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현욱 Oct 14. 2023

동물을 돌보는 마음 (발제문)

달뜨는보금자리 추현욱 돌보미

* 이 글은 2023년 7월 19일에 있었던 국회 라운드테이블 <동물을 돌보는 마음> (국내 생추어리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서 발표한 발제문입니다.





달뜨는보금자리는 한 불법농장의 폐업으로 도살될 예정이었던 소들을 구조하여, 이들을 살리기 위해 돌보고 있는 국내 최초의 소 보금자리이다. 동물해방물결에서 운영하고 있고, 많은 후원자들이 소 살림을 위해 ‘살리미’라는 이름으로 후원하고 있다.


우리 소들은 젖소 또는 육우라는 이름 대신 ‘꽃풀소’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들풀 이름을 따서 개별 이름을 창포, 엉이, 메밀, 부들, 머위로 지었다. 현재 꽃풀소들과 동갑인 솔과 그의 누나 가야를 포함해 4인의 돌보미 가족이 꽃풀소 돌봄을 전담하며 마을에서 거주하고 있다.


나는 일곱 명(命)의 아이들의 아빠 추현욱이고, ‘돌보미’로 불린다. 소들이 이주한 2022년 11월부터 소를 돌보고 있다.


처음 동물해방물결에서 보금자리에 상주하며 소 돌볼 사람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지인으로부터 들었을 때, 우리 가족은 자급자족 라이프를 꿈꾸며 귀촌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딱이다! 내가 여기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돌봄은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되는 일인데, 이왕이면 돌봄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이미 동물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다는 만7세 미만 아동 2명의 돌봄을 전업하고있어, 더 좋고 의미있을 것 같았다.


보금자리의 돌봄이라는게 농장 사육하고는 차이가 많이나는 개념이고, 우리가 보금자리를 구성하고 구조된 동물들이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하고, 그런 당연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동물 해방을 앞당길 수 있겠다!”생각했다. 비인간동물 보금자리의 등장과 확대가 생명 살림(비거니즘)의 개념을 대중화 할 수 있을거로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차별과 갈등, 부정의가 존재하고, 이로인한 기후생태위기도 심화되고 있는데, 우리가 같은 동물로서 종(種)간 경계를 넘어, 가장 아래로부터,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해방을 이룬다면, 갈등의 벽이 무너지고 공존하는 미래가 더빨리 이루어질 것이다.




비인간동물 보금자리는 우리가 마트에서 구입하는 잘 포장된 육류와 우리가 돈을 지불함으로써 착취/도살에 간접 기여하는 축산 동물간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매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통 사람들은 내가 먹는 고기와 유제품이 어디서 어떤경로를 거쳐 우리 식탁까지 오게 되는지, 그 중간과정을 전혀 모른다.


하지만 비인간동물 보금자리를 보여주면, 또는 보게되면, 우리가 먹는 상품이 그냥 제품이 아니라 우리같은 생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물을 살리는 일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동물이 공존하며 사는 모습을 그릴 수 있게 해야한다.


살아있는 그들의 다양한 면을 접하게 되면, 한우/육우는 죽이기 위해서 키우는 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고, 우유는 모든 젖소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임신한 여성에게서 나온다는 당연한 사실도 재인식하고, 젖 짜내는 기계가 아닌, 우리와 다르지 않은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보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트에서 제품으로 판매되는 동물의 실재(實在) 모습을 보금자리를 통해 많이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다양한 형태의 보금자리로 확대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사육동물을 접할 수 있게 해야한다. 이것은 단순히 축산업의 축소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게 살 수 있는 마땅한 권리를 보장해주는 아주 기본적인 해방 운동의 일종이다.


우리는 주권 침탈로 기본권을 빼앗기고 식민 생활을 했던 고통의 역사가 있기에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인간에게 인권이 가장 중요한 것 처럼, 비인간동물에게 동물권이 매우 중요하고, 종을 넘어선 동물해방이 바로 탄탄하고 다양한 인권 보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인간이 동물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이 익숙하지 않는데, 나는 그것이 인간이 자연계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 그들을 만날 기회가 없기때문이라 생각한다. 비인간동물 보금자리가 바로 그 사이를 잇는 역할을 할 것이고, 제 역할을 할 때쯤 되면 자연스럽게 동물의 권리보장이 더 크게 대두될 것으로 생각한다.




축산동물은 먹기위해 키워지는 동물이라는 인식 때문에 함께 늙어감에 대한 개념자체가 한동안 없었어서, 곰보금자리와 새벽이생추어리가 출범하기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선례가 없었다는 점, 그래서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지금은 소 5명을 돌보고 있지만, 원래 임시보호처에서 6명이 올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소 1명이 넘어지는 일이 발생했고, 다친 소를 치료하기 위한 적합한 사례가 국내에선 없었기때문에, 노력이 무색하게도 적절한 회복으로 이끌지 못하였다. 다 구한 소가 끝내 죽게 될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가장 힘든 상황이었다.


