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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Aug 13. 2020

번지점프 일기

액티비티가 주는 살아있는 느낌



자이로드롭 딱 출발하기 전의 감정이 좋다.

보통은 꼭대기에 멈춰 '두둥'하는 찰나를 가장 인상깊게 말하던데, 나에겐 출발하기 몇 초 전의 감정이 더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먼저 맘에 드는 자리에 앉아 차례로 들뜬 표정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혹은 가끔은 타의로 끌려들어와 죽을상 표정의 사람들을 구경한다. 빙 둘러앉은 원형의 자리에 점점 사람들이 차기 시작한다. 출발한다는 캐스트의 발랄한 목소리를 기점으로 발이 지상으로부터 떨어지고, 점점 높이높이 구름과 가까워진다.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르는 두려움으로부터 오는 떨림과 더불어 그 순간만큼은 온 세포가 생생히 느껴지고 살아있는 느낌이 좋았다. 머릿속의 모든 잡생각은 사라지고 심장이 쿵쿵대는 소리만 들렸다. 물론 심장은 항상 뛰지만; 그걸 인식하는 순간은 흔치 않다. 생생한 온 감각이 전해지는 동시에, 그 순간은 새삼스레 내가 정말 살아있구나 느끼게 된다. 그런 땐 인간은 정말 몸뚱이일 뿐이구나 같은 느낌도 든다. 그저 말 그대로 현재 그 순간에만 있게 된다.


그래선지 얼마간 자주 익스트림 액티비티를 찾아다녔다.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번지점프다. 그때의 기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막연하게 죽기 전에 한 번은 해보고 싶다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친구와 술 먹던 차에 문득 이야기가 나왔다. "진짜 갈래?" 마침 자기도 해보고 싶었다 장단을 맞춰준 친구의 대답과 취기가 더해져 더욱 신이 났고 대범해졌다. 그렇게 말나온 차에 바로 해치우자며 얼마 후로 날짜를 잡았다.



그리하여 청평 리버랜드 도착!

올라가기 전 서약서를 쓰고 몸무게를 재고 안전장치를 장착했다. (번지 끈 색깔이 몸무게 따라 다르단 것은 새로 알게 된 깨알사실) 점프대를 향해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는데, 지나고보니 번지점프보다 엘베의 안전이 더욱 의심스러웠던 것 같다... 철조망으로 바깥이 다 뚫린 빈약한 구조에다 올라가는 내내 계속 덜컹덜컹하는게 느껴졌다. 그 철조망 틈으로 비추어지는 몇 분 후 뛰게 될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직원 아저씨가 갑자기 "그 사이 손 넣으면 까딱하면 잘려요!"라는 헉스러운 발언을 하셔서 번지 전의 불안을 한스푼 더해주셨다.


"누가 먼저 뛰실래요?"


얼마있어 드디어 꼭대기에 도착했다. 사람이 없어서 친구와 나 둘밖에 없었는데, 나는 여러 명이 올라갔어도 무조건 첫 번째에 뛰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왠진 모르겠는데 그러고 싶었다. 아예 첫번째였을 때 머뭇거림 없이 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첫번째는 싫다는 친구 덕에 자연스럽게 원하던 1빠가 됐다.


제일 불안했던  제자리 뛰기였다. 점프대 앞에서 제자리 뛰기 거리가 어느 정도 되지 않으면, 목에 줄이 감길  있다며 갑자기  엄청난 말을 던지셨다. 거지같은 운동신경 탓에 체육 성적은 초등학생 때부터 바닥에 가까웠는데 그중 최악은 제자리뛰기였다. 설마 운동신경 때문에 번지점프 중에  졸려 죽었다는 얘기는 들은  없지만....  죽을힘을 다한 각오로 최선을 다한 제자리 뛰기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직원분이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점프 자세를 설명해주시면서도 실감이  났다. 이상하게 그때까지도 TV 연예인들 뛰기 전의 모습을 관람하듯   같은 느낌이 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그저 비현실적이게만 느껴졌다.



이러다 저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점프대 바로 앞이었다. 뛰어야 할 순간이 왔다. 먼저 점프대 바깥으로 발을 딱 반만 내놓으라 하셨다. 허공을 향해 내 발을 반 밖으로 내밀어야 했는데, 신기하게도 발이 안 떨어지는 거였다. 정신보다 앞선 몸의 반응이 그때부터 실감을 말해줬다. 어렸을 때 tv보면 번지점프 특집 프로그램이 많았다. 화면 안의 연예인들은 “진짜 못 뛰겠어요”하며 눈물을 글썽이거나 몇번을 시도했는데도 실패하는 모습을 보며, 방송이니까 더 극적인 씬을 연출하려는 쇼 아닌가 이런 의심도 있었다. 근데 직접 낭떠러지 앞의 위치가 되어보니 연출은 개뿔이었다...


겨우 발을 밖으로 내놓은 나에게 직원께서 마음의 준비가 되면 말하라고 하셨다. 그럼 그때부터 카운트다운을 세주신다 했다. 그 말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아무렇지 않은 말투여서, 이렇게 점프대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구나 하는 게 순간적으로 와닿았다.


번지대 앞에서 설렘과 기대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나는 앞으로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럴 기회가 있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먼 미래에도 가끔 떠올릴법한 강렬한 순간이지만, 이 곳이 직장인 직원아저씨에게 나는 그저 수천 명의 스쳐 지나간 고객1과도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두려움이 걷혔다. 지나고나니 이 생각이 행동을 이끈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헐... 내가 정말 뛰는구나...’


50m 발 밑엔 잔잔한 강이 있었고, 눈 앞엔 해 지는 일몰의 산이 보였다. 그 광활한 풍경은 극적인 나의 현재 상황과는 전적으로 무심해보였으며 그저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했다. 이것이 전달이라도 된듯 내 감정이 마치 우주의 먼지처럼 작게 느껴졌다. 나는 그 상황에 압도당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때의 기분을 영원히 못 잊을 것이다. 또 안 잊을 거다. 지금 반추해보니 잠깐의 순간이었는데도 되게 많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죽음앞 주마등?)


항상 모든 것이 명확히 들어맞지 않고 모호하기만 한 가운데, 마음을 담아 일치하는 어떤 한 순간은 자신을 그 찰나에 영원히 그리고 완벽하게 몰입하게 한다. 익스트림 액티비티는 이러한 특별한 순간들을 선물한다. 그 순간 자체에 온전히 풍덩 빠져 집중하게 된다. 그것이 내가 익스트림 액티비티를 지속적으로 찾아다니는 이유 같다. 가끔 무엇을 말하고자 명확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주절주절 쓰다보면 생각이 선명해질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17년 가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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