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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P May 05. 2022

팬질을 합니다

우린 모두 누군가의 팬이다

팬질을 좋아한다. 덕질보다는 일상적인 팬질을 선호하는 편인데,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누군가를 뭉근하게 애정하고 애틋하게 주시하곤 한다. 그들의 시선과 발걸음을 따르며 교집합을 찾고 여집합에 비추어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데에서 기쁨을 누린다. 이것이 어쩌면 서로에게 윤활유가 되는 정도의 '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팬질과 덕질이 한 끗 차이라 그런지, 이따금 덕질만큼이나 열성적이 될 때도 있다.(이건 대상과의 심리적 또는 물리적 거리감에 따라 다르게 진척되는 듯하다.) 대상의 화답을 기대하거나 그들의 일상에 잠시 발 담그고 싶어하는 것이다. 지나친 기대라거나 실례가 될 줄 알면서도 성큼성큼 내딛고 많은 경우 실패를 경험하지만 이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실망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애정을 꾸준히 견인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다 보면 닿을 듯 말듯하던 어느 지점에서 실처럼 얇게 연결되기 시작하는 것을 언제부턴가 감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주파수가 맞을 때, 주체와 팬을 넘어 하나의 '인연'이 된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해체되는 데에는 의지와 노력과 행동이 깃든다. 사람 간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만나려고 하면 힘껏 달려가야 하고, 피하려거든 단호히 고개를 돌려야 한다.

최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 둘 살펴보니, 나와 가까운 관계일수록 내 욕구가 뚜렷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운동이라든가, 비건이라든가, 비연애라든가. 분명 내 안에서는 아직 불안정한 특성들도 많은데, 간절한 바람으로 밀어붙이니 하나둘 자석처럼 달라붙어 끈끈한 관계망이 형성된 것이다. 이를 두고 소위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은 때로 정체된 상태로 들리기도 한다. 인근에 박힌 돌들끼리 어영부영 무리를 형성한 모양새랄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이 되고 싶은 유형의 사람들과 가까이 하면 자신 또한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목표에 대한 고찰과 행동력을 자극하는, 상당히 동적인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유형이 바뀌고 있다면 내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 힘차게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반대로 오랜 관계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거나 현상 유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신의 삶에 대단히 만족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팬질도 자신이 바라는 바가 투영된 행위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현재 누구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가? 그건 정말 당신이 가고자 하는 길과 같은 방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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