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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나 Jun 10. 2021

비로소 고마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온다. 원장님은 그간 내가 경험했던 서너 분의 정신과 선생님들보다 조금  세심한  보인다. 다소 긴장된 느낌이 있지만 어쩌면  긴장으로 인해 내가 표현한 단어나 느낌 표정과 감정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같다.


한 달에 한 번씩 약을 타도 되는데 선생님은 처음엔 1주 후, 나중엔 2주에 한번 올 것을 권하셨다. 상태가 좋지 못했던 터라 군말 없이 그리했다.


만약 진료에서 유의미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면 나는 한 달 분의 약 처방을 요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료시간을 내심 기다렸다.


“본인을 잘 성찰하고 돌아보는 감각이 있으세요. 아마 상담해주시는 선생님도 그렇게 느끼시고 얘기해줄 것 같네요.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본인을 들여다보고 살피는 부분이 나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이 되네요.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떠세요? 긍정이 되시나요? 아니면 부정하고 싶으세요? 어떤 분들은 기분 나빠하시는 경우들도 있더라고요.”


“음...  아 그렇구나. 그런 것 같아. 하고 생각돼요. 저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 칭찬을 들으면 동의가 안 되는 면이 있어서 말한 사람의 의도를 의심해보거나 혹은 그냥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 마는데... 스스로 돌아본다는 부분에서는... 동의가 되는 것 같아요. 기분 나쁘지 않고, 조금은 좋기도 하지만... 엄청 들뜨지도 않고 지금은 덤덤하네요.”


진료실을 나오고 결제를 한 후 조제실 앞에서 기다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비로소 내가 아파한 시간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까.



내적 여정 심화 2 과정 중에서 비합리적 신념들을 살펴보았다. 여러 가지의 목록에서 나는 점수를 후하게 주었다. 이 말도 나에게 강력하고 이 말도 나에게 강력했다. 1부터 10까지 어느 정도로 동의하는지 점수를 매겼는데 나는 제일 낮은 점수가 5점이었고 10점을 준 항목들도 서너 개가 있었다. 다른 분들은 0점 체크하신 분도 있고 10점을 준 항목도 많지 않았다. 이런 생각들을 강하게 붙들고 있었던 내가 우울증에 걸리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갔을 때 말을 꺼낼까 말까 고민했다. 언제 즘 약을 줄여보는 게 좋을까요? 언제까지 약을 먹고 끊는 시도를 해볼까요?


그 질문을 하는 상상을 해본다. 스스로 자신이 없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이내 불안이 밀려온다. 약을 줄였다가 혹은 끊었다가 다시금 절벽 끝으로 내몰려 가쁜 숨을 쉬며 간신히 버티는 나날이 이어지진 않을까. 다시 그 두려운 곳으로 내몰리면 나는, 나는, 다시 수면 위로 오를 때까지 또 얼마나 걸리게 되는 걸까. 하고 말이다.


앞으로 조금은 더 잘 지내보면,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심연으로 떨어져도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그려본다. 이전보다 조금은 더 나을 수 있을 거라고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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