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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 입 소설

면접

by 볼파란

영순 씨는 들어가기도 전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십 층의 높은 건물의 잘 닦인 유리 창문이 햇살을 반사하여 반짝이고 있었다. 보안이 철저한 건물 안에서 시큐어리티의 매서운 시선이 닿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슬쩍 쇼윈도에 비친 제 모습을 점검하며 서둘러 들어섰다. 평소에 신지 않는 검은색 정장과 구두는 몸을 옥죄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오셨죠?"


시큐어리티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물었다.


"2040호에 면접 보러 왔는데요."


면접이라는 말에 시큐어리티가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그제야 카드 키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줬다. 이곳은 00동에 위치한 타워 팰리스였다. 위쪽 신도시 지역 중에서도 잘 사는 사람들이 산다는 곳. 특정 지역을 나눠서 비하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위쪽'과 '바닥'으로 나뉘는 시대였다.


실생활 전반에 걸쳐 AI가 보편화되고 가정용 로봇이 상용화되었다. 어딜 가든 무인 버스, 택시나 무인 자가용이 도로를 점령했고 많은 직업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저조한 출생률과 급증하던 노령 인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CRISPR-Cas9'가 발견된 이래 <인간 유전자 편집 및 출생 관리 기본법>이 제정되었던 것이다. 통칭 생명질서법으로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권리를 주창하며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는 '나'와 건강하게 죽을 수 있는 '나'의 권리에 대해서 쓰여 있었다.


이 법이 제정된 후에 유전자 편집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되었으며, 많은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사람들은 선택적 유전 조작으로 유전학적인 질병을 거세하고 건강하고 완전한 아기를 갖기를 원했다. 유전 조작 시대를 맞이하며 자연스럽게 경계가 형성되었다. 유전 조작으로 건강하고 부유한 삶을 사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이들의 경계를 은어로 '위쪽'과 '바닥'이라 불렀다.


학교나 사회에서 위쪽 출신이니, 바닥 출신이니 하는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었다. 차별이라는 이유로 그런 말들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누구나 쓰는 말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 생명질서법으로 인해 오히려 출생률은 높아졌고 고령 인구는 감소했다. 생명질서법에는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안락사에 대한 기준도 느슨해져 죽음의 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바닥 출신들은 선택적으로 태어날 권리나 원할 때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태어남과 죽음에도 돈이 들기 때문이다. 위쪽 출신은 주로 시스템의 설계자나 권력자, 엔지니어 등이었고 바닥 출신은 위쪽이 하지 않는 일들을 했다. 그마저도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위쪽에서 불고 있는 새로운 트렌드인 HQ(Human Quotient) 지수가 대두되면서 그동안 사라졌던 직업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HQ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인간다움. 그것은 차가운 로봇이나 AI 따위가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 형성에서 생겨났다. 위쪽 지역에서 가정용 로봇이 보편화되면서 인간 대신 인간의 아이를 키우거나 보살피는 보모 로봇들의 모습을 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요즘 아이들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끊이지 않는 법이었다. <유전자 편집 및 출생 관리 기본법>, 즉 생명질서법이 제정된 이래 인간성이 사라진 세상에 대한 경각심과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디자인 베이비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완전무결해 보였던 건강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아이들이 자라면서 말도 안 되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의도하지 않았던 유전적인 결점이나 건강상 오류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위쪽의 부모들은 HQ 지수가 중요하다며 가정용 보모 로봇 대신 인간 보모를 고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자리를 바닥 출신의 나이 든 여성들이 차지했다. 영순 씨는 위쪽과 바닥을 연결해 주는 소개소를 통해 이번 면접에 오게 되었다. 오늘 가게 된 집의 아이는 이제 6살 여자아이라고 했다. 6살 여자아이를 기르기 위해서 제출한 서류는 끝이 없었다. 건강 검진부터 재산, 학력, 가족 관계, 과거 경력, 각종 자격증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증명해 내야 했다.


영순 씨는 과거 중학교 선생님 일을 했었다. 이제는 사라진 직업 중에 하나인 교사의 마지막 세대였다. 45세의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두 남매는 이미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커버렸다.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바닥 출신의 아이들만 가는 곳이 아니었다. 미래를 위해서 입학시킨 학교에서 아이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위쪽과 비교되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사모님은 안 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을 연 건 가정용 로봇이었다. 완전한 인간형은 아니었고 동그란 얼굴에는 자동으로 LED 표정이 떠오르고 긴 손은 집안일에 최적화되어 있었으며 바퀴가 달린 하체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영순 씨는 여전히 익숙해질 수 없는 로봇의 안내에 따라 끝없이 넓은 복도를 지나 로비로 향했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대리석 바닥은 반짝였고 신고 있는 슬리퍼는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높은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다. 최근 위쪽 지역의 인테리어는 깔끔하고 모던하며 가구도 있어야 할 곳에만 있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을 추구했으나 이 집안은 고풍스러운 옛 인테리어를 구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순 씨는 조금은 긴장이 풀렸다. 로비 한 복판에는 딱 보기에도 값비싼 카펫 위에 거대한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고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앉으시겠어요?”


여자가 마시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자 잘 관리한 구불거리는 웨이브 머릿결이 찰랑였다. 영순 씨는 순식간에 우아한 그 몸짓에 넋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 안녕하세요.”


“박, 영순 씨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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