 이리라.

꼰대 중년 남자가 정년 이후 여성과 젊은 층의 삶을 접하고 각성하게 되는 그런 스토리? 맞다. 한국과 비슷한 가부장제인 일본 사회의 남녀 역할과 출산, 육아 등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뻔한 이 스토리의 책에서 내가 꽂힌 부분은 다른 것이다. 바로 주인공 정년 아저씨의 아내가 요리하는 일에 손을 뗀 부분이다.

우울증이 있는 아내는 언젠가부터 집에서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아주 안 하는 것은 아니고, 삼시 세 끼를 그때그때 하지 않는 것이다.

아내는 결혼 이후 처음으로 친구와 이탈리아 여행을 가면서 일품요리인 난반즈케 딱 하나만 해놓고 훌쩍 떠나버렸다. 남편은 과거에 아내가 잠깐 친정이라도 갈 때면 냉장고에 각종 요리를 잔뜩 만들어놓고 떠난 기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단 하나의 음식민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아내가 떠난 것에 대해 배신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럼에도 아내가 출국한 첫날, 남편과 딸은 반색하며 오랜만에 '집밥 음식'이라며 요리에 달려든다. 그러나 맛이 이전과 다르다. 딸은 "엄마도 오래 요리를 안 하니 예전 같지 않구나, 엄마 요리 같지가 않아"라고 말한다.

그리곤 딸은 간장 달걀밥을 쓱싹 해 먹고,  남편은 샐러드에 간장을 쳐서 먹는다.


나는 이 부분에서 갑자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러나 이내 '난 아직 그 나이까지는 아니지 않냐'는 익숙한 죄책감이 올라왔다. 즉 아직은 요리를 완전히 손에 놓을 시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을 고백하면 나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머릿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 하나고? 그렇지 않다. 그런 가정에서 자랐다. 우리 세대는 비슷하겠지만.

어릴 때 가정환경, 결혼 이후 만난 가족들의 환경이 비슷했다.

밥 안 먹으면, 엄마가 밥을 제때 안 해주면, 세상이 곧 망할 것 같은 집안 분위기였다.


그런 생각과 문화와 말들이 나를 지배했고, 나도 거기에 맞춰 로봇처럼 밥 얘기를 해왔다. 애들이 질려할 정도로.

나이가 들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이들도 성인이니 이제 밥을 제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가족들이 같이 있으면 밥을 해야 하고, 같이 있지 않을 때는 꼭 챙겨야 한다. "밥은 먹었어? 뭐 먹었어" "제대로 된 거 먹어" "내가 사갈까? 시켜줄까?"

매일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그래서 나는 괴로웠다. 이 나이 되도록 여전히 밥 얘기만 하고 있어야 하냔 말이다. 동시에 가족들이 미웠다. 나 좀 놔줘라.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지겨운 밥 얘기는 내가 나서서 먼저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기새들이 둥지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가족들을 바라봤던 나. 실제로 그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내 역할을 그렇게 규정해놓았다. (물론 과거에는 나만 바라본 것은 맞다.)


내가 스스로 내 역할과 머릿속에서 거대한 '밥'을 좀 놓아야 할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집밥 몇 끼 안 먹는다고 굶지 않는다. 성인이면 자취하는 경우도 많고, 오히려 혼자 맛있는 걸 해 먹게 기회를 줄 수도 있다.


4인이 저녁마다, 아니면 주말마다 둘러앉아 집밥을 먹어야 '정상가정'이라는 허상을 지워야겠다.


그리고 편하게, 헐렁하게, 게으르게 생활해보자. 지금까지 양육자로서 의무감을 벗어버리고, 죄책감도 내려놓고, 그냥 한 사람으로 살아보자. 어떤 일이 생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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