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화) 오후 12시쯤에 돌로미티의 동쪽 코르티나 마을을 출발하여 서쪽 오르티세이 마을을 향해 차를 몰았다. 구글지도를 검색하면, 두 마을 간 이동거리는 65.2km이고, 소요시간은 약 1.5시간으로 나온다. 편도 1차선의 이 산길 도로를 따라가면 높이 2천 미터급의 고개를 무려 세 개씩이나 넘게 된다. 만나는 고개 이름은 파쏘 팔자레고(Passo Falzarego: 2,105 m), 파쏘 발파로라(Passo Valparola: 2,168 m), 파쏘 가르데나(Passo Gardena: 2,136 m)이다.
* (참고) 이탈리아어에서 Passo와 Forcella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Passo(파쏘): 사람뿐만 아니라 차도 다닐 수 있는 고갯길 (예: Passo Gardena)
Forcella(포르첼라):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좁은 고갯길 (예: Forcella Lavarado)
구글지도를 살펴보면 이 고갯길 주변은 급격히 휘어진 S자의 연속이다. 그래서 돌로미티 여행을 처음 계획할 때는 S자 산길 운전에 자신이 없어 대중교통(버스 + 열차)을 이용해서 동서 도시 간 이동을 하려 했다. 이런 생각으로 코르티나에서 오르티세이로 가는 대중교통편을 조사해 보니, 버스 -> 열차#1 -> 열차#2 -> 버스를 타고 최소 3.5시간 걸려 이동해야 하는데, 이동시간보다 환승 정거장에서 5-10분 안에 환승을 마쳐야 하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차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차/버스표를 미리 예약하려면 어디서 해야 하는지? 또는 차편을 놓쳤을 경우, 다음 열차/버스가 언제 오는지? 즉 운행 간격을 알고 싶었지만 이런 정보를 찾는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대중교통을 포기하고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는데, 지난 3일(7/1-7/3) 동안 돌로미티 산길을 차로 달린 덕분에 어느 정도 드라이빙에 자신감이 생겼다.
사진 1. 돌로미티 (동쪽) 코르티나 -> (서쪽) 오르티세이 마을 가는 길: 2천 미터급 하늘재를 3개 넘어야 했는데, 경치가 환상적이라 눈이 심심하지 않았다.
오후 12시쯤 코르티나를 출발했다. 코르티나에서 파쏘 팔자레고 하늘재까지는 어제 왕복해 본 길이라서 그런지 낯설지가 않았다. 우리는 파쏘 팔자레고에 도착하여 어제 라가주오이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았던 파쏘 발파로라 길로 꺾어 들어갔다. 편도 1차선 산길의 주변 풍광은 비슷한 곳이 단 한 곳도 없었고, 눈 맛이 시원하고 초록초록한 풍경이 끝없이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었다.
경치가 예쁘고 비탈진 언덕 혹은 야트막한 산에는 곤돌라가 자주 눈에 띄었다. 곤돌라 승강장을 몇 군데 그냥 지나치다 급기야 우리도 곤돌라를 타보기로 했다. 하지만 달리는 차에서 곤돌라 탑승장이 보여 차를 세우려고 하면 주차 공간이 마땅치가 않았고, 주차 공간이 제법 넓다 싶은 탑승장은 하필 길 건너에 있었다. 우리는 입맛만 다시고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마지막 큰 고갯길인 파쏘 가르데나를 오르기 시작했다.
사진 2.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파쏘 가르데나로 가는 중.
사진 3.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파쏘 가르데나로 가는 중.
사진 4.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파쏘 가르데나로 가는 중. 돌로미티는 라이더의 천국이다.
사진 5. 파쏘 가르데나가 가까와지니 왼편에 거대한 암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 6. 파쏘 가르데나 고갯길에 접근 중이다. 왼쪽에 육중한 돌산이 길게 뻗어 있다.
사진 7. 파쏘 가르데나 고갯길은 S자의 연속이다. 길이 좁은 커브길에서는 맞은편에 대형버스가 오는지 미리 살펴야 하고, 찻길 우측의 라이더들도 조심해야 한다.
오후 1시쯤, 마침내 세 번째이자 오늘 마지막 하늘재인 파쏘 가르데나(2,136 m)를 넘었다. 그런데 내리막 길로 100m쯤 내려가자 길 오른쪽에 스키 리프트 탑승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재빨리 속도를 줄이면서 길옆의 노천 주차장(유료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다행히 주차장에는 빈 자리가 두어 개 남아있었다.
사진 8. 파쏘 가르데나 고갯길의 좌우에 노천 주차장(유료 주차장)이 있고, 오른쪽 언덕 위에 스키 리프트 탑승장이 있다.
사진 9. 파쏘 가르데나 고갯길에서 스키 리프트를 타고 언덕 위에 있는 단테르체피스(Dantercepies) 마운틴 라운지로 가는 중이다. 정면 산봉우리가 마치 봉수대처럼 보인다.
수퍼썸머 카드로 체크인을 한 다음 리프트를 타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무작정 탔던 리프트였기에 언덕 위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마치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기대된다는 점이 '무작정 곤돌라/리프트 타기'의 매력인 것 같다.
