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의 순례길

story 23. 백숙과 낭만

by JJ
어지간히 그만한 것들이
대단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니까

2019.11.05 (08:00) León - Hospital de Orbigo 17:00 (31km)


오늘은 30km를 넘게 걸었다. 자의에 의한 결정은 당연히 아니었고, 원래대로였다면 León 에서부터 24km 거리에 있는 San martin del Camino까지가 목표였으나 중간에 마음을 바꾼 탓이었다. 쉽지 않은 날씨가 비가 오다가 맑다가 바람이 불기를 손바닥 뒤집듯 말썽을 부렸고, 그 덕분에 판초를 입었다 벗었다 모자를 꺼냈다 넣었다를 열댓 번이 넘도록 반복해야만 했지만 그 모든 상황을 견디고 7km를 더 걸었다. 백숙이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했다. 백숙이.

석양을 닮은 아침 하늘의 눈시울이 붉었다
조금 걷다 보니 또 화창하게 갠 날씨

León에서 벗어나는 길은 지루했다. 길게 늘어선 건물 외벽을 따라 걸었다. 차도 많고 길도 단순했다. 잔뜩 약이 오른 찬 바람에 얼마쯤 걷다가 식당엘 들어가 몸을 녹이고 이른 점심을 먹었다.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 투박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일제히 내 쪽을 쳐다본다. 판초를 뒤집어쓰고 산발이 되어 나타났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순례길이니 으레 그런가 보다, 해주기에 망정이지 난데없이 나타나 주의를 끌어버린 꼴이 되었다. 바닥을 디딜 때마다 나무판자 아래에서 삐걱대며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란 익는 냄새가 고소하게 퍼져있는 포근한 식당이었다. 보카디요에 카페라떼를 마시고, 짐을 줄일 겸 어제 사둔 자두를 꺼내 먹었다. 먹고 나오려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쏟아지는 장대비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신발끈을 고쳐 매고는 남은 20km를 걷기 시작했다.

24km 지점이었던 San martín del camino. 그리고 7km를 더 걸어 도착한 Hospital de Órbigo
León 광장에 있던 순례자 동상

León에서 같이 출발한 사람들은 24km 지점인 San martin del Camino에서 하루 쉬어간다고 했다. 나도 거기로 가야 하나. 몸은 이미 지쳤고 버르르 오한까지 돌았다. 그만 멈춰야 할까 싶었는데 San Martín del Camino엔 대형 마트가 없다. 인구가 약 400명인 작은 마을이라니 그럴 법도 하지. 작은 구멍가게에선 신선한 재료를 구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그 문제에 왜 이리도 연연하는가 하면, 오전부터 추운 날씨에 뜨끈한 백숙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코 끝에 맴도는 구수한 한약재 냄새를 신기루처럼 달고 걸었다. 7km를 가면, 7km만 더 가면, 뽀얀 생닭 한 마리를 사다가 마늘을 양껏 넣고 백숙을 끓여 먹을 수 있다. 머릿속에 한소끔 부글부글 끓여낸 백숙이 들어차있다. 날도 개었겠다, 그 정도는 견줄만할 것도 같았다.

전봇대에 달려버린 사연 있는 신발들. Shoe Tossing이라고들 한다던데, 이유는 던진 사람만 알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바닥을 드러낸 체력이 길가에 아무렇게나 주저앉게 만들었다. 외다리 스틱만으로는 걸음이 힘들어 길가에서 긴 나뭇가지 하나 골라 장대로 짝을 만들셈으로 유심히 뒤져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젊은 사내가 팔다리를 휘적이며 걸어온다. 걷다 말고 나뭇가지를 고르고 있는 내가 그의 눈엔 의아해 보였겠지.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내가 어디 다친 줄 알았더란다. 혹은 나무껍질을 먹으려고 하는 줄 알았다고. 힘든 내색 하나 없이 걷던 그의 씩씩한 뒷모습과 길가에 버려진 나뭇가지를 골라 잡기 좋게 껍질을 벗기고 있는 나의 처량한 모습이 대조되기 그지없어서 낯빛이 뜨거워졌다. 아니 나도 나지만 그걸 왜 먹겠느냐고요. 참 사람도.


