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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나 Jan 05. 2021

삶은 여행


삶은 여행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
드넓은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헤어지고  홀로 걷던 길은
인어의 걸음처럼 아렸지만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  나는 두려웠지
하지만 이젠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용서해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 피리
드넓은  밤하늘 마음속에 품으면
투명한 별들 가득
어제는 날아가버린 새를 그려
새장 속에 넣으며 울었지
이젠 나에게 없는걸 아쉬워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 속을 혼자 걸어가는 
두려워했을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있어야 했던 

눈물 잉크로   길을 잃은 멜로디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기억하고 있어
이제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 떠나리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간 끝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걸을  없으니
수많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

언제부터인지  노래가 귓가를 맴돈다. 어쩌다 알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알게 되고부터 몇몇 노래들을 기억해두려고 가사를 들여다보며 노래를 들었었다. 비밀의 화원, 여름 별, 돌고래자리, 라임 그린스카프... 그리고 삶은 여행. 간혹 노래방에 가게 되면 분위기 상관없이 이런 마냥 신나지도, 구슬프게 감성적이지도 않은 조곤조곤한 노래를 불렀더랬다. 착하고 고운 마음씨로 아름다운 것을 노래하는 노랫말이 퍽이나 예뻤다. 예쁜 분위기와는 달리 구슬픈 이상은의 목소리가 묘하게 어울렸다. 별다른 기교 없이 오롯이 자신으로 노래하는  목소리가 슬프면서도 힘 있게 느껴졌다.

뒤꽁무니에 점점 타오르는 밧줄을   마냥 나는 글을 쓰긴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손에 배긴 굳은살처럼 매끈한 살결 위에 슬며시 딱딱해져 어김없이 만져지는 무언가들이 일상 곳곳에 있지만, 애써 나는 그것을 꾹꾹 누르며 묻어둔다. 별로. 별로야.  하니 건져 올려지는 뭔가가 있어야  써지는  같은데,  얘기를 써볼까.  얘기를 써볼까.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고민만 하다가 2-3 혹은  감흥 없이 두어 문단을 써보지만,  내키지가 않았다.

지난 한주는 수시로 눈물이 났다. 고장 난 것처럼. 은설이 등원시키러 추운 날씨에 몸을 잔뜩 웅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운전하면서 문득. 뿌리 염색하러 미용실에 가서는 문득. 은설이에 관해 온라인 상담을 진행 중인데 답변을 읽으며 문득. 은설이랑 놀다가 문득.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한 번은 등원 길에 문득 다윗이 생각났다. 다윗도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잘못을 했는데... 그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갈  있었을까. 잘못을 깨닫고 어떻게 살아갈  있었을까. 나는 나의 잘못을 내가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르게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윗의 잘못은 모두가 알고 있었을 텐데 그것을 어떻게 견딜  있었을까.

시편의 어느 구절에는 ‘나의 죄가 항상  앞에 있음이여이런 비슷한 말이 있었던  같다. 그 말이 어떤 말인지 나는   같다. 일부러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죄인 코스프레를 하지 않아도, 나는 알게 되었다. 서슬 퍼렇게 살아 나를 꿰뚫어 보듯 바라보는 내가 저지른 나의 잘못들이, 어디를 가더라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후회가 되기도 했다.  이야기를 꺼냈을까. 이불킥이다. 그래도, 가면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게 나인걸, 다른 사람인 척하고 싶지 않았다. 상처 받기만  사람이 아니라, 나는 상처를  사람이기도 했다. 가볍게 상처라고 해도 되나 싶게. 가볍지 않은 그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었다. 홀가분하게 훨훨 날고 싶지만  날개는 젖어있었다. 무거워  수가 없다. 깊이 잠겨있고, 오를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전부가 아님을. 상처 받은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니듯, 잘못을 저지른, 아무래도 옹호해줄  없는 잘못을 저지른 나도 나의 전부가 아니다. 사실 이렇게 수시로 울어재끼지만,  수시로 시시덕거리고 뒹굴거리면서 무탈하게 지내고도 있다. 가만히 들여다봐야 할 때가 있듯, 이제는 물러서서 전체를 봐야 할 때인가 싶기도 하다. 왔다 갔다 하겠지. 그대로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삶은 여행 노랫말  용서해,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 피리.라는 곳에 머물러 숨을 몰아 쉬었었다.

치유의 과정은 과거 고통스러운 사건과의 궁극적인 화해이다. 따라서 치유의 과정을 겪은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쉽게 용서할  있다.”

아빠를 용서하는 중이다. 수시로 미웠다가 수시로 연민하다가 수시로 다시 미워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용서하는 중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대해서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기함할 노릇이지만... 나는 나를 용서하고 싶다. 없던 일로 하고 싶다는  아니라,  잘못이 아주 작다고 말하고 싶은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살고 싶다. 부정하느라 힘들었나 보다.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가 있지. 하면서 부정하고 싶었나 보다.


20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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