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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C Dec 02. 2016

기억의 재구성 - 1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너는 내가 왜 좋아?"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났다고 했을 뿐인데 왜 홍시 맛이 나냐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한단 말인가. 장금이의 심정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덜컥 말문이 막혔다. 사랑한다는데 정신이 팔려 도대체 왜 사랑하는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내가 왜 이럴까요. 그녀는 내게 추궁했고 나는 답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에 몰렸다.


너로 인해 나는 바뀌었고 세상이 아름다워졌고, 전여친과 전전여친까지 소환해내며 무언가 다른걸 느낀다며 그것은 네가 "아름답고", "이쁘고".. 등등 횡설수설해봤지만 나의 마음은 전달되지 못했다. x마린 개 마냥 나는 뭐라 대답할지 몰라 약 한시간 동안이나 핸드폰을 손에 붙잡고 쩔쩔매다 그애의 다음 한마디에 결국 눈물까지 찔끔 흘려버렸다.


"그니까 너는 내가 좋은 게 아니라 나로 인해 바뀌게 된 너의 모습이 좋은거네?..  오늘은 좀 많이 슬프다"


나는 그저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설명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으니 얼마나 좋은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멋진 감정을 가진만큼 멋진 답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후로 어떤 의문이 생겼다. 지금의 감정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모두의 환상속에 자리잡고 있던 '티끌없는 영원한 햇살'같은 사랑인지 증명할 수 없었다. 순간의 감정에 취해 언젠가 다시 감정의 한계를 마주하는 결말을 맺진 않을까. 그녀도 그게 두려웠던 것 같다.  내게 차가운 태도로 나의 사랑을 믿지 못하겠다 말한 것도 본인 스스로의 감정을 자제하기 위한 선언 같은 것이었다.


그 애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썸머' 같았다. 그 500일의 썸머 말이다. 썸머는 톰에게 호감이 있고 연애를 시작할만큼의 좋아한다는 감정은 있었을지 모르나 톰이 가졌던 그것과는 달랐다. 톰은 그녀에게 빠져들었던 시간 만큼은 본인의 감정이 '티끌없는 영원한 햇살'같은 사랑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썸머는 지금 당장의 감정조차 호감인지 사랑인지 헷갈렸다. 시간이 흐르다보면 아주 작은 일상에서 그 차이를 확인하게 된다. 회피와 외면으로 일관하다 문득 쌓여버린 감정이 폭발하면 상대방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내가 썸머와 달랐던 건 그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섬머는 꽤나 'bitch'처럼 보였는데(영화의 오프닝에 감독이 자신의 옛 연인에게 바친다며 'bitch'라고 덧붙인다)그건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어떤 기대를 주지 않으려는 솔직함이었다. 당장은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지만 나중에와서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깨닫게 만드는 사람보다는 나은 것이다. 사실 진짜 'bitch'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그랬다.


한번도 사랑을 말하면서 떳떳한 적이 없었다. 사랑한다고 말한 것은 그녀들이 여자친구였기 때문이지 내 감정이 진짜 그런 것인지는 불확실했다. 항상 전 여자친구들에게 배려로 일관했지만 그건 내가 가진 감정과는 결이 조금 다른 것이었다. 불확실한 감정이 나를 항상 괴롭게 했다. 처음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사실이 외로움을 매워주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감정이 요구되면서 감정의 한계를 느꼈다. 나는 현상유지의 관계가 주는 안락함에 스스로의 감정을 속였다. 그러다 종국엔 상대방의 아쉬움이 분노와 슬픔으로 변하하면서 더 이상 이어나가기 어려운 관계임을 밝히며 이별을 통보하고야 말았다. 결국 그 감정을 인정해본 적이 없었다. 이와 다른 어떤 감정이 있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은 상태로서는 어떤 환상일 뿐이었다. 그런 것이 있기는 한건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사랑은 어떤 세월의 겹이 쌓여 녹아나오는 어떤 에센스 같은 것인가'라는 멍텅구리 같은 생각이나 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달랐다. 마치 거대한 블랙홀에 다가가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처럼 멀리서부터 아주 천천히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더욱 빠르게 끌려들어갔다. 처음에는 이번에는 잘 맞을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성적인 이유로 만남을 시작했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듯 나를 잃어가면서도 나의 감정과 나를 둘러싼 지금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의 내가 무엇이었는지 모를정도로 왜곡되고 비틀려버렸다. 그녀 역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연애에는 항상 갑을관계가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누구 한명은 정도가 다른 호구가 된다. 나는 호구가 되어주었고 그럴때마다 그녀는 나를 호구처럼 대하다가 괴로워했다. 관계란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대개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기 마련이다. 서글픔을 참아내고나면 그만큼 자존감이 떨어져나갔다. 마음이 항상 무겁고 답답했다. 살이 빠졌다. 종국에는 바닥을 쳤는데 내가 버틸 수 있게 조금만 잘해주면 안되겠냐며 엉엉 울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과정 속에서 사랑임을 깨달았고 확신했으며 생애 처음 가진 어떤 감정에 황홀했다. 그러니 사랑의 이유따위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내 생에 가장 아파했고 또 기뻐했던 나날들이었다.


