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현 Jul 14. 2024

스스로 모기채가 된 남자

그 여름, 이 남자의 사랑법

“아까워. 분명 엘리베이터에서 2마리를 봤는데, 놓쳤어!”

요새 매일 듣는 남편의 탄식이다. 그는 요새 엘리베이터에서 모기를 잡는다. 오늘은 6마리를 잡았다며 의기양양하다. 눈에 띈 모기를 발견하면 무심코 손을 획획 젓는 게 아니다. 작전을 수행하는 킬러처럼 일부러 찾아 죽인다.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사방으로 움직이며 모기 레이더를 발동한다. 움직임이 너무 크면 모기가 도망갈 수 있으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분개한 짐승처럼 온몸의 털과 모공까지 비죽 섰을 법한 긴장감이 감돈다. 공중을 맴도는 모기를 섣부르게 움켜쥐지 않는다. 그간의 경험에 따라 모기가 벽에 앉았을 때 살상 확률이 가장 높다는 걸 알기에 숨죽이며 기다리기는 노련함. 모기가 벽에 앉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빠르고 단호하게 손을 뻗는다. 그리고 한 방의 스매싱. “탁!”


모기는 나쁘니까. 죽이는 거야 뭐 그럴 수 있지 싶었다. 하지만 모기를 잡겠다는 마음이 꽤 집착적이었다. 소위 '꽂혔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했다. 저녁에 퇴근하고 들어오면 매일 나에게 오늘 몇 마리를 잡았는지를 보고했다. 담배 피우러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엘리베이터에서 모기를 봤는데 사라졌다, 이번엔 2마리를 잡았다는 류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심지어 나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도 나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하던 이야기는 끊어지고 허공에 던져진 눈빛은 모기를 쫓고 있었다. 타깃을 찾으면 희번득 하지만, 찾지 못하면 불안초초해지는 눈빛. 으윽, 더는 못 참겠다. 나는 남편 손을 잡고 흔들며 투덜거린다.

“오빠, 뭐해? 모기 찾지 말고 날 봐줘. 모기한테 질투 날라 하네. 나를 보라고!”


그를 말리고 싶은 마음에 측면 공략을 시도해봤다. 엘리베이터에서 모기를 때려 잡았을 때 생기는 문제. 벽이 더러워지고, 덕지덕지 붙은 모기의 사체는 누가 치우냐는 것이다. 안 그래도 오래된 아파트라 엘리베이터가 무섭고 스산한데, 누더기가 된 벽을 보면 더 들어가기 싫다고. 그도 이 문제에 대해 동감했다. 하지만 그 죽음의 흔적은 그에게 있어 승리의 흔적이었다. 그는 더러움보다 다른 포인트에 주목했다.

“분명 내가 내리친 흔적이 아닌데, 다른 사람이 모기를 잡은 흔적이 있어”

사실 자기 말고도 이렇게 모기를 잡는 사람이 더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조용히 활약하고 있는 모기 킬러들이 이렇게 서로의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이는 모기잡이에 대한 암묵적 합의임을 주장했다. 에휴. 나는 청소하시는 여사님만 힘든 거 아니냐, 벽에 붙은 모기를 때리지 말라고 경고문 붙는 거 아니냐고 빈정댔지만, 어느 날 깨끗하게 청소된 벽 앞에 내 말은 무색해졌다.


어느 날 그는 더 과감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모기를 발견했는데, 사람들이 서 있는 벽에 있었다. 그 각도에서 잡으려면 그들에게 옆으로 비켜달라고 해야만 했다. 그는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 이걸 참아야 하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나. 결국 모기를 잡겠다는 집념은 타고난 내성적 성격도 꺾었다.

“저, 죄송하지만, 모기 좀 잡을게요, 옆으로 비켜주시겠어요.”

엄마와 어린 아들로 보이는 그들은 깜짝 놀라며 비켜섰다.

“어머, 모기가 있는 줄 몰랐어요. (여기 이상한 아저씨가 있어)”

“탁!”

모기를 내려치며 얻은 승리감이 쪽팔림을 넘어섰다나. 이쯤 되자 나는 진심으로 그를 말렸다. 왜 그러냐고 대체. 살살 하라고, 뭐 그렇게 열심히 잡느냐고. 하지만 그의 고백을 듣자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모기가 당신을 물면 어떡해!”


그래, 이 세상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다 사랑 때문에 벌어지는 거지. 사랑하는 아내가 모기에게 물리면 안 되니까 그렇게 열심히 잡는 거였다니. 그에게 있어 엘리베이터는 아내를 지켜야 하는 전선(戰線)이었다. 그는 예전에 강아지 라니의 산책을 할 때도 작은 모기채를 들고 다녔다. 유달리 천천히 걷는 라니의 등 위로 윙윙거리며 몰려드는 벌레들을 전기 모기채로 지졌다. 모기채는 작고 소중한 라니를 지키기 위한 그의 무기였다. 그의 활약을 모르는 라니는 세상 태평하게 걸어다녔지.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기 위한 그의 사랑법을 인정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기 한 마리가 집에 침투했다. 내 귀로 그 특유의 기분 나쁜 윙~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나는 방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며 외쳤다.

“오빠! 큰일났어! 모기가 나타났어!”

부리나케 한 손에 에프킬라를 한 손에 전기 모기채를 들고 달려온 그는 모기의 행방을 찾았다. 나도 옆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용케 숨어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그가 커튼을 확 젖혔다. 그 순간 튀어나온 모기. 사냥꾼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빠르게 휘두른 전기 모기채는 정확했다.

“지지지지직~”

난리를 치르고 한숨 돌리고 있다가 문득 내 장난기가 발동한다. 냉철한 목소리로 따지고 든다.

“오빠, 어떻게 된 거야? 엘리베이터에 모기를 그렇게 열심히 잡았으면서 어째서 집안에 모기가 들어온 거야?”

그가 하하하, 웃어야 하는데...이상하다. 한숨을 쉰다.

“어떻게 이런 실책이 나왔지?!”

그는 방금 일어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표정이었다. 한숨 뒤에는 실책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 더 집착적으로 모기를 잡을 것만 같은 결의가 느껴졌다. 엇, 이게 아닌데. 빠른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

“근데, 오빠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모기를 잘 잡아. 이렇게 계속 잡아주면 되겠네!”

내 칭찬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는 계속 한숨을 내쉰다. 모기가 들어온 걸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이거 그냥 강박증 같은 거 아닐까. 아니면 신종 벼...ㄴ..ㅌ...? 의심이 밀려온다. 아니야, 아니야. 사랑이랬잖아. 모기가 들어와 이 남자의 지고지순하고 완전한 사랑은 얼룩져버려 참을 수 없는거라 하겠지. 나는 결심한다. 모기에 물려도 철저하게 감추겠다고. 내가 집에서 모기 물린 건 알면 그는 하늘이 무너지도록 한숨을 내쉴 테니까. 세상에 모기가 박멸되기 힘들다면 지구상에 그의 사랑을 지켜줄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니까. 그는 내 사랑법을 이해해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