축산동물은 아플경우 치료가 아닌 도태를 결정하는 것이 국내에서 관행적인 처치 방법이다. 다른 방법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 보금자리 내부에서 빠른 회복과 재생을 돕는 적합한 식단을 제공하는 것 외에 딱히 대처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동물 관련 학문이나 업종에서는 비인간동물 보금자리 부문이 성장함에 따라 동물 의료 부문의 전문 인력과 전문 기술도 함께 향상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앞으로 보금자리에 대한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대중화가 그것에 아주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생명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살리는 일 자체에 더 호감을 느낀다. 우리는 ‘지붕 위의 소’를 보고 마음 졸이며 구조되길 바랐었다. 3년전 폭우로 소들이 떠내려가다가 건물 지붕위로 대피를 했고, 사흘만에 구출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는 한 마음이었다. 살길 바랐다. 그런데 그 중에 현재 살아남아 있는 소는 없다. 만약 그때 보금자리가 있었다면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자성(自省)의 3년이 흘렀다. 이제는 보금자리가 있다. 이제 우리에게도 사례가 생겼다. 그러니까 이건 반드시 해야하는 거고, 살리는 활동을 하고 있기때문에 그 자체로 나는 너무 행복하다. 살림과 돌봄이라는 것에는 이런 것이 있다. 육체적 힘듦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들이 건강하게 살아 존재하면 노동으로 인해 생기는 개인의 힘듦은 상쇄되어버린다. 생명을 건강하게 살리는 활동이 나를 역시 살리는 ‘서로 돌봄’의 보이지 않는 그런 힘이 있다. 내가 기존에 인간동물 아이들을 돌보면서 느끼던 것들을 비인간동물을 돌보면서도 느낀다. 왜냐하면 나또한 동물이자, 상호간에 서로 영향을 주는 연결된 생태계이니까. 그래서 내가 그들을 돌보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이 그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라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는 비인간동물 돌봄노동이지만, 앞에 잠깐 언급했던대로 육체적인 힘듦은 존재한다. 5명의 대동물을 돌보는 것은, 먹고 싸는 규모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보금자리 관리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한다.


사실 소집에서 혼자 소를 볼 때는, 몸은 일 하지만, 잠시나마 육아에서 벗어나므로, 정신적인 휴식을 가지기도 한다. 그것은 장점이다. 특히 만 7세 미만의 인간동물은 다른 비인간동물과 달리 부양육자가 맡아주는 시간이 없다면, 주양육자가 24시간을 온전한 휴식없이 돌보아야 하는데, 그에반해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는 다른 비인간동물은, 특히 이미 뿔이 자라, 인간으로 치면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 꽃풀소들은, 24시간 돌볼 필요가 없다. 인간 아기처럼 연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명이 직장의 출퇴근 개념으로 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돌봄의 최대 단점이 쉬는 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폭우나 혹한 등 극한의 기상 여건에도 언제나 돌봄을 미룰 수 없다. 또, 지역을 벗어나 중요한 일에 참석해야하는 경우에도 철저한 시간 계획아래 움직여야만 한다. 멀면 아예 못간다. 아침 저녁으로 소들을 만나고 밥을 주는데, 바쁘다고 소들을 굶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시스템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그것을 기계적인 부분으로 대체하고 싶지는 않다. 자동시스템은 생명 돌봄의 영역이 아니다.  


모든 동물에게서 돌봄은 사회를 유지∙지속 하기위해 꼭 필요한 사회적 재생산 노동이고, 인간의 비인간 동물 돌봄은 인간이 만들어온 착취와 폭력에 대해 책임지는 일이다. 인류의 만행이 없었다면 지금의 비인간동물 보금자리도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모든 비인간동물 보금자리[생추어리]가 없어지게 하는 것이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루어내야 하는 미래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의 보금자리[생추어리]가 존재한다.


우리는 동물을 식민화하고 착취하였던 그간의 행동을 반성하고,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살리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상업화되어 상품으로 판매되는 누군가의 신체가, 우리와 다르지않은 살아있는 다른 누군가로 부터 왔다는, 그것을 우리 인류가 인지하도록, 우리의 살아남은 보금자리 동물들이 도울 것이다. 나는 이 생명의 연결고리가 선명해지는 것을 원한다. 



* 종차별적인 언어를 쓰는 것은 불평등과 차별을 강화하고 재생산합니다. 이를 지양하기 위해 종차별적인 단어 대신 대안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비인간동물의 수를 셀 때도 ‘마리’ 대신 ‘명’을, 성별을 표기할 때도 ‘수컷’ 대신 ‘남성’, ‘암컷’ 대신 ‘여성’으로 표기했습니다. 또한 ‘동물’은 기본적으로 ‘인간동물’을 포함한 ‘모든 동물’을 일컫고, 인간을 제외한 동물은 ‘비인간동물’로 명시 했습니다.





☆ 글에 포함되지 못하고 떠돌던 문장들:


☾ 흑인도 인간임을 인지하고, 여성도 인간임을 인지하며, 장애인, 성소수자, 난민, 노동자 등 모두 인간임을 인지하고 권리를 보장해야함을 알고있다. 인간도 동물이다. 인권은 동물권에 포함되는 개념이며, 동물권 개념을 승격하고, 비인간 동물의 권리보장이 수반되어야 한다. 동물의, 즉 모든 동물의 권리 보장이 모든 해방의 움직임을 이끌 것이다.


☾ 어린시절, 잦은 동물 학대의 경험은, 성인이 되어 인간 범죄로 이어지고, 동물을 하찮게 보는 문화가 기본이되면, 인간도 계층에따라 하찮게 보고 행동하는 문화가 자리잡게 된다.


☾ 불평등과 부정의의 척결에도 비인간동물 보금자리가 엄청나게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기를 강제로 떼어놓으며, 착유를 통해 여성을 착취하고, 반복적 임신으로 혹사시킨다. 이것이 홀스타인 얼룩소 여성이 당하는 일이다. 젖을 짜는 도구로 인식하게 하는 ‘젖소’ 단어의 사용을 멈추어야한다.


☾ 살리는 일을 하면서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얼룩소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상업화된 상품으로 탈바꿈된 존재를, 직접 만나 느껴봄으로써 생명의 연결고리가 선명하게 이어지는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축산업, 미래 인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