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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나 Aug 21. 2021

나 혼자 환자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다른 어떤 이도 나처럼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라면 좋겠다고. 내 주변엔 없다. 있어도 말을 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어쨌든 내겐 나와 같은 환자 입장은 없다.


요즘 다니는 병원은 지역맘 카페에서 알아보다가 추천 댓글을 보고 검색한 후에 느낌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 찾아간 병원이었다. 추천 댓글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추천한 사람이 강하게 추천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끌리듯 갔다. 뭔가 근거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역시나 느낌대로 움직인다. (ㅎㅎ)


ㅈ선생님은 묘하게 생기셨다. 거북이처럼 생겼다고 해야 하나 도롱뇽처럼 생겼다고 해야 하나. 50대처럼 보이는 남자 선생님인데 키는 크신 편이고 지난번 대기실에서 지나가는 모습을 봤는데 가방과 신발이 흔하지 않지만 세련된 가죽이었다. 옷을 잘 입는 것처럼 보였다. 손톱은 조금도 기르지 않고 아주 깔끔했다. 예전 동네 병원 선생님의 길어도 너무 긴. 기타 연주자처럼 기른 듯한 긴 손톱과 많이 대비되었다. 책상은 항상 정돈되어있었는데 맨 처음 갔던 알코올 중독 치료 전문병원 병원장님의 레고 블록과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던 책상과 많이 대비되었다. 진료실에는 커다랗고 비싸 보이는 공기청정기, 책상 위의 큐브 모양 심플한 가습기, 선생님 뒤편에는 누구한테 선물을 받으셨는지 선생님의 캐리 커져 액자가 작게 걸려있다. 한쪽 벽면에는. 큰 창이 있고 건물 옆 작은 도로가 내다보인다.


2주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2주간의 약을 처방받는다. 상담이 진행되지 않고 ‘진료’처럼 간결하게 끝나면 10200원 즈음, 적당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상담이 진행되면 12700원 즈음 나온다. 약값 포함이다. 정신과 병원은 옛날 병원처럼 약 조제실이 함께 있다.


평소에는 화요일 오후에 갔었다. 대기번호가 10번인 경우가 잦았다. 화요일에 가기 귀찮아서 수요일 오전에 진료를 보러 갔다. 수요일 오전 진료는 처음이거나 엄청 오랜만이거나인 듯하다. 화요일 오후와 달리 수요일 오전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랬나.


나는 보통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2주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았지. 떠올리며 사건이나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이번엔 기다리면서 미리 생각하기 귀찮아서(?) 읽던 책이 재밌기도 해서 정리를 하지 않았다. 쓰면서 생각해보니 이전보다 대기실에서의 긴장이 줄어든 느낌이다. 처음부터, 대기실에서 대기하다 보면 영락없이 나는 환자인 것에 괜히 긴장이 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진료를 대기하는 사람들을 살피며, 제3의 시선에는 저 사람들과 내가 똑같아 보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긴장이 덜 했고 그래서 이야기보따리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 같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인사를 한 뒤에 생각나는 일을 말했다. 은설이가 말을 더듬어서 담임선생님에게 검사 요청을 들었던 것, 방학 동안 은설이와 전쟁 나지 않고 지나서 다행인 것, 개학하고 나서는 두통이 사라져서 신기한 것을 이야기했다. 이쯤 해서 ‘약은 드시던 대로 처방해 드릴까요?’라고 선생님이 물으면 그렇게 진료가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이 아니라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없나요? 생각나는 것이나..’라고 질문하셨다. 뭐 텍스트는 그대로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느낌이었다.


당황했다. 더? 더 이야기할 것? 없다고 하지 않고 (없다고 할 생각조차 못했다.) 급하게 나는 머릿속을 뒤졌다. 가만있어보자. 뭐가 있지. 아 최근에 ‘기대’에 관련해서 생각난 것들을 이야기해야겠다 싶었다. 미리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니 횡설수설했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 싶은 느낌이 들긴 했다. 그러다가 선생님을 봤는데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 게 아닌가. 아까보다 훨씬 더 당황했다. 말을 갑자기 끊기도 뭣하고 이어가자니 당황해서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잊었다. 뭔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얼레벌레 마무리했다.


졸았던 사람이 맞나 싶게 또 내 이야기를 타이핑하면서 듣고는 질문하고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잘못 봤나 싶었다.


눈을 감고 졸고 있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못 본 체했다. 그러곤 이내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환자란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아서 비용을 지불하고 환자라는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한다. 상대방이 졸고 있는데도 이야기를 멈추지 못한다. 많이 피곤하시죠.라고 선뜻 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 순간, 컴퓨터 화면을 보다가 내 눈을 보다가 하던 그 눈동자가 눈꺼풀에 가려진 그 순간 나는 이 자리에 앉았을 많은 사람들, 환자의 자리에 앉았을 많은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꼈다. 사람 하나하나가 다 제각각 다르고 고유하듯 환자여도,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다 제각각 고유한 빛과 그림자가 있을 터인데, 그럼에도 그 순간만큼은 이 자리에 앉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만은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통스러웠던 시기의 나처럼 비슷하게 괴로워한 누군가를 보면 알 것 같아서, 결코 알 수 없겠지만 알 것 같아서 아프다. 괴로움을 덜어주고 싶어 선뜻 병원을 추천하고 싶어 진다. 약을 복용하면 참 좋다고 말하고 싶어 진다. 상담이 정말 좋다고 말하고 싶어 진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다 알려주고 싶어 진다. 그러나 몇 번 그래 보니 반응이 썩 좋지 않아서 그러지 않고 있다.


채용신체검사를 할 때 여자 의사 선생님이 내가 기록한 복용 사실을 보고선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투로 자기도 그랬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랬’었’다고.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고. 이게 위로인지 격려인지 모르겠으나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노라고 이야기한다. 이해를 받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마도 그 선생님은 과거의 자신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병원에 자신도 다니기 시작했다고 말을 해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지인이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꾸준히 복용하지도 않고 의사 선생님의 조언처럼 술을 끊지도 않았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은 걸 수도 있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고, 그냥 안 먹고 견뎌보니 견뎌지더라고 했다. 내게 아직도 약을 먹느냐고 묻는다. 그러고는 그렇구나…. 한다. 말줄임표에 담긴. 글로 그려낼 수 없는 눈빛은 나를 참 쓸쓸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힘겨운 시기를 지난다고 해도, 나처럼 약을 먹지는 않는다. 나처럼 정신과를 찾아가지는 않는다. 상담도 받지 않는다. 가끔은 이런 사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한다. 약을 끊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끊는 건 아닐까. 약물 의존이 아닐까. 그야말로 정신력이 약해빠진 건 아닐까. 큰 노력 없이 쉽게 편해지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약을 끊으려는 노력 없이 계속 이것을 유지하려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것 아닐까.


나 혼자 환자다. 어딜 가도 나 혼자 환자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환자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럼 이 쓸쓸한 기분이 좀 나아지려나.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애써 생각해본다. 같은 환자여도 달라도 한참 다를 것이라고. 나는 다르고 싶으면서도 같고 싶은 것이라고. 동질감을 느끼고 싶으면서도 이질감을 느끼고 싶어 할 거라고.


그러니 그걸로 됐다. ㅈ선생님이 잠시 지긋이 눈을 감았던 그 찰나에 ‘환자’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을 이름 모르는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만으로. 되었다. 별 거 아닌 걸 아주 특별하게 여기고 싶어 하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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