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기피하는 사람들의 이유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보편적으로 자신의 삶에 집중하기 위해, 혹은 단순히 돈을 모으기 위함이 있고, 이전의 연애에서 많은 감정 소비를 겪어 지친 이유도 있다.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면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결국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방어에 약하고 결국 마음에 나는 상처는 더욱이 크게 남는다.
어느 날과 다를 바 없던 주말. 기나긴 평일을 버틴 만큼 달콤하게 맞이해야 할 주말이었는데. 여자 친구와 그만 싸우고 말았다. 싸움의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여자 친구에게 서운함을 안겨 주었고, 그것을 알면서도 단단히 박힌 내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이상하게 당연한 나의 잘못임에도 당시엔 억울한 마음이 크다고 느껴졌다.
두 고집쟁이들의 싸움은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끝없이 펼쳐지는 평행이론. 한차례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이내 고요가 찾아왔다. 상대를 설득하다 지쳐 결국 포기하고 각자 핸드폰만 만지작...
화면을 바라보는 두 눈의 초점은 희미했다. 무의미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시간을 되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흥분은 가라앉고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그 한마디만 전해지면 이 전쟁은 끝이 날 수 있었다. 마음은 그게 굴뚝인데 입은 도저히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연인들 사이에 그놈의 자존심이 항상 문제다. 그걸 알면서도 왜 몸은 안 따라주는지. 결국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여자 친구였다.
"화 많이 났어?"
"내가 화낼 일이 아닌데, 뭐"
"그럼 이제 웃으면서 저녁 뭐 먹을지 정하는 거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내 무릎을 베고 눕는 뻔뻔함(?)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분명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텐데 퍼지는 내 미소를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또 미안했다.
다투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늘 '지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가르친다. 나는 늘 이 말에 반박했다. 지면 지는 거지, 추한 변명 아닌가? 하지만, 이날 나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정말로 상대를 이기려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닌, 누구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으로 나선 배려였다는 것을.
그날의 전투는 완벽한 나의 패배였다. 미래는 역사를 보고 배운다 했던가. 함께 시간을 걷다 보면 언젠가 장애물을 마주하는 순간이 다가올 것이고, 원하든 원치 않든 이번과 같은 전쟁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이번을 가슴 깊이 기억하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항복을 할 것이다. 나는 언제든 백기를 들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