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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itarius Dec 29. 2020

내가 만든 가족, 그 무거움



태어나서 성장하고 학교 다니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평범한 인생의 사이클이다. 요즘은 이 사이클이 표준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학교, 취직, 결혼, 출산의 문 앞에서 다른 대안도 있고,  점점 그 대안들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결혼, 출산은 오히려 소수의 선택이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우리 세대는 그저 앞사람 꽁무니만 보고 걸어왔다. 다른 생각을 갖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이 중요한 선택의 무거운 의미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보질 못했다. 부모,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기나 했을까.


또 한 해가 저무는 이 시점에서 나는 깊은 좌절과 고민, 한탄에 빠졌다.


사춘기에 버금가는 고뇌들이다. 이것이 갱년기의 본격 증세일까. 중년의 위기라는 것일까.


그 출발은 가족관계다. 내가 기억하는 사춘기는 중2 ~중3 때였던 것 같다. 이른바 자아가 강해졌을 테고, 또래 친구가 유치하게 여겨지며 가족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특히 엄마에 대한 반감이 컸다. 엄마의 말투, 태도, 가치관 모든 것이 싫었다. 그때부터 나는 가족들과 소원했다.


그 이후 스무살이 되자마자 고향을 떠나왔으니 특별히 불화가 있거나 가족간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지만 여느 집의 모녀처럼 곰살맞은 관계는 아니다. 데면데면하다. 그래서 엄마나 주변으로부터 욕도 많이 먹었다.


가족에게서 도망가고 싶어 했던 10대의 심리가 어떤 것인지 촘촘히 따져봤으면 좋았을텐데. 그럴 여유도 없이 나는 뚝딱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내가 만든 새로운 가족을 어떻게 만들고 이끌어나갈지 아무런 청사진도 없었다.


그저 남들 하는 것이니 했다. 가족을 떠나와서 20대 초 한창 예민한 시기를 혼자 서울생활하다보니 다시 가족이 그리워진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새 가족은 나에게 버거운 관계였다. 어릴 때 내가 기존 가족에서 탈출하고 싶었다면, 내가 만든 가족은 책임져야 할 부담으로 다가왔다. 가족과 함께 하는 '단순한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늘 이 무거운  짐들을 언제 내려놓나, 나는 언제 훨훨 날아가나 이런 꿈만 꾸고 살았다.


솔직히 내 내면 깊숙이 박혀 있는 생각이 있다. 결혼을 급하게 했다는 것, 여기서 모든 게 시작한다. 이런저런 기회를 날렸다고, 손해 봤다는 피해의식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족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감사함이 별로 없다.


그리고는 50이 넘었다. 1990년대 세상은 20대 여성의 결혼을 당연시했고, 2020년의 세상은 '혼자인 삶'이 좋다고 말하는 듯하다.


두 아이 모두 성인이 됐고, 나는 거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계획은 와장창 어그러졌고, 나는 내 기대와 달리 괴팍하고 이기적이고 짜증만 내는 엄마로 남았다.


내 계획(?)을 가족과 공유한 적도 없으면서 어느 순간 짠 하고 나타나 "독립하는 게, 또는 가족을 독립시키는 게 내 계획이야. 그러니 알고 있어"라고 선언한 미친 사람이 돼버렸다.


나는 한 공간에서 20여 년을 함께 지내온 사람들의 삶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내 안중엔 나만 있고, 타인은 없었다.


그러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내 계획에 대해 불만만 커져가고 그것이 다른 가족에 대한 짜증과 화로 다가갔다.  


이런 나를 이해하라고 강요하기에는 공감대가 부족하다.


나 스스로 가족을 만들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내가 그걸 허물수는 없다. 4명의 삶과 4명의 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한 판을 무슨 자격으로 가위로 싹둑 잘라 버린단 말인가.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먼저 말하고 설득하고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다. 난 그걸 폭탄을 던지고 나서야 알았다. 사는 게 이렇게 어렵다. 모든 게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러나 늦었지만 이제라도 , 내 손으로 만든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 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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