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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P May 04. 2020

나 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운 나에게1

20대, 우리는 모두 불안하다

드라마 라이브를 보며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사연이 있어..." 드라마가 종영한지도 5개월이 가까워 간다. 제대로 취업전선에 뛰어든 시간도 그만큼이란 얘기다. 드라마에 폭 잠겨 있는 동안은 말하지 못할 저마다의 사연에 마음 아파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내 고통에 잠겨 세상 가장 사연 많은 사람은 나 자신이 되었다. 이대로 영원히 백수일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수많은 취준생들은 이 불안감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그 궁금증도 이내 멈췄다. 그들은 아마 불안한 만큼 무언가 지속적으로 하고 있을 성 싶었다. 나는 불안한 만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번엔 무엇을 위해 사람들이 끊임없이 일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도대체 희망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삶 속에서 나는 무엇도 하고싶지 않은데 말이다. 그 희망이라는 것을 찾기 위해 일단 일해보는 사람도 있었고, 포기를 미덕으로 직장생활을 연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 또한 삶의 의지이자 용기였다.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삶의 기조는 아닌 것 같았지만 말이다.
나를 위한 궁금증의 해답들을 찾고 싶었는지, 그냥 하소연을 하고 싶었던 건지 믿음직한 사람들을 만나면 미적대던 생각들이 곧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일은 점차 빈번해졌다. 뭐 좋은 거라고. 그러다 내게 해답 아닌 해답을 준 것은 또래의 친구들이었다. 그것도 나와 같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는 친구들. 자신감이 떨어지면 다른 사람의 삶에서는 좋은 것만, 내 삶에서는 부정적인 것만 보이기 마련이다. 한동안 그러했다. 아니, 아직도 그런 상황인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비슷한 나이에 이뤄가고 있는 것(연봉이든, 직급이든, 계획력이든, 추진력이든)이 많은 삶을 보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나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 위축되고 있었다. 그런 내게 이제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듯 '똑'하고 핑거 스내핑을 연달아 날린 것은 또래 중의 가장 가까운 또래, 친언니와 언니의 친구였다.
"아직도 내가 이 일이 잘 맞는지 모르겠어, 그만둬야 하는 건가 고민돼." 나와 비슷한 나이에 모든 걸 내던지고 해외로 떠난 친언니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내가 대담하다고 생각을 바꾼 건 백수가 되고부터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겠다는 듯이 힘차게 그 시궁창을 벗어나 놓곤 겁먹고 주춤대는 나를 보니 아무래도 언니는 대단한 존재였던 것이다. 영어 한 마디 제대로 못하던 채로 출발해 학교도 다니고, 인턴도 하고, 비자도 연장하고, 집도 척척 구하고, 이제는 승진까지 한 것을 보니 더없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런 언니가 아직도 진로를 고민한다는 사실은 못내 충격적이었다. 돌고 돌아 본인의 진로를 제대로 찾은 줄 알았다.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를 얻어가고 있는 만큼 만족감이 높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니.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니. 나보다 더 많은 시간 우리 언니와 고민을 나누었다는 언니의 친구 역시 두 번의 직장생활 실패를 경험하고 꼭 나와 같았다는 얘기를 해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픈 소식까지 접해야 했던 것도. '똑' 핑거 스내핑이 들려왔다.
그랬다. 나만 방황하고 흔들리고 있던 게 아니었다. 부모님 세대와 같이 배고픔 먼저 해결해야 하는 세대가 아닌 우리들 대부분은 이 시기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던 끝에 퇴사를 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한 친구가 있고, 이미 그 과정만 2년 넘게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취준과 마찬가지로 준비하는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무너지는 멘탈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 지난한 과정을 뚫고 2년 반만에 합격증을 받은 지인도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이렇게 힘겹게 준비한 끝에 시작한 공무원 생활에 또 본인이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을 한다. 오랜 직장 생활로 인정을 받고 있으면서도 다른 길을 꿈꾸며 고민을 쌓고 결정에 다가가고 있는 친구도 있다. 쉽사리 엄두도 나지 않을 길을 선택해 멋져 보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돈도, 과연 잘 될지에 대한 것도 수시로 걱정하고 있을 지인들도 있다. 이보다 더 많은 주위 사람들이 방황을 딛고 새로운 곳에 섰고, 그 안에서도 또 다시 불안해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알 수 없을 '사연'들을 이제야 다시 돌아보게 됐다.
물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예전의 나처럼 '몽상가적이고 한심하다'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테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목표지향적이고 승부욕이 대단하며 '한국에서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심도있게 고민했을 터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대단한 일이나, 그렇지 않다고 해서 다른 급수의 사람이라는 듯 분리해둘 필요는 없다. 특히 그것을 상대가 느끼게 할 필요는 더욱 없다. 나 역시도 지금보다 한참 더 철 없던 시절, 직업에 귀천이 있다 여겼던 것을 후회한다. 이런 일을 한들, 저런 일을 한들 그들에게도 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까지도 어떤 시간과 고민들이 쌓였을지, 또 쌓아가고 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쨌든 이 불안을 이겨내면 분명 더 단단해질 것만은 믿고 싶다. 지금과 같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더 늦기 전에 알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스스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_2018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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