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재 Sep 21. 2024

[일본 소설 리뷰] 언어의 정원


소설 '언어의 정원', 일본어 원제인 '言の葉の庭(코토노하노니와)'에서 '言の葉(코토노하)'는 '언어' 이자 중의적인 의미로 '단가(短歌)'를 뜻한다. 여기서 단가는 사계절과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일본의 정형시를 이른다.


이 소설에서 저자인 신카이 마코토는 영화라는 매체의 제약으로 미처 필름에 담아 내지 못한 '타카오'와 '유키노' 남녀 주인공의 더 깊은 인간적 관계와 감정 그리고 후일담을 남겨둔다. 여기에 더해진 주인공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을 더욱 내밀하게 내 옆으로 붙들게 한다.


이 소설은 저자의 말처럼 외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외사랑이 외사랑을 만나 그들을 보호하는 도쿄 속 비와 정원이라는 은밀함 속에 고독하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린 구두장이와 국어 선생님인 주인공은 그들만의 언어로 외사랑을 묻고 외사랑을 답한다. 마침내 사랑의 표면보다 더욱 깊숙한 서로의 내면을 확인한 후 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벽에 순응하지 않으려 세상 밖으로 나아간다. 각자 멈춰 서기 보다 다시 그리고 더 멀리 걷기를 선택한 것이다.


헤어진 뒤 5년 후, 그들은 처음 만난 공원에서 다시 재회한다. 타카오가 직접 이태리에서 만들어 온 수제 구두는 전해지기도 전에 유키노의 잔잔한 미소로 남는다. 저 멀리 희미하게 들리는 우렛소리와 함께. 수천 년의 시간 동안 눈에 보이는 사랑의 형태는 변해왔다. 천년이 지나도 오직 변하지 않는 건 사랑의 감정 그 자체다. 수제 구두는 완결된 사랑의 의미가 아니었다. 타카오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새롭게 외사랑이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이제 타카오와 유키노는 예전보다 더 가까이 정자에 앉아 서로를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더 깊어진 걸음으로 비 내리는 공원을 떠나 나란히 도시의 저편 속 사람의 숲을 향해 멀어져 갈 것이다. 


언어의 정원은 요즘 사랑이 살포시 깍지 낀 손으로 옛사랑을 들려주는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 푸르름 가득한 공원을 걷고 싶게 한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정자에 앉아 외사랑을 기다리게 할 것이다. 고독과 슬픔이 모여 진정한 사랑을 이루듯 영겁의 세월 속에서도 잡히지 않는 외사랑만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인연으로 남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우렛소리 희미하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면 
그대 붙잡으련만

                      -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詩歌)집 만요슈(萬葉集, 만엽집)에서[유키노] -



우렛소리 희미하고 
비가 오지 않아도 
나는 여기 머무르오 
그대 가지 마라 하시면

                       -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詩歌)집 만요슈(萬葉集, 만엽집)에서[타카오] - 


작가의 이전글 광주극장에 울려 퍼진 평등과 평화의 정신(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