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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Mar 18. 2024

비엔나의 중심에서 '리치'를 외치다

슬스레터 #27

- 유럽 암장 후기 (1) Blockfabrik


2월 초, 자유의 몸이 되었다. 퇴사 기념으로 2월 14일부터 3월 2일까지 오스트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18일 동안 도시 3곳(비엔나, 잘츠부르크, 인스브루크)을 방문해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경험했는데, 클라이머라면 역시 그곳의 암장 또한 맛봐야 하는 법. 볼더링 암장 3곳과 리드 암장 1곳을 접한 후기를 한 편씩 공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소개할 암장은 비엔나의 유명 관광지 벨베데레 궁전에서 가까운 블록파브릭(Blockfabrik). 독일어로 '블록 공장'이라는 뜻이다. 왜 공장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는데, 방문해 보고서야 납득했다. 


비엔나 지하철 우반(U-Bahn)을 타고 Pilgramgasse역에서 내려 주택가 골목을 10분 정도 걸으면 등장하는 이곳. 빌라 사이에 웬 화물 트럭이 잔뜩 주차되어 있을 것 같은 인상의 큰 정문이 나온다. 활짝 열린 입구로 들어가면 트럭 대신 확 트인 마당이 등장하고 캠핑용 의자가 곳곳에 놓여있다. 마당 안쪽에는 암장에서 운영하는 야외 식당에서 맥주와 피자 등을 먹으며 클라이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치면 비로소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


오스트리아 암장을 투어하며 모은 카드와 스티커


해외에서 암장을 방문한 적이 많지 않아 다소 긴장했는데 이용 방법은 정말 간단했다. 오스트리아는 한국과는 다르게 일일 이용이어도 회원가입을 먼저 진행한다. 입구에 놓인 태블릿 PC를 통해 이름, 주소, 성별 등을 입력한 뒤, 데스크로 가서 여권을 내밀면 직원이 확인 절차를 진행한다. 그리고 하루만 할 건지, 다른 게 필요한지를 물어본다. 그때 오늘만 운동할 거라고 답하면 된다. (일일 이용료는 12유로 정도였다.)


입장하면 눈앞에 펼쳐지는 전경 (왼) / 암장 한가운데에 탑아웃으로 오르는 큰 섹터도 있다. (오)


슬랩, 오버 행은 물론 탑아웃까지
매력적인 벽이 한가득


이용료를 지불하고 드디어 입장! 분위기도 살펴볼 겸 한 바퀴 쭉 돌며 암장 구석구석을 살폈다. 슬랩 벽은 4~5개, 오버 행 벽은 2~3개 정도, 여기에 암장 한 가운데에 탑아웃으로 오르는 섹터까지 있었다. 한국에서도 큰 볼더링 센터를 가봤지만, Blockfabrik은 큰 규모는 물론 모든 벽마다 문제가 빼곡하게 차 있어 알차디알찬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2층에는 덤벨, 바벨, 행보드 등 각종 도구를 두어 몸을 단련할 수 있는 트레이닝 존과 킬터보드 존, 스트레칭 존이 한데 모여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탑아웃으로 오른 클라이머들이 편히 내려가도록 낸 길목이 있었다.


1층 데스크와 2층 트레이닝 존


평균 키 170cm의 나라여서일까?
내가 나약해서일까?


다 둘러봤으니 본격적으로 운동할 차례. 이곳은 퐁텐블로 볼더링 등급을 사용하여 4a부터 8c까지의 난이도로 문제를 구분하고 있었다. 먼저 4a+, 5a 문제 두어 개를 풀며 나름대로 세팅 스타일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뒤, 나는 오스트리아 클라이밍의 세계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출국 전부터 다른 클라이머들에게 서양인의 피지컬을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잡기 쉬운 홀드들로 구성된 문제여서 '한번 붙어볼까?'하고 기세등등하게 가도 손과 발이 닿지 않아 반도 못 가고 내려오기 일쑤였다. 키 151cm, 암리치 149cm인 내가 평균 키 170cm의 나라에서 운동하면 온통 상처뿐이구나···. (코리안 리치 클라이머들이여, 복수를 부탁한다.)


리치가 길어야 유리한 문제는 뒤로 하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실력 부족'도 있는 것 같다. 나보다 더 어린 친구들도 나와 같은 문제를 푸는 걸 봤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 모두 나와 키가 엇비슷했다는 것으로 위안 삼아본다.) 그래도 슬랩 벽이 많아서 평소 접하지 못한 밸런스 문제를 많이 풀었다. 덕분에 애써 한 번쯤은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네! 하며 계속 벽에 붙을 수 있었다.


풀리치여서 힘들었던 문제 (왼) / 길을 통 모르겠는 문제 앞에 있는 나 (오)


1시간을 아득바득 더 머무르며 여러 문제에 도전했다. 하지만 가장 해내고 싶던 문제는 결국 완등하지 못했고, 6a+ 문제까지 푼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 내가 루트 파인딩을 잘못한 거겠지. 잘 있어라, 블록 공장아. 그렇게 씁쓸한 마음을 안고 암장을 나섰다. 유일하게 나를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맥주 한 잔 마시러.


덧붙이자면, 여행 전 이곳을 추천해 준 클라이머도 리치 타는 문제가 많다고 느꼈다고. "걔들은 런지나 다이노로 잡는 홀드, 저는 더블 다이노 뛰고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여행 가기 전에 알려주시지 그랬어요···)



총평

비엔나 시내에서 암장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지 않다.

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여서 접근성이 좋고, 유럽 분위기를 느끼며 걸을 수 있어 마냥 즐겁다.

주변에 카페, 식당이 많아 운동 전에 간단히 배 채우기 좋다.

자체 운영하는 식당이 있어 따로 식사할 곳을 찾는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단, 배고파서 또는 힘이 없어서 못 푼다는 변명이 안 통함.)

박물관 인근에 있어 낮엔 관광, 저녁엔 운동 코스로 여행 계획을 짜도 좋다. 체력이 된다면.


Blockfabrik 암장 정보  

주소 | Schlossgasse 10-12, 1050 Wien, Austria

운영 시간 | 평일 7:30 ~ 23:00, 주말 7:30 ~ 22:00 (연중무휴)

가격 | 일일 이용료 12유로 (회원가입비 없음), 대여화 3.5유로, 초크 대여 1유로

인스타그램 | @blockfabr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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