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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해언Onion Nov 16. 2019

난 짐승이오, 짐승에게는 자유가 있어야지

돈, 시간, 가족, 회사 등의 제약이 없다면, 어떻게 살고 싶나요?

<독서시>

참조 :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9


날 데려 가시겠소? 그럼 난 당신의 사람이 되겠소.

난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이오.

일할 때는 날 건드리지 마시오. 뚝 부러질 것 같으니까.

일에 몸을 빼앗기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 그 자체가 될 만큼 긴장한단 말이요.

그러니 당신이 날 건드리면 난 부러질 밖에.

그러나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거요.

인간이 뭔지 아시오? 자유요 자유.

자유가 뭔지 아시오? 확대경으로 보면 세균이 물 속에 우글거리지.|

어쩔테요. 갈증을 참을테요 ? 확대경을확 부숴버리고물을 마실꺼요?

난 물을 마실꺼요. 그게 자유요.

그는 내가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는 사나이였다.

그래, 뱀 같은 사람이지.

온 몸을 땅에 붙이고 있는 뱀이야 말로 대지의 비밀을 가장 잘 아는 동물이니까

그야말로 온 대지 온 사방에서 생명을 다시 얻을 수 있는 사람이지

내가 말했다. 이리와요 조르바 내게 춤을 가르쳐 주시오.

내 인생이 바뀌었소. 자, 놉시다

그가 말했다. 두목, 사람을당신만큼 사랑해본적이 없소.

조르바로 인해 나는 묘비명에 이렇게 썼다.

나는 아무 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아빠의 읽기>

'그리스인 조르바'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입니다.

 내 책장 어디엔가 눈에 잘 띄는 곳에서 언제나 나를 기다립니다.  

책상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방안을 오가다가 손에 잡히면 몇 줄 혹은 몇 페이지를 읽어대는 책입니다. 이 책은 햇살처럼, 내 안으로 스며들어, 나를 웃게 하고, 일거에 복잡한 인간사를 물레방아집 아낙의 엉덩이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삶은 그렇게 단순하고 기쁜 것인데 작은 머리통이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모든 것이 유쾌하게 육화(肉化)되어 잠시나마 삶과 우주가 이리저리 재고 따질 것 없이 다정하게 웃어댑니다. 하루는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요.



<딸의 읽기>

‘당신을 묶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살고 싶나요?’ 이질문을 받고 저는 빈 종이만 멍청하게 바라봤습니다. 평소에는 반쯤 농담으로 사측의 노비라고 자처했지만, 회사가 없는 내 인생을 상상하지도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은 충격적이었습니다.자유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감히 그것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순응적인 저의 눈을 번쩍 뜨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르바입니다.


 온전한 자유를 상상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분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유로운 나를 상상할때, 이미 이 상상들이 이뤄진 것처럼 써보기로 했습니다. 문유석판사는 『개인주의자선언』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마치 현재 일어난 것처럼 여기고, 그 구체적인 양상을 그려보는 상상력이 미래가 빠르게 바뀌는지금 시대에 매우 중요한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이 방법을 이번에 적용해보려고 합니다.


 돈, 가족, 시간, 회사 모든것에서 자유롭게 된지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저는 이 신나는 자유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곱 가지, 독서, 글쓰기, 토론, 여행, 체류, 언어, 덕질로 채우고 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두고 몇 년은 틀어 박혀서 책만 읽었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 그 안에 인용된 책을 전부 읽고 다시 거기 인용된 책을 모두 읽는 방식으로 독서를 확대해 나가서, 그동안 스쳐 지나갔던 위대한 작가들을 책으로 만나고, 그 주장을 고민해보고, 내 삶에 적용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사실 이 독서 기간은 조지프 캠벨이라는 사람이 대공황 때 시도한 방법인데, 그 글귀를 읽는 순간 독서가 중심에 있는 삶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났습니다. 내게 자유가 생겼을 때 저는 이 삶을 이뤄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매일 글을 썼습니다. 저의 가장 중요한 탐구 대상은 제 자신입니다. 저는 제가 가장 궁금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저를 어떻게 사용하면 가장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는지가 저의 호기심의 대상입니다. 글을 쓸 때면 저는 스스로와 대화하고, 내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며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스스로를 전보다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행복감을 주는 글쓰기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이 글들을 컨셉에 맞게 모아 제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고, 마케팅도 합니다.


 혼자 글을 쓰다보면 뭔가 아쉽습니다. 쓴 글을 온라인공간에 올리고, 많은사람들과 온/오프라인에서 토론을합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서로를 더욱 잘 알게 되고, 재미있는 공동체를 함께 꾸립니다.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일년에 두 번씩 여행을 갑니다. 저는 이 여행을 ‘찐팬 여행’이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문화적 성지순례로 열심히 읽은 책의 작가들의 작업실과 집을 방문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작가가 살던 때와 많은 것들이 바뀌었기에 그 동네에서 작가의 작품세계와 삶을 사랑하고 잘 기억해서 전달하려는 지역들을 골라서 갑니다. 통영의 박경리 문학관과 서피랑에 적힌 박경리 선생님의 글과 말씀이 인상깊었습니다. 또 미국 뉴욕의 이타카에, 칼 세이건 교수님을 추모하며 실제 태양계 행성간거리를 비율로계산해 기념 비석을 만들어 둔 것을 보고 왔습니다. 이런 식의 장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좋은 작가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작가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았고, 어떻게 그 생각을 글에 담았으며, 그런 모습을 우리가 더 많이 삶에 담을 수 있다면 삶이 더 깊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사는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한 계절을 보냅니다. 영화 ‘안경’의 주인공처럼 깨끗한 모래사장과 바다가 있는 조용한 마을에 가서 봄을 즐깁니다. 기약 없이 지내다가 지겨워질 때 즈음 스페인의 톨레도로 또 가서 초여름을 즐깁니다. 저는 그 곳에서 별다른 목적 없이 하루 종일 길거리를 걸어 다니고, 어딘가 앉아서 볕을 쬐다가 들어와서 글을 씁니다. 차를 한 잔 마시고, 간단한 식사를 하고, 책을 읽고, 다시 걸으면서 그들을 통해 나를 들여다 봅니다.

 

 장기체류까지 고민하고 있으니, 다른 언어를 배웁니다. 나와 전혀 다른 국가와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과의 대화는 흥미롭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어, 영어 외에도 일본어와 스페인어 자격증을 땄습니다. 원래 언어의 음율로 읽는 고전 원작들의 맛이 다릅니다. 다음에는 독어를 배워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놀이방을 하나 만들어서 취미 생활을 합니다. 우리집 2층은 도서관겸 서재고, 1층은 미술관입니다. 다락방 한 쪽의 하얀벽에 스크린을 설치해 큰 화면에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게임을 하고, 가장 넓은 지하실에 피규어를 모읍니다. 좋아할 수 밖에 없게 잘 계산되고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저를 유혹하고, 저는 즐거운 세계로 잠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옵니다. 이 곳은 제가 만든 저만의 아지트가 됩니다.


 잡힐 듯이 그려보니 두근거리는 자유가 제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이루기 어렵지만, 어떤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퇴근 후에,조금 시간을 내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만큼 내 자유의 상상화도 가까워집니다. 미래는 상상하는 자의 것이며, 자유는 그것 불러들이는 힘입니다. 불멸의 문장으로 만든 독서시를 읽으며 몇 번이고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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