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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Apr 18. 2024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인간이 만들어 준 슬픈 운명

  사설 동물원 담장의 허술한 부분을 뛰어넘어 탈출에 성공한 얼룩말이 있다. 그래 일단은 좁은 우리를 벗어나 어디로든 갈 수 있으니 그건 다행이라 해두자. 하지만 위험한 차도를 지나 그가 지금 서 있는 곳은 막힌 길 앞이다. 유전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을 질주의 본능을 채우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주택가 골목 끝에 멈춰 서있을 뿐이다. 아름다운 무늬의 생명체는 어쩌다 조상 대대로 살아왔을 초원이 아닌 곳에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을까?

  이로부터 1년 후 이번에는 생태체험장을 탈출한 타조가 경기도의 어느 도로를 달려가고 있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이 친구 역시 도심 속 차도가 아닌 평야를 달려야 마땅할 생명체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러고 보면 이런 탈출 사건은 심심치 않게 접하는 뉴스라는 걸 알게 된다. 도살장으로 향하던 트럭에서 탈출한 황소가 순간의 자유를 누리며 차도에 서있던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무사히 포획했다는' 후속 기사를 보며 서글프고도 아이러니한 감정에 빠지기도 했다. 탈출에 성공했던 죽음을 앞둔 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인간의 시각에서야 안전하게 소를 잡아야 했겠지만, 도로에서건 잡혀서건 소를 기다리는 건 살고 싶은 본능과 자유를 지켜주지 못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사육장에서 태어난 곰은 평생을 철장에 갇혀 인간의 몸에 좋은 웅담즙을 채취당할 목적으로 사육된다고 한다. 그 지옥을 벗어나고 싶어 사육장을 탈출했던 사육곰 또한 당연히 탈출에 실패하고 만다. 이에 굴하지 않고 인간은 이들을 상품화시키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 체험을 원하는 관광객들을 모으고 즉석에서 채취하게 하는 잔혹한 짓을 사업과 연결시킨다니, 참으로 무섭고 야만적인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진행되고 있을 걸로 짐작되는 게 '돌고래 타거나 만져보기' '조랑말 타기'가 있다. 극한의 스트레스 상태로 몰기 위해 소를 굶기고 학대하다 싸움을 시키는 '청도 소싸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청도 소싸움의 장면 사진은 그 잔혹함에 차마 보기가 힘들 정도다. 태생이 유순하고 복종적인 초식동물이자 포유동물인 소를 먹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까지 착취하는 이것은 '학대비즈니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늘 그렇듯 이런 탈주극, 아니 짧은 자유의 끝에 탈주동물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포획틀과 방호복을 입은 인간들이다. 대개는 마취총을 쏘아 정신을 잃게 한 후 생포해 탈출했던 곳으로 되돌려놓는 게 이 해프닝의 정해진 룰이자 끝이다. 간혹 이 과정에서 죽음을 맞는 탈주 동물들의 경우도 생기지만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언제쯤이면 사육장에서 동물들이 탈출했다는 뉴스를 접하지 않게 될까?  지구 위 생명체 중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언제까지 동물들을 괴롭히며 살아갈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사육동물들에게 가해질 유린과 고통을 생각하면 속이 메스꺼워질 정도로 불편하다.


    기사 속에서 간혹 이들 사육동물들의 탈출 배경에는 가족과의 이별이 있었다고 한다. 얼룩말도 타조도 엄마가 죽고 난 후 그리움에 이상증세를 보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를 감행했다는 거다. 엄마 생각에 우리를 탈출한 얼룩말이나 타조나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던 소나 실험실 동물들이 느낄 감정인간이 느끼는 것다름없을 감정일 것이다.


  지난 4월 10일은 전국구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날이다. 나도 사전 투표가 아닌 당일날 아침 일찍 가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왔다. 내가 던진 한 표가 어쩌면 좋은 세상을 향한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담아 정성을 다해 본 투표일에 갔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 걸까? 정말 나아질 것인가? 좋은 세상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한 국가의 도덕성을 알려면 동물과 여성을 대하는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라는 유명한 어록이 떠오르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명을 가진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대우받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여전히 희망하고 있다. 여전히 그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비건 생활자로서의 이 삶을 기꺼이 받아들여 아름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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