널브러진 다리로도 그까짓 백숙이 7km를 더 걷게 했다. 살면서 '그까짓 것'들이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어지간히 그만한 것들이 대단한 것들을 해치우는 순간들을 좋아한다.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들로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 순간들을 난 낭만이라고 부른다. 필수(必須)와 부수(附隨)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들을. 가령 봄하늘 내리는 단비에 함빡 젖는 것들이, 어린아이의 질문 같은 것들이, 목적 없이 걷는 낯선 골목길이, 소복히 쌓인 눈길에 처음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오늘 나에겐 그까짓 7km가, 함께 재료를 손질을 하던 순간이, 후후 불어가며 닭껍질을 벗겨 먹은 순간들이 낭만이었다.

산티아고까지, 303,6km
이 풍경을 앞에 두고 내 머릿속은 온통 백숙이었다니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재료를 사러 가려는 사이, 정성껏 끓인 백숙을 혼자 먹기도 민망한 참이고 냄새도 온 진동을 할 터라 함께 먹는 게 낫겠다 싶어 숙소에 있는 한국사람들에게 소심히 물었다. “저 백숙 끓여 먹으려는데 같이 드실래요?” 한국에서 반바퀴를 돌아 떨어진 곳에서 백숙을 끓여 먹는다니,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반가운 모양이었다. 몇 명은 이미 식사를 마쳤기에 세 명의 파티원으로 그쳤지만. 의도하진 않았지만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하마터면 무심코 초대한 저녁식사를 위해 저녁 내 닭만 고을 뻔했으니.


생닭을 깨끗이 씻어, 군내가 나는 날개 끝과 꽁지부위를 잘라낸다. 냄비에 닭이 잠길 만큼 물을 부어 올리고 양파껍질과 파뿌리를 넣어 육수를 낸다. 당귀니 엄나무니 하는 것들을 같이 넣으면 더할 나위 없는 한국 복날의 맛이겠지만 이만으로도 훌륭한 맛이 난다. 본래 들어가는 재료가 많이 없어 만들기 쉬운 것이 백숙이다. 그런데도 펄펄 끓여 상에 내고 나면 뭔가 대단한 음식처럼 보이는 것 또한 백숙이다. 마늘과 양파를 앞에 두고 함께 재료를 다듬고 손질했다. 맛있게 고아진 닭을 나누어 먹으며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들처럼 웃고 떠들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맛보는 담백한 맛을 한가득 퍼다가 먹고, 또 담아서 먹고, 국물에 생쌀을 풀어 감자와 당근을 넣고 자작하게 끓여내 죽까지 만들어서는 싹싹 비웠다. 몇몇 사람들을 위한 내일의 아침 식사로 조금 남겨둘 참이었지만 건실한 장정 둘과 백숙귀신 여장부 앞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Hospital de Orbigo에 있는 Puente del Passo Honroso.
Puente del Passo Honroso [출처: https://www.clubrural.com/casas-rurales/leon/hospital-de-orbigo]

자리를 정리하고 함께 모여 일기도 적었다. 마을을 돌아다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짧게 동네 산책을 했다. Hospital de Orbigo는 Puente del Passo Honroso라는 돌다리로 유명하다. 이 돌다리에 걸친 유구한 역사를 기념하려 '기사 대회'가 열린다고 하니 말 다했다. 이야기인 즉, 바야흐로 1434년, 수에로 데 키뇨네스(Suero de Quiñones)라는 레온 출신의 기사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마음이 닿질 않자 30일 동안 저 돌다리를 지키며 지나는 기사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한다. 도합 300번의 창싸움으로 극단적인 기사도의 구애를 펼친 셈이다. 지금으로 보면 종로서 뺨 맞고 한강서 화풀이가 따로 없다. 그저 지나는 기사들은 뭔 죄였단 말인가. 하긴, 그게 그 당시의 낭만이었으려나. 이따금씩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흐리터분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또한 낭만이니까. 결국 그의 사랑은 이루어졌을까. 800살 먹은 돌다리만 알겠지.


Question 23.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까?

고된 하루의 끝에도 빼곡한 일기로 기록하려는 이유가 그것이며 혼자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함께 어울리는 이유도 그것이다. 홀로 간직하는 일기는 기억을 만든다. 나란히 걸으며 나누는 대화와 마주 앉아 먹는 식사는 추억을 만든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데다 시간은 모든 것을 조금씩 가져가니까 언젠가는 흐릿해질 것이다. 그러니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공교롭게도 글을 적는 오늘이 중복이다. 백숙을 먹지 못했지만 글을 적으며 그때의 백숙 맛이 절절히 입에 돌아 한 그릇 배불리 먹은 것만 같다. 그러니, 백숙 맛만큼은 평생을 잊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