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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Jul 20. 2021

01. 출판사 졸업

-회사원에서 백수로

출판사를 졸업합니다



퇴사 소식을 알릴 때 작가분들에게 했던 말은 "출판사를 졸업합니다"였다. 이 말을 전했을 때 작가분들이라 그런지 어떤 의미인지 눈치채시고는 축하와 격려의 말을 해주셨다. 아쉬워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그 마음 역시 고마웠다. 은 작가님은 졸업을 축하한다며 집으로 꽃다발까지 보내주셨다. 통화로 퇴사 소식을 전하는데 눈물이 나는 걸 겨우 참았다.


한 회사에서 이십 대 후반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 결혼, 육아휴직, 복직하면서 사원, 대리, 팀장으로 인생 축소판을 경험했다. 사실 팀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머쓱한 면이 있다. 팀장으로는 겨우 3개월 정도 보냈기 때문이다. 멋진 팀장이 되어 팀원들과 으샤으샤하면서 책을 내고 싶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조금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기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함께해준 식구들과 헤어진다고 하니 내 예상보다 훨씬 상실감이 컸다. 내 전화 리스트에 최다 기록자는 늘 출판사 대표님이고 편집장님이고 디자이너이고, 메신저 채팅창에 맨날 대화하는 사람은 편집자들이었다. 그렇게 미운정, 고운정 들었던 기억을 정리하면서 모니터 앞에서 눈물을 많이 훔쳤다. 먹고사는 것도 중요한데 서른 중반에 일을 그만두는 내 생각이 철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민들레씨가 바람이 불면 날아가듯이 스스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민들레씨가 다시 민들레로 피어날지 안착하지 못하고 떠돌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날아가고 싶었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한다면 인생이고, 도전이라고 하면 도전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회사를 졸업한다는 말을 썼다. 아무도 나에게 졸업하라고 하지 않았고 이제 그만 때가 되었다고 방생해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그렇게 결정했다. 결정하기까지 아주 괴롭고 힘들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나를 따라다녔고 갑자기 회사 생활이 괜찮게 여겨지는 마법에 걸리기도 했다.



졸업 후


결론은 나는 마법에 걸리지 않았고 정글 같은 세상에 프리랜서가 되었다. 처음 얼마간은 퇴사한 회사에서 마무리한 책의 판매순위를 계속 살펴봤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ㅎㅎ 흔한 말이지만,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나는 독자로서 응원하고 손뼉 치고 좋은 책이 나오면 사면 된다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어떻냐고? 나에게 스스로 물어본다. 

늦잠 없음: 아이 등하원으로 늦잠, 낮잠 당연히 없다.

월급 없음: 티브이 보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통장 비는 소리가 들린다.

가사 많음: 회사 다니면서 어떻게 두 가지 일을 했나 싶다.

시간 있음: 시간의 주인이 된다.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스스로 만든다.

글감 있음: 쓰고 싶은 글이 많다. 지금부터 하나씩 풀어보자.

사람 있음: 책으로 만난 사람들 중에 나쁜 사람들은 없었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그들이 곁에 있다.
나는 그들을 믿고 따르고 싶다.


오늘도 있음과 없음을 저울질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열심히 썼으니까 있음! 으로 파란불을 켜본다.

길을 건너보자. 어제보다 더 멀리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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