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마당 한쪽, 사무실 앞쪽에는 아주 큰 항아리가 있다.
여기는 시골에 가면, 빗물을 이런 큰 항아리에 받아서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항아리에 우기때면 빗물이 가득차서 어느날, 열대어 작은 물고기를 몇마리 사다가 풀어놓았다. 성인 두명이 팔을 벌려도 닿을까 말까 한 크기의 어항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느새 나의 취미가 되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사무실을 들락날락 하면서 어항을 잠시라도 들려서 쳐다보곤 한다.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쉼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즐거움을 주는 시간이다.
김승호 회장님이 농사를 지으며 사업을 통해 받는 온갖 스트레스를 풀고 쉼과 통찰력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면서 나에게도 그런 같은 시간이 어항을 통해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이 시간이 큰 재벌이 누리는 호사처럼 여겨졌다. 이 시간을 통해 여러가지를 경험하면서 호사로 여겨질 만큼의 다양한 통찰력과 기쁨, 생동감을 발견하고 있다.
어항 관찰 활동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먼저 새로 태어난 아가들이 있는지, 배가 불러있는 어미가 있는지를 관찰한다.
가끔씩 우유냄새가 나는 아가들이 물 위에 둥둥 떠서 잡아먹힐까 두려워 이리저리 숨어있는게 발견이 되면, 마치 산파가 아이를 받듯, 작은 컵으로 아이들을 퍼서 다른 통으로 분리를 시킨다. 처음에는 통 하나를 만들었는데 출산아가들이 많아지면서 2개에서 3개까지 분리를 해서 놓고 크기에 따라서 다시 재분류를 해 놓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져서 어른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을 정도가 되면 세상으로 내보낸다. 그리고 먹이를 어른과 아가들 사이즈에 맞게 갈아서 주고 누가 잘 먹는지 관찰을 한다.
어항 입구에 머리를 박고 유심히 관찰을 할 때면, 사이판에서 잠수복을 입고 스노쿨링을 했을 때로 돌아가 물고기들과 헤엄을 치며 대화를 하곤 한다. 밥은 잘 먹고 돌아다니는지, 다른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는지,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는지, 어느 곳에서 주로 노는지 등등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하늘에서 하나님이 인간들을 이렇게 보시겠구나 싶다.
우기 때 비가 억수로 쏟아진 다음날 아침에 가보면 주로 새끼들이 많이 태어나 있다. 여러 새끼들이 물 위에 여기저기 떠있는 모습을 보면 귓가에 웅장한 음악이 들려오는 듯하다. 새끼를 건지면 또 있고 또 있고... 그 아이들을 옮기면서 생명의 숭고함, 자연이 주는 힘을 온 몸으로 느끼는 것 같다. 사람이 성장을 하면서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가까이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어느 지식보다도 위대하고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끼가 작은 통에서 어느 정도 자라서 먹히지 않을 정도가 되면 그물망이나 작은 컵으로 잡아서 큰 항아리로 옮겨준다. 통 위에서 보면 누가 세상으로 나갈 정도가 되었는지 다 보인다. 숨으려고 해도 숨길수가 없다. 하나님도 우리를 이렇게 훤히 보시겠구나, 누가 어리고 누가 성숙하고, 누가 작고 누가 큰지 정확히 아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새끼들은 작은 컵으로 옮겨도 아무 저항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그 안에서 좀 큰 아이들은 제법 반항을 하고 끝까지 도망을 다닌다. 더 크고 넓은, 좋은 세상으로 보내주려 하는데도 마치 생명의 위협을 느끼듯 죽기살기로 도망을 다닌다. 심지어 도망을 다니다가 스트레스로 죽는 아이들도 보았다.
이곳은 매일이 30도가 넘기에 작은 통 안의 물은 몇주가 지나면 수초로 인해 물이 혼탁해진다. 그럼 물고기들을 건져서 깨끗한 물이 있는 다른 통에 옮겨놓는다. 그때도 필살기로 도망치기 작전이 시작된다. 한국에 다녀왔더니 물이 혼탁해져 바닥이 보이지도 않는다. 작은 그물로 이리 저리 휘저으면 몇마리가 도망치면서 물 위로 올라온다. 잽싸게 잡으려고 하니 더 잽싸게 도망을 친다. 요리조리 몸과 머리를 쓰며 빠져나가는 스피드에 얼마나 삶에 대해 간절한지가 느껴진다. 결국 몇마리는 썩어가는 물 속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주인을 믿고 몸을 맡기면 되는데 정말 안타까움에 한 숨이 절로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모습이 오버랩이 되었다.
하나님이 더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나를 건지려고 때로는 더 좋은 곳으로 옮기시려고 하는데 나는 필살기로 무서워서 도망을 다닌다. 심지어 도망을 다니다 스트레스로 스스로 죽기까지 상하기도 한다.
열대어 중에서도 크기가 작은 편이라서 지금은 80마리가 족히 넘는데도 자유로이 다니며 계속 증식하고 있다. 몇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 노란색 물고기는 제일 눈에 띈다. 가장 큰 사이즈 노란 물고기 암컷 한마리가 그동안 새끼들을 많이 나았고 그 아이들은 다른 통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어느날 노란 물고기가 플라스틱 수초에 걸려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빼주었다. 그런데 바로 가라앉았다. 너무 놀라고 슬픈 마음에 어찌할바를 몰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노란 물고기가 바닥에 가라앉자, 세마리가 다가와 입으로 노란 물고기를 뚝뚝치면서 물위에 뜨도록 계속 치는 것이다. 살아나라고, 헤엄을 치라고 마치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되는 미물도 죽어가는 동료를 도우며 몸무림치는 모습에 나도 함께 마음으로 노란 물고기를 붙들고 울며 마음 아파했다.
노란 어미 물고기는 사력을 다해 헤엄을 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하루 이틀 뒤 숨을 거두었다. 어항 안에는 어미 물고기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내어주며 살다가 떠난 빈자리와 필사적으로 살리려 도왔던 동료들의 슬픔, 자기 엄마의 존재나 소식을 알 리가 없는 새끼들이 마냥 즐거워하며 물장구를 치는 생동감등 여러 분위기가 녹아져있는듯 했다.
나는 노란 어미 물고기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며칠간은 어항을 보는 즐거움을 접었다. 노란 어미 물고기의 삶과 죽음이 우리 엄마의 삶과 오버랩이 되면서 슬퍼하고 아파했다.
이게 인생사구나.
어항을 통해 나는 기쁨과 경이로움, 즐거움, 슬픔과 안타까움 등 다양한 것들을 경험한다. 인생이라는 것, 이 세상에서의 삶이 마치 이 작은 어항(물고기들한테는 내가 이 지구를 느끼는 크기만큼이겠지만)에서의 삶과 같다. 매일 어항을 관찰하고 새생명을 받아 키우면서, 인생이 짧고 유한하기에 더 가치있고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