그 이유라는 것에 대해 무언가 실마리를 찾게된 건 한토막의 대화였다.

  

"예전에 우리 사귀기 전에 너가 내 페북에 생일축하글 남긴거 봤는데 지금하고 느낌이 다르더라 ㅋㅋ"

"그건 순종적인 거 아냐?"

.

(다툼이 있었다)

.

"아까 순종이라 했지? 그건 순종이 아니라 어떤 따듯한 마음이었어. 근데 지금 너는 그때의 너와 너무 달라"

  

이 말을 돌이켜보면 나의 연애에서 어떤 기대가 좌절됐음을 고백하는 순간이었다. 기대가 좌절될 때야 비로소 기대가 무엇인지 알게됐다. 그녀가 A일 것이라 기대하고 A가 할만한 반응을 원하지만 상대방은 언제나 B였던 것이다. 그 말을 하고 있을때 조차 나는 이를 깨닫지 못했다. 나와 그녀는 재수학원에서 만났고 수능이 끝나고나서 한번 공연을 보러간 정도였을 뿐이었다. 6년 뒤 여차저차해서 다시 만났고 일주일만에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갖고있던 그녀에 대한 이미지는 꽤 오래 전 것이었고 그마저도 완전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사이 페이스북과 인스타에서 접한 그녀의 모습만으로 나는 그녀가 A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고 다시 만난 일주일동안 그녀의 겉모습에서 A를 아주 일부만 확인하고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그 환상이란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언젠가 그녀가 나에 대해 "전쟁통에 말라버린 어미 젖을 빠는 아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표현이 마음 속 깊은 구석 어딘가에 쳐박아 놓고 있는 줄도 몰랐던 무언가를 흔들고 따듯하게 만들었다. 본래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구석이 있다. 아무리 남들에게 이를 설명해봤자 알아들을수도 없고 알아주지도 않는다. 말로 꺼내는 순간 그것은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 남들에게 닿지 못하고 변질되어 버린다. 그것을 알고나면서부터는 그저 마음 속에 담아두고 본인만이 그 의미를 간직해야한다. 나는 누구나 이런 숙명적인 고독이 있다고 믿는다. 처음 그녀에게 고백한 새벽, 차 안에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난 약간 애정결핍이라 누가 안아주는 거 좋아해" 그녀는 나를 안아주었다. 그때만해도 어딘가 어색한 포옹이었다. 그녀와 사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철을 기다리다 문득 그녀에게 안겨 목놓아 서럽게 울고 있는 상이 떠올랐다. 뜬금이 없었고 그냥 떠올랐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런 상에 대해 그녀가 나를 울리는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터지고와서는 그녀에게 위로받는 것인지는 몰랐다. 그냥 그런 상이 떠올랐고 그게 무언지 그때는 잘 몰랐다. 다만 그 상만큼은 선명했고 그 상 속에서 울고있는 나의 서러운 마음은 생생한 꿈을 꾼 듯 그때나 지금이나 느껴진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나의 숙명적인 고독을 그녀가 알아봐주고 위로해줄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그런 기대를 품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역할을 해줄 그녀를 사랑했다. 그건 평소에는 어떤 찡하고 간절한 느낌으로만 막연히 느껴질 뿐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 그래서 헤어질 수도 있다는 어떤 불안감 때문에 더 많이 증폭되었고 명확히 인식하기 어려웠다. 연애가 끝나 불안이 걷혀나가고 천천히 불타올랐던 마음의 재를 살살 저어가며 기억의 조각들을 안고 고민하다보니 그런 것이었다며 스스로가 납득하는 것이다.


나는 왜 너를 사랑했는가. 그것은 숙명적인 고독을 봐줄 사람이며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A였고 그녀는 원래 B였다. 나에게는 숙명적인 고독을 위로할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다. 연애에서는 누구나 그런 환상을 갖기 마련이다. 만약 내가 그녀를 사랑한 이유가 A일 것이기 때문이었다면 역으로 그녀가 A가 아닌 것이 드러났을 때 나의 감정은 사라졌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다시 이유가 될 수 없는가? 그것도 아니다. 여기까지의 자문자답이 끝나고 나서 나는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사랑의 환상은 언젠가 깨지지만 환상 없이는 사랑도 없다. 환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그래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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