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워너비는 큰이모였다
가까운 사람이 워너비가 된다는 건 참으로 복이다. 우리 엄마에게는 큰이모가 그랬다. 큰이모가 입은 옷들은 엄마에게 물려졌다. 둘째 이모도 있었지만 큰이모는 꼭 막내인 엄마에게 옷을 물려줬다. 우리 큰이모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렸을 적 그 많은 동생들을 제쳐두고 독방을 차지했고, 방문을 꼭 잠근 열쇠를 지고 다녔다.
방에는 이런저런 잡지들이 쌓여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설날이나 추석이면 꼭 큰이모 집에서 하루를 지낸 후 할머니 댁으로 향했는데 이모는 내게 매번 3만 원을 쥐어주었다. 초등학생에게는 그게 꽤 큰돈이었다. 그래서인지 큰이모에 대한 나의 깊은 애정은 그 3만 원이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생에게 기꺼이 3만 원을 쥐어줄 수 있게 된대에는 큰이모부가 있다. 정미소 사장님인 큰이모부 덕분에 우리 집에는 쌀이 넘쳤다. 쌀을 사 먹는다는 걸 중학생이 돼서야 알게 될 정도로 쌀이 많았다.
정미소 사모님인 우리 큰이모가 자랑스러웠던 대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모의 향기의 영향이 크다. 성당을 꽤나 오래 다니는 큰이모 집은 앤티크 한 느낌이 나는 집이었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예수와 12제자를 그려 놓은 커다란 액자가 걸려있고 소파는 진한 베이지색의 페르시안 섬유 소재 패브릭이었으며, 집에 있는 가구들은 전부 100년은 넘어 보이는 나무에 니스칠을 해 놓은 것들이었다. 곳곳에는 나무로 만든 예수와 성모 조각상들이 놓여있었다.
그런 큰이모의 집에서 나던 향이 있다. 깊고, 진하며, 따뜻하지만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기운의 향. 그 향은 꼭 큰이모의 향이었다. 그런데, 누구보다 그녀와 잘 어울리는 향이었던 게 어느 날부터 엄마에게도 나기 시작한 것. 그게 바로 샤넬 넘버 5였다.
마릴린 먼로로 유명한 향수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향수는 우리 큰이모의 향인 것이 분명하다. 중후한 중년 여성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향. 가끔 지하철을 탈 때 혹은 공항에서 그 향이 코 끝을 스쳐가면 나는 큰이모에게 안부를 묻는다.
내가 가진 작은 목표 중 하나는 30살이 되기 전에 큰이모를 옆자리에 태우고 내 집에 초대하는 것. 그리고 강남과 한남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분더샵과 구호를 휘젓고 쇼핑을 하는 것이다. 아. 정말 취향의 뿌리는 깊고도 깊은 것이구나. 당신의 뿌리는 어디쯤일까?
[김한강의 허영] 열아홉 번째 글입니다. 인스타그램 팔로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kimyoill 입니다. 타 매체 기고 문의는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hanriverb@gmail.com으로 섭외 메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