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엄마가 떠오른다.
여름이다. 여름엔 은설이를 씻기며 나도 함께 씻는다. 나의 축 쳐진 젖가슴을 빤히 보는 은설이에게 멋쩍게 웃어주며 엄마를 떠올린다. 어렸을 적 목욕탕에서 엄마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젖가슴을 보며 설명할 수 없이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더랬다. 아랫배가 팬티 선 밖으로 삐져나오는 것을 어루만지며 엄마를 떠올린다. 튼 살의 무늬를 빤히 보며 왜 이런 무늬가 있냐는 은설이의 물음에 대답을 해주며 엄마를 떠올린다. 어렸을 적에 엄마의 흰 배에 커다랗게 세로로, 굵은 뿌리마냥 나 있던 수술 자국을 보고는 못 본 척, 보면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급히 시선을 돌린 적이 있더랬다.
은설이도 씻기고 나도 씻고는 밖으로 나와 대충 옷을 걸쳐 입고 선풍기 앞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면 엄마가 떠오른다. 딱 이 자세로, 무릎을 벌리고 세워 앉아 팔꿈치는 무릎에 걸쳐놓고 무념무상으로 한 숨 돌리는 나는 엄마를 떠올린다.
두둥실 우물에 달처럼 엄마가 떠오르는 걸까,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던져 엄마를 떠 올리는 걸까.
찐 옥수수, 찐 감자, 참외, 단감, 생가지, 생고구마, 생쌀.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먹던 엄마가 떠오른다. 방바닥 먼지와 머리카락을 훔치며 엄마를 떠올린다. 잔 물건들은 정리하지 못하고 구석구석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쌓아놓으면서도 방바닥 먼지들은 걸레로 훔치며 발바닥에 먼지 붙는 게 싫다고 여름에도 덧신을 집에서 꼭꼭 신던 엄마가 떠오른다. 유치원 앞에서 다른 애기 엄마가 아기띠로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온 것을 보면 나는 티 나지 않게 이뻐하다가 엄마를 떠올린다. 지나가는 갓난아기만 보아도 아이고 소리를 저절로 하며 이쁘다고 하는 엄마가 떠오른다. 아빠 없을 때 몰래 과자를 잔뜩 사 와서 아빠 오기 전에 어서 먹자고 신나 하던 엄마가 떠오른다. 은설이랑 간식을 맛있게 먹으며 웃다가 엄마를 떠올린다.
나에게서 엄마를 발견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엄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엄마처럼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엄마가 야속했다. 엄마처럼 남편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집안 살림 어설픈 엄마가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에게서 엄마를 발견한다. 시시각각 엄마가 떠오른다. 처음엔 참 불편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고 엄마처럼은 안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엄마의 부분이 나에게 있는 걸 본다. 그냥 본다.
끈적거리는 걸 유난히 싫어하던 엄마였다. 나보다 땀이 많은 엄마는 내 살결을 만지며 너는 어쩜 이렇게 보송보송하냐고 물었었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날이 습하여 에어컨 제습기능으로 켜 두며 엄마를 떠올린다. 그렇게 나를 만진 엄마의 손길을 떠올린다. 엄마 품에 안겨 자고 싶어도 어쩐지. 편치 않아서 결국 몸을 돌려서는 옷자락만 잡고 자던 내가 떠오른다. 등 돌린 엄마의 등을 보며 편하다고 느꼈던 내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