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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Oct 04. 2019

02. 우리에게 허락된 풍경

-친구 어머니의 부고 문자 이후

그녀의 어머니 부고 문자를 받은 이후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다. 우리는 자주 통화하지도 그 흔한 카톡도 하지 않는 사이다. 가끔 생각나면 문자로 그리움을 조금 전할 뿐 그 일조차도 아주 드물다.


둘은 무슨 사이예요?
아니 어떻게 만난 거예요


그녀와 내가 한참 떠들고 있는데 우리를 지켜보던 누군가 신기한 듯 물었다. 꼬박꼬박 높임말을 써가면서 그러나 쉴 새 없이 아주 찰지게 대화하고 있는 우리가 좀 신기했나 보다.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지 서로 너무 달라 보이는지 그런 질문을 종종 받았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자주 웃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내가 대학 시절 시민단체에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이주민을 돕는 시민단체였는데 나는 대학 공부보다 시민단체 활동에 더 푹 빠졌고 거기서 만난 이주 노동자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게 즐거웠다. 내 나이 스물셋,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맹렬하게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던 시절이었다. 나는 부산에서 활동가로 일했고 그녀는 부산이 고향이었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방학 동안 잠시 부산에 내려와 시민단체를 찾은 것이다. 그녀와 나는 바다와 산에 사는 각각의 동물처럼 이질적이었고, 짧은 만남에 대면 대면했다. 영원히 만나지 않을 사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서울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주 그녀를 보게 되었고 우리는 꽤나 잘 어울리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내 첫 직장생활부터 애인과 헤어지고 그녀의 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던 부끄러운 기억까지, 지하철 막차를 타기 위해 추운 서울의 겨울을 여름처럼 뛰었고 지하철에 내려 그녀의 자취방까지 걸어갔던 캄캄한 골목에 우리를 비추었던 노란 불빛까지.


그런 그녀와  어머니의 부고 문자 이후,  부산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그녀는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갔고 나는 부산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갔기 때문에)

서른 쯤에 떠나보낸 어머니를 떠나보낸 그녀. 솔직히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랐다. 만나기 전 긴장을 했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어머니의 이별에 대해 말해줘서 나는 한결 마음이 편했다. 어머니의 병을 알고 임종을 준비하면서 어머니 함께 떠난 마지막 가족여행은 이야기만 들어도 눈이 시렸다. 가족들과 봤을 마지막 바다를 떠올렸다. 우리는 종종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대화가 끝난 후 조금 걸어 우리 둘만의 바다를 봤다. 봄이 오는지 날씨는 따뜻했고 파도가 유난히 희고 이뻤다. 우리는 소녀처럼 파도가 너무 이쁘다고 갈매기도 이쁘다고 모래사장에 서서 풍경 칭찬을 했다.

이내  이날을 간직하자며 사진을 찍었다. 그냥 평소처럼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데 필름 카메라 마지막 필름처럼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져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여러 번 울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지금 우리의 풍경을 방해하는 듯해서.


걸음걸음이 소중했던 시간을 지나 다시 서울로 왔다.

이제 우리에게 펼쳐진 풍경을 온전히 우리가 감당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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