리프트 승강장 옆에는 단테르체피스 (Dantercepies) 레스토랑이 있어 2층에 올라가봤다. 그런데 2층의 마운틴 뷰가 장관이었다. 구름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는 거대한 바위산은 사쏘룽고(sassolungo: 3,181 m)인데, 여기 발 가르데나(Val Gardena) 지방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어 랜드마크와 같은 산이다. 우리는 예정에 없던 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진 10. Dantercepies 레스토랑의 마운틴 뷰: 구름모자를 쓴 '사쏘룽고(3,181 m)'가 정면에서 위용을 뽐낸다. 산 너머 너른 초원지대는 '알페 디 시우시'이다.
나는 외국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이탈리아에 와서 며칠간 스파게티와 피자만 주로 먹으니 속이 좀 니글거리는 듯해서 얼큰한 이탈리안 음식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식당의 수프 메뉴에 굴라쉬(Goulash)가 있어 고민하지 않고 주문했다. 굴라쉬는 잘게 썬 쇠고기에 파프리카, 감자, 당근, 토마토, 레드와인, 버터 등을 넣고 뭉근하게 오랫동안 끓인 스튜로, 원래는 헝가리 음식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에 와서 4일 만에 처음 굴라쉬를 먹으니까 속이 확 풀리고 입맛이 살아났다. ^^
만약 파쏘 가르데나 고갯길을 지난다면, 단테르체피스(Dantercepies) 마운틴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시라고 강추하고 싶다. 식사도 맛있고, 마운틴 뷰가 최고로 멋진 곳이다.
사진 11. 단테르체피스 레스토랑에서 먹은 굴라쉬(Goulash): 이탈리아에 와서 스파게티와 피자에 질렸는데 여기서 굴라쉬를 먹고 입맛이 살아났다.
참, 음식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구운 가지 + 구운 토마토 + 구운 파프리카도 속을 푸는데 제격이었다. 우연히 들른 레스토랑에서 마치 해장을 한 기분이었다. 언젠가 이 두 음식은 내가 직접 만들어 가족이나 손님에게 대접하고 싶다.
사진 12. 단테르체피스 레스토랑에서 먹은 구운 가지 + 구운 토마토 + 구운 파프리카 요리: 무척 맛있었다.
사진 13. 사쏘룽고(3,181 m)는 돌로미티 서쪽 지역인 발 가르데나의 랜드마크이다. 구름 모자가 시시각각 변한다.
사진 14. 사쏘룽고 너머에는 너른 초원지대인 '알페 디 시우시'가 보인다. 내일모레 이 초원을 하이킹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리프트를 타고 파쏘 가르데나 고갯길로 내려왔다. 이곳은 산악 바이크를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자전거 코스가 잘 꾸며져 있었다. Giara Trail (코스 길이 1.8 km / 고도차 180 m)과 Tiera Trail (코스 길이 1.5 km / 고도차 140 m)을 따라서 산악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바이크족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 높은 언덕까지 자전거를 어떻게 운반하나? 궁금했는데 산악자전거 코스가 꾸며진 곳의 스키 리프트에는 비용을 내고 자전거를 싣고 옮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참고: 오르티세이 마을에서 알페 디 시우시 산으로 올라가는 곤돌라의 경우, 성인 1명 탑승료(업힐); 19유로, 자전거 승차료: 5유로였다)
사진 15. 파쏘 가르데나 주변의 스키 리프트 코스, 산악자전거 코스, 트레킹 코스가 그려진 안내판
단테르체피스 레스토랑에서 스키 리프트를 타고 고갯길로 내려오는데, 찬바람이 제법 불어 몸이 약간 추웠다. 정면에 보이는 거대 암벽은 아마도 셀라 산군(Sella Group)의 일부인 듯 싶다.
사진 16. 단테르체피스 레스토랑에서 파쏘 가르데나 고갯길로 내려가는 중: 정면의 거대 암벽은, 아마도 셀라 산군(Sella Group)의 일부인 것 같다.
사진 17. 파쏘 가르데나 고갯길의 주변 풍경. 정면의 셀라 그룹 암벽의 회색빛과 비탈진 초원의 초록빛이 잘 어울린다.
동영상 1. 파쏘 가르데나 고갯길로 내려가는 스키 리프트에서 내려다본 산악자전거 코스: Giara Trail (코스 길이 1.8 km / 고도차 180 m) 바람 소리가 매섭다.
사진 18. 산악자전거 코스가 있는 곳에선 비용을 내고 자전거를 스키 리프트에 실어 정상으로 옮길 수 있다.
사진 19. 다 내려왔다. 스키 리프트 승강장은 파쏘 가르데나 정상에서 150 m 내려온 곳에 있다. 오른쪽 내리막길을 따라 계속 가면 산타 크리스티나를 지나 오르티세이가 나온다.
사진 20. 파쏘 가르데나의 스키 리프트 탑승장 주차장. 1시간 주차에 1.5유로를 냈다. 다 내려오니 비가 약간 뿌렸다.
사진 21. 파쏘 가르데나 고갯길에서 바라본 셀라 타워 (Sella Tower: 5개의 봉오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태리는 바이크 왕국이고, 돌로미티는 싸이클링의 천국이다.
우리는 고갯길을 내려가 산타 크리스티나 마을을 지나서 마침내 오르티세이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사진 22. 오르티세이(Ortisei): 관광지이지만 시골마을의 정취가 나는 아주 예쁜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