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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해언Onion Nov 17. 2019

사랑, 그 다양함에 대하여

그대는 어떤 사람에게 끌리나요?

<독서시>

『향연』에서 엮음

 

디오니소스의 제전에서 우승한 아가톤이 말했지

사랑의 신 에로스는 너무도 우아하여

땅을 밟지도 않고 사람의 머리 위를 걷지도 않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의 마음 속에 깃들어 거기에 머무나니

사람에게는 평화를

바다에게는 고요함을

바람을 위해서는 휴식을

또 슬픔에게는 잠을 주도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리스토파네스지

인간은 원래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결합된 동체였다네

그리하여 지금보다 훨씬 더 완전했다네

하늘의 신 제우스가 보니 그 불경이 가관인지라

가운데를 갈라 둘로 만들어 버렸다네.

신을 숭배할 개체 수는 두 배로 늘고

각자는 힘이 약해져 고분고분해졌으니 멋진 해결책이었지 


갈라진 두 사람이 서로 원래의 짝을 찾아 나서는 것이 곧 사랑이니

살아있는 동안에도 한 사람처럼 살고

죽을 때도 함께 죽는 것이 곧 사랑이다.  


<아빠의 읽기>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에는 사랑, 즉 에로스에 대한 멋진 담론들이 흘러나옵니다. 만일 사랑에 대하여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아니 먼 옛날 고대 인류의 사유를 접해보고 싶다면 당연히 '향연'을 읽어 보아야지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이 사랑이야기에 그리스인들 중에서 가장 못생긴 소크라테스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산파술의 일단을 맛 볼 수도 있지요. 에로스가 고상한지 물은 뒤, 사람이든 신이든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한 뒤, 에로스가 아름다움을 욕망하는 것은 자신에게 아름다움이 없기 때문 아닌가를 물어, 사랑이 어디서 시작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2500년 전에 플라톤에 의해 쓰여진 이 짧막한 책 '향연'은 포도주를 한잔하고 기분이 좋을 때 그리스인들처럼 반쯤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재미있습니다. 플라톤의 시 같은 산문의 맛도 즐길 수 있구요.  


<딸의 읽기>

 저희 부부는 장거리 연애로 결혼했습니다.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이었는데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저희는 취미가 비슷해서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남편이 출국하기 전날 밤, 저희는 긴 논의 끝에 장거리연애를 시도해보자는 무모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희는 드문드문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다행히 저와 신랑은 관심사나 유머코드가 비슷한 면이 있었고, 서로 다른 부분들도 이해하기는 어렵더라도 공감해주려는 마음이 가득했고, 둘 다 공감능력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또 글쓰기에 대해 매우 높은 수준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었습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결혼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래도 만나면서 느꼈던 유대감과 서로 공감해준 기억들이 쌓여 자주 만나지 못하는 물리적 제약을 극복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다 2016년에 결혼했는데 살면서 '참 결혼하기 잘했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이 착하고 상냥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성품과 그의 상냥함에 의지하고 위로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 집에 가면 집에 왔다는 포근하고 안온한 기분이 밀려옵니다. 저는 함께 사는 사람 덕택을 톡톡이 보고 있습니다. 


아빠도 남자 고르는 법 세 가지에 대해 제게 조언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정리된 버전이 편지로 남아 (책)마지막 편지라는 책에 실려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도덕성을 뽑으셨는데, 이것도 일종의 지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은 자기 성찰이 부족한 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마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아주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조건은 상냥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맨스에서는 소위 '나쁜 남자'의 알 수 없는 카리스마가 흥행 보증 수표지만, 이런 사람을 연인으로 만나는 것은 악어 등에 타서 강을 건너는 것처럼 위험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껴 사랑이 빛나게 할 수 있는 부드러움이 있는지가 좋은 남자의 조건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재능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가장 잘하는 것으로 유혹할 수 있는 남자는 사귀어 깊이 빠질만 하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각양각색이지만, 오래 갈수록 더 깊고 좋아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빠가 위에 말씀하셨던 세 가지는 성별을 떠나서 연인으로서의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내게 접근하는 사람과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도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도 비슷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상대인지를 우리는 예리하게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한 인생에 줄 수 있는 것은 연애초기의 짧은 열정, 그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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