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머나먼 곳
휴가를 떠났다. 아이 낳고 그렇게 오랫동안 집을 떠난 적은 처음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해외 여행은 못 가고 그렇다고 국내 여행이라고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마침 언니가 집으로 초대했고 딸과 둘이서 짐을 챙겨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답답한 서울을 떠나니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오랜만에 언니 집이라니 설레기도 했다. 어떨 때는 내가 있는 곳이 삶의 전부 같지만 막상 그곳을 떠나오면 안달하고 집착했던 내 마음이 아무것도 아닐 때가 있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기 위해 손 씻기도 있지만, 창문을 자주 열라는 지침도 있다. 맞아. 코로나가 말해주고 있어. 일상의 환기가 중요하다고. 마음껏 자유를 느끼면서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마침 메시지가 왔다. 회사 다닐 때 외부 프로젝트를 하면서 알게 된 분이셨다. 출판사 구인 연락이었는데 급히 사람을 구하고 계셨다. 당연히 그 출판사 인사담당자는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나 혼자 그 채용이 나와 참 잘 맞는다고 여겼다. 한줄 한줄 읽어가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이건 나지. 그래, 난 할 수 있지 하는 내 마음속 목소리. 스스로가 우스웠다.
그렇지만 지금 내 옆에 이쁜 딸이 있고, 이 아이와 당분간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동안 저녁 7시 넘어 하원하면서 밤늦게까지 어린이집에 있었는데 유치원은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은 있지만, 아이에게 봄을 여름을 가을을 겨울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내가 아니라 아이에게 시간의 자유를 주고 싶다. 엄마와 놀고 싶고 엄마가 일하는 게 싫다는 딸에게 져주기로 한 상황에서, 다시 등하원 전쟁을 치르면서 회사에 다닐 자신이 없다.
감사하게도 그분은 나에게 마지막에 "출판동네로 돌아오실 거죠?"라고 물어주셨다.
나를 손님으로 여기지 않고 일하는 동료로 여기는 그 말이 어찌나 감사하고 고맙던지.
출판계에서 말하는 모두가 좋아하는 정식코스를 밟아 출판계에 입문(?)한 것도 아니고 변방에서 묵묵히 일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는데, 언제나 그들은 저기에 있고 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손님이 아니라니. 그 말 한마디가 힘이 되었다.
헛헛해진 마음을 달래며 의미 없이 채용공고 사이트를 보고 있는데 외주업무를 준 A출판사 편집자에게 연락이 왔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부터 알던 사이인데, 소중한 인연으로 외주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업무로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이 출판사 채용공고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지원하고 싶어도 지금은 지원할 수 없다고 하니까 좋은 기회가 생길 거라면서, 응원의 답을 주었다. 언제나 그녀에게 나는 마음의 빚을 진다. 웅숭하고 깊은 마음에 나는 겸손해진다.
아이 키우는 엄마에게 그 기회가 올까. 영영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때로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없는 젊은 후배들이 부럽다.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직하면서 커리어를 쌓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조금 더 큰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열망했었다. 어쩌면 아이는 핑계인가 하면서 나를 몰아세우기도 했었다. 아직 출판동네는 나에게 머나먼 곳이다. 프리랜서로 잘할 수 있을지, 외주 편집자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떤 날은 정글 같은 출판동네를 떠나와서 좋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들과 함께 뛰고 웃고 싶다. 적어도 이제는 나 스스로 출판동네에 손님이 되지는 말아야지 싶다.
#육아이야기면서프리랜서이야기
#출판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