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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짝 Aug 23. 2024

조울증과 일기 쓰기

기록은 기억을 보조하고, 기억은 감정을 조정한다

일기 쓰기는 누구에게나 유익한 습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조울증은 감정의 극심한 변동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 건강 질환이기 때문에, 일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은 이 병을 관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기분이 뜨고 가라앉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합니다. 이러한 감정의 변동은 종종 예측 불가능하게 나타나고, 그 원인과 경과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이때 일기는 하루하루의 감정 상태와 그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기록함으로써, 감정 변화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기록된 데이터를 통해 자신이 언제, 왜, 어떤 상황에서 기분의 변화를 겪었는지 분석할 수 있으며, 이는 조울증의 패턴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조울증 환자는 종종 자신의 감정 변화에 관한 기억이 왜곡되거나 일부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기 쓰기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일기는 자신의 감정 변화의 정확한 기록이 되므로나중에 되돌아보았을 때 객관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상태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의 변화가 특정한 패턴을 따라 발생하는지, 어떤 상황이 기분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기를 쓰는 과정 자체가 감정 조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감정이 격앙되었을 때,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행위는 감정을 진정시키고,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일기는 또한 문제 해결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울증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이를 인식하고 미리 준비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감정 조정 과정은 일기 쓰기가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이유입니다.


물론 일기 쓰기는 조울증 관리의 한 방법일 뿐입니다. 조울증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므로, 약물 치료나 상담 치료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일기는 이 과정에서 환자가 자신을 이해하고, 치료 효과를 모니터링하며, 치료자와의 소통을 보조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조울증 당사자에게 일기 쓰기는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일기는 기억을 보조하고 감정을 조정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정기적인 기록을 통해 조울증의 패턴을 파악하고, 감정의 변화를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2017년부터 조울증과 관련하여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일종의 감정 일기이기도 합니다). 컨디션에 따라 썼다 안 썼다를 반복하여 중간중간 빈 구멍이 있긴 하지만, 대략 8년 정도 기간의 기억이 담겨 있는 만큼 그 분량도 상당합니다. 가끔씩 전체 내용을 쭉 훑어보기도 하는데, 그러면 잊고 있었던 줄 알았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올라와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과거의 기억을 돌아보는 것은 상당히 도움이 되는데, 일기에 당시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가 고스란히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렇게 과거의 사건이나 저 스스로의 행동 패턴을 파악함으로써 똑같은 실수를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또 제 브런치북 <핑계 없는 조울증은 없다>를 쓸 때도 일기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에 관한 아이디어를 일기에서 많이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수기 형식의 글을 쓸 때도 일기는 좋은 보조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일기의 양이 충분히 쌓인다면 언젠가 자서전 같은 것을 써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때로는 귀찮아서, 때로는 잊어버려서 매일 일기를 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짧게라도 그날 있었던 일과 감정을 기록해 두면 나중에 꺼내 볼 일이 생겼을 때 굉장히 요긴합니다.


고 이외수 선생은 생전에 트위터에 짧은 문장을 올리는 것이 자신의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일기 쓰기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짧고 일목 요연한 문장으로 일기를 쓰는 습관이 부지불식간에 문장을 수월하게 쓰는 힘을 길러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일기 쓰기에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일기를 쓰지 않을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만약 먼지가 쌓인 일기장이 있다면, 혹은 컴퓨터에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은 일기 파일이 있다면 이참에 한 번 열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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