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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Jul 17. 2024

복날, 1억 아기새의 죽음

서울 중심가 치킨 거리에서 외치다

양가감정의 계절, 여름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싫기도 한 계절이 여름이다. 여름은 어찌 보면 계절의 여왕이라 해도 좋을 만큼 생명력이 넘친다. 겨울을 지나 봄에 움트기 시작한 지상의 모든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고 피어나 열매를 맺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과일 좋아하는 내게 쏟아져 나오는 여름의 과일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이 계절을 싫어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뿐인가. 나는 하늘의 구름을 보며 멍 때리기가 취미 중의 하나인 사람이다. 새파란 하늘을 캔버스 삼아 시시각각 펼쳐지는 새하얀 뭉게구름의 향연은 단연코 7월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내가 마냥 여름을 좋아하기 힘든 까닭은 여름이면 다가오는 '복날' 때문이다. 단순히 보면야 무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몸을 돌보고 보충해 주는 날이라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우리 조상님들은 나물과 김치, 된장, 두부 등  균형 잡힌 자연식과 채식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효율성이 극대화된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K치킨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치킨 산업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밀집 사육되고 있는 어린 닭들이 인쇄된 현수막 위에 앉아서 닭을 죽이지 않는 복날을 외치다.
복날 추모행동에 참여하다

엊그제 7월 15일은 복날 절기의 시작을 알리는 초복이었다. 나는 미리 예정된 '동물해방물결'에서 주최하는 '복날 추모행동'에 참여했다. 2017년 정식 출범한 <동물해방물결>은 '종 차별 철폐와 동물해방'을 목표로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이라는 슬로건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필자가 꾸준히 정기 후원하고 있는 단체이기도 하다. 작년 개식용 종식이 정식으로 국회법에 통과되기까지 수많은 활동과 목소리를 내온 '동물해방물결'은 이 나라 동물권의 보배와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기새'란 복날에 먹는 삼계탕의 재료인 닭을 가리키는 말이다. 철저히 효율성을 따져 길러지는 이 병아리들은 생명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되며 길러지는 게 당연했다. 닭고기로 성장시키는 기간도 점점 줄어들어 6개월이었던 게 요즘은 1개월로 끝낸다고 한다. 닭들이 농장에서 사육되고 도축장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고통과 학대를 경험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 사실은 ‘동물해방물결’과 ‘동물을 위한 마지막 희망’(LCA)의 활동가들이 삼계탕에 이용되는 삼계(백세미)를 사육하는 국내 농장 3곳을 잠입 조사해 밝혀낸 사실이다.

K치킨 앞에서 자유 발언 중인 필자
치킨 거리에서 치킨 산업을 비판하다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그늘에서 학대당하고 고통받는 동물들을 위해 애쓰는 활동가들은 늘 있어왔다. 윤리적 비건 15년 차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왠지 모를 마음의 빚 같은 게 늘 있어왔다. 물론 이 또한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동물활동가들이 겪는 감정적 무게감이 어떠할지는 생각만으로도 무거운 슬픔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러던 이번에는 무어라도 해야겠다 싶어 '자유발언'을 하겠다 신청을 했는데 막상 해놓고 보니 걱정이 되는 거였다. 집회 전날 받은 안내로 행사 시작하며 네 번째 발언 순서가 정해졌다고 해서 내심 첫 순서가 아니니 다행이다 하던 차였다.


하지만 당일 도착해 보니 당일 사정으로 불참하게 된 발언자가 생겨 나는 치킨 거리의 행진 중 광장에서 첫 번째로 자유발언을 하게 된 것이었다. 당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오며 준비한 원고는 있었지만, 초복날 복달임을 하고 있는 중이나, 하고 나온 직장인들이 오고 가는 살벌한(?) 거리에 서고 보니 나름 비장한 마음이 드는 게 아닌가.


기억에 남는 건, 행인 몇이 길을 멈추어 선 채 발언하고 있는 나를 정면에서 바라봤다는 것이다.(어쩜 노려본 것일 수도 있음) 나는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진심을 담아 발언을 했다. 웬일인지 떨리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져서 줄여야 했다.


준비했던 발언 원고

복날, 1억 아기새의 죽음을 추모하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5년 차 윤리적 비건이며 시인이자 요 가인인 김윤선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제가 나온 이유는 초복인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 없는 물건처럼, 취급당하며

고통 속에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동물을 사랑해서 동물을 먹지 않고 착취한 것들을 쓰지 않는 비건이지만

그렇다고 동물을 사랑하지만 동물인 고기를 먹는 누군가를 비난할 생각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유의지이며, 저 또한 비건이 되기 이전 복날의 풍속을 따라 삼계탕을 먹었고 먹어야 되는 줄 알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들은 우리나라의 닭 소비가 전 세계 1위라는 사실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나물과 맑은 등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다가, 1년에 한 번 복날에 고기를 섭취하는 정도의 풍속을 지켜왔다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화와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가 만나는 지점 속에서 현재의 육류산업은 어떻습니까? K치킨으로 마케팅되는 치킨 산업을 넘어,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현 재에 이르러서까지 과도한 공급이 필요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당장 복날을 앞둔 전국의 닭장에선 아비규환이 벌어졌고, 현재도 벌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른 아침 고속도로를 지나다 도살장으로 실려가는 닭장차를 마주친 적이 있을 것입니다. 불결하고 악취 나는 A4 용지 만한 케이지 안에서 6개월 동안 길러진 닭, 아니 그들은 사실 병아리입니다.


10년 이상 살아야 할 자연수명에 비해 채 6개월 동안(6개월이 아닌 1개월로 줄여 키워진다는 걸 이번 집회에서 알게 되었다) 오직 닭고기로 길러지기 위해 좁은 케이지에 갇혀 성장 촉진제가 투여된 사료를 먹여 키운 그 아기새들이 인간의 몸보신을 위해 공급되는 그 뽀얀 닭들인 것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의 이치에 음과 양이 있다고 하지만, 육식산업, 아니 치킨 산업에는 그보다 훨씬 큰 음과 양이 존재합니다.


멋진 유명 인물들을 등장시킨 치킨광고는 조명받는 치킨 산업 그 자체입니다. 부화하자마자 암 수가 갈려 수평아리는 바로 기계 속으로 던져져 죽이고. 암평아리만  선별해 1달 만에 닭고기로 길러내는 그 어둡고 불결하고 무자비한 현실은 결코 드러내지 않습니다. 불결한 환경 속에서의 전염병을 막기 위한 과도한 항생제와

속히 자본을 뽑아내기 위한 성장 촉진제 속에서 자란 병아리들이 결코 보신이 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 ‘불편한 진실’이 언제까지나 가려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렇게 죽어나간, 현재도 죽어나가는 그 고통을 알고 느끼는 모든 동물들을 추모합니다. 특히 복날에 가장 쉽게 생각하는 채 자라지도 못한 1개월짜리 아기새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 자리에 모여주신 여러분, 행인 여러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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