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타 온다. 원장님은 그간 내가 경험했던 서너 분의 정신과 선생님들보다 조금 더 세심한 듯 보인다. 다소 긴장된 느낌이 있지만 어쩌면 그 긴장으로 인해 내가 표현한 단어나 느낌 표정과 감정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씩 약을 타도 되는데 선생님은 처음엔 1주 후, 나중엔 2주에 한번 올 것을 권하셨다. 상태가 좋지 못했던 터라 군말 없이 그리했다.
만약 진료에서 유의미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면 나는 한 달 분의 약 처방을 요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료시간을 내심 기다렸다.
“본인을 잘 성찰하고 돌아보는 감각이 있으세요. 아마 상담해주시는 선생님도 그렇게 느끼시고 얘기해줄 것 같네요.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본인을 들여다보고 살피는 부분이 나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이 되네요.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떠세요? 긍정이 되시나요? 아니면 부정하고 싶으세요? 어떤 분들은 기분 나빠하시는 경우들도 있더라고요.”
“음... 아 그렇구나. 그런 것 같아. 하고 생각돼요. 저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 칭찬을 들으면 동의가 안 되는 면이 있어서 말한 사람의 의도를 의심해보거나 혹은 그냥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 마는데... 스스로 돌아본다는 부분에서는... 동의가 되는 것 같아요. 기분 나쁘지 않고, 조금은 좋기도 하지만... 엄청 들뜨지도 않고 지금은 덤덤하네요.”
진료실을 나오고 결제를 한 후 조제실 앞에서 기다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비로소 내가 아파한 시간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까.
내적 여정 심화 2 과정 중에서 비합리적 신념들을 살펴보았다. 여러 가지의 목록에서 나는 점수를 후하게 주었다. 이 말도 나에게 강력하고 이 말도 나에게 강력했다. 1부터 10까지 어느 정도로 동의하는지 점수를 매겼는데 나는 제일 낮은 점수가 5점이었고 10점을 준 항목들도 서너 개가 있었다. 다른 분들은 0점 체크하신 분도 있고 10점을 준 항목도 많지 않았다. 이런 생각들을 강하게 붙들고 있었던 내가 우울증에 걸리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갔을 때 말을 꺼낼까 말까 고민했다. 언제 즘 약을 줄여보는 게 좋을까요? 언제까지 약을 먹고 끊는 시도를 해볼까요?
그 질문을 하는 상상을 해본다. 스스로 자신이 없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이내 불안이 밀려온다. 약을 줄였다가 혹은 끊었다가 다시금 절벽 끝으로 내몰려 가쁜 숨을 쉬며 간신히 버티는 나날이 이어지진 않을까. 다시 그 두려운 곳으로 내몰리면 나는, 나는, 다시 수면 위로 오를 때까지 또 얼마나 걸리게 되는 걸까. 하고 말이다.
앞으로 조금은 더 잘 지내보면,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심연으로 떨어져도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그려본다. 이전보다 조금은 더 나을 수 있을 거라고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