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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May 11. 2020

03.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그 우울이 좋았다

-봄이에 대해서

봄. 봄이라는 애칭은 내가 지어줬다. 사계절 중에 봄이 가장 싫다기에 봄을 좋아하라고. 나는 봄이 내가 지어준 애칭을 싫어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좋아하는 걸 보고 내심 안도했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세차게 봄아, 봄아, 봄아 하고 불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그 우울이 좋았다


봄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난 친구다. 가장 격동의 시절이었고 예민하던 시기였다. 봄은 내성적이었고 활발한 아이는 아니었다. 공부는 은근히 잘했는데 그 정도 성적이면 나 같으면 항상 웃고 살았을 텐데 늘 미간에 주름이 가득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데 그날은 수능 디데이가 다가오는 기념으로 같은 반 아이들끼리 학교 운동장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었다. 다들 들떠 있었고 요란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그날은 좀 들떠 있었다.


근데 봄이 야간 자율을 하지 않고 아프다고 조퇴한다는 것이다. 나는 괜히 마음이 쓰이고 좋은 구경을 봄이 놓치는 것 같아 봄을 붙잡았다. 가방을 싸고 집을 나서는 봄이 얼굴이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짙은 어둠과 깊은 우울을 한 그 낯을. 나는 그 깊은 웅덩이를 보고 겁에 질려서 순순히 봄을 보내줬다. 감히 내가 위로하거나 감당할 수 없을 우울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두운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가던 봄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이상하게 그 우울한 낯빛을 보고 나는 도망가야 했는데 봄을 더 좋아하게 됐다. 공부를 잘했던 봄은 당연히 국립대학교를 갔다. 학교가 달라 연락하기 어려웠을 텐데 우리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보다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봄이 다니는 학교를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급기야 봄이 동아리 친구들과도 어울리게 되었다. 우리는 대학도 과도 달랐지만 많은 걸 공유했다.


가끔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에 내가 봄에게 독립잡지를 만들자고 흔들지 않았다면, 그랬다가 다시 불러놓고 잡지 안 만들겠다고 해놓고 나만 잡지 만든다고 너에게 글을 부탁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봄에게 조금 덜 미안했을 텐데. 종종 그때를 떠오르면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지금이야 독립잡지 모르는 사람 없지만 당시에는 독립잡지 파는 서점이 전국에 두 곳 있었을 정도로 낯선 문화였다)


그럼에도 외롭고 힘들 때마다 나는 늘 봄에게 전화나 문자나 메신저로 연락을 했다. 너는 너대로의 방식대로 내 이야기를 들어줬고 나는 또 나대로의 방식대로 너를 만났다. 서로에게 미안한 시절도 고마운 시절도 그리운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나와 봄은 서로를 놓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우리 꽤 근사해졌네


지난여름 이후 정말 오랜만에 봄을 만났다. 맛집인지 알 수 없지만 번호표를 받고 음식점 앞 의자에 앉아 사장님이 표에 적힌 숫자를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며 근황을 주고받았다.


대화 도중 봄에게 문자가 왔는데 얼마전 인쇄 파일을 넘겼는데 글쓴 분이 프로필 수정해달라고 연락이 왔다는 거다. 그러는 사이 나에게 메신저가 왔는데 교정지를 보낸 역자분에게 이런저런 질문이 왔다.


책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는 우리가 치열한 이십 대를 함께 보내고 그런대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삼십 대가 되어 퇴근길에 만나 맥주를 먹으며 내일 회사 안 가서 좋다고 말하는 직장인이 되었다니.


비록 우리 작가는 안 되었지만 종이와 활자 테두리 안에서 밥 먹고 살고 있으니 새삼 우리가 좀 대견스러웠다.



그런 생각이 스쳤다. 우리 꽤 근사해졌구나. 나쁘지 않은 삼십 대를 보냈구나. 봄이 있어 우울하고 초조했던 내 이십 대가 조금 덜 외로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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