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24. 따듯한 손과 마주 감은 눈으로
그곳에 있어주어서,
그리하여 만나주어서,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되어주어서.
2019.11.06 (08:00) Hospital de Orbigo - Santa Catalina de Somoza (17:00) (26km)
아침에 일어나 보니 6시 30분이다. 순례길 위에서 잠 욕심은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잠깐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알람을 끄고 이불을 감아 돌아 누웠더니 감은 눈의 검은 배경 사이로 '가야지'와 '쉬어야지' 마음이 팽팽히 겨뤘다. 다른 순례자들의 사그락거리는 소리에 힘을 입은 '가야지' 마음이 번떡 눈을 뜨게 만들었고, 침대를 떠나 아침 식사 앞으로 데려다주었다.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서려는데 전 직장 상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담당했던 사업이 어려운지 이것저것 물어왔다.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하는 그에게 미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대답해 주는 거라 해봤자 별게 없겠지만, 그래서 더 도움이 될지 방해만 될지 모르겠지만, 그저 내가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애착을 가졌던 일에 대한 열정이 둥둥 떠오르는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는 전화를 마치며 조만간 보자고 했다. 인사치레였을 것이다. 나도 그러자며 대답했다.
어제 백숙을 함께 먹은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열이 올라 패딩을 벗어놓고 잠깐잠깐 쉬고 싶었는데 이 두 명의 장정들이 보양식으로 원기 회복을 톡톡히 한 탓인지 걸음이 너무 빨라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조금 걷자니 시골길로 향하는 길과 포장도로를 따라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그 길로 갈라서서 그들은 포장 도로로 향하고, 나는 흙길로 들어섰다. 걸음이 느려 괜히 거치적거릴까 싶어서도 있었지만 아스팔트길보다는 흙길을 걷고 싶었다. 땅에 박힌 작은 자갈들에 발가락이 아팠지만 그래도 시골길이 좋았다. 길을 걸으며 여물어 떨어진 배를 주워 먹고, 보이지 않는 곳에 몸을 숨기고 작은 볼일을 해결했다. 작은 우사를 지나며 송아지와 눈을 맞추고 풍화로 깎인 경치를 감상했다. 길과 풀과 나무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힘든 길에서도 가끔씩 고개를 들어 경치를 훑는다. 옥수수 밭이 바람에 간질거리는 풍경과 멀리 펼쳐진 산맥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가끔은 힘든 것도 잊곤 하지만 오늘은 어제 배부르게 먹은 탓인지 몸이 무거워 유독 힘에 부쳤다. 이만큼 걸었으니 Astroga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나와야 하는데, 자꾸만 멀어지는 기분이다. 오늘은 걷다가 자꾸만 주저앉아 귤을 까먹었다. 투박한 씨가 씹히면 혀끝으로 아롱아롱 골라내 툭, 툭 하고 뱉어냈다.
겨우 Astroga에 도착하고 나서 잠시 쉬어가려고 성당에 들렀다. 순례길 위의 비교적 규모가 큰 성당에서는 알베르게에서 받을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찍어줄 수 있는 sello(도장)를 가지고 있기에, 짧은 미사 후에 도장을 받으려 기웃거리다 미처 찾지 못해 그냥 나가려는 차에 마리아 아줌마를 만났다. 마리아는 대뜸 어수룩한 나의 손을 잡아끌고는 도장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나의 크레덴시알(Credencial)에 선명히 도장을 찍는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일련의 과정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다가, 잉크가 마를 때까지 허공에 펄럭이는 것까지 잠자코 기다리고는 내가 크레덴시알을 집어넣자 다시 다가와 예수의 동상 앞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예수의 발에 입맞춤을 해 보이곤 날 바라봤다. 내가 똑같이 하자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그다음엔 나의 이름을 물었고, 나의 손등에 한쪽 손을 얹고는 기도를 해주었다. 그녀의 손이 따듯했다. 계산 없는 호의에 익숙지 않아 비스듬히 방황하던 눈길이 성모상으로 향했다. 성모 마리아 님, 제 앞의 마리아가 날 위해 뭐라고 기도하고 있나요.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성당을 나와 점심을 먹었다. 다시 길에 오르려는데 맞은편 가게에 판매 중이라고 적혀있는 스틱이 보였다. 아직 300km도 더 남은 나의 순례길 여정에 한 쪽짜리 나무 지팡이로는 버겁겠다 싶어 마침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한 쌍을 구매했다. 하나에 5.5€, 그러니까 짝으로 두 개라면 11€여야 셈이 맞는데, 아저씨가 내 투박한 지팡이를 보고 너털웃음을 짓고는 1€를 돌려주었다. 기대하지 못한 흥정에 계산을 마치고 흡족하게 가게를 나서려니 그의 아내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물건 정리를 하다 말고 급히 계산대로 돌아와서는 불만 섞인 말을 쏟아냈다. 모르긴 몰라도 나의 스틱 때문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따가운 귀청 반대편으로 허공만 응시하고 있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괜히 계산을 마친 물건을 들고 가기도 뭣하고, 딴에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어 관두었다.
더 걸어 도착한 Murias de Rechivaldo 마을에서 쉬어가려 했는데, 찾아간 큰 알베르게는 짐을 내려놓은 이 하나 없이 휑하게 비어있었다. 11월 중순을 향해가는 시기에 날도 추워지니 사람들이 적어지는 듯했다. 숙소에서의 편안함은 난방의 온도뿐 아니라 사람의 온기로부터 온다. 하루의 끝에 주고받는 말 따위나 사그락거리는 침낭 소리 하나 없이 밤을 나서기엔 내가 충분히 용감하지 않았다. 나만을 위해서 불을 때는 것도 짐스러울 것 같아 다시 길에 올랐다.
도착한 santa catalina, 알베르게에 들어서기 전에는 들판에서 풀을 뜯는 소들이 제각기 목에 종을 달고 연주를 했다. 듣기 좋은 소리다. 본의 아니게 5km 남짓 더 걸어 26km를 걸었으니 만족스러운 기분에 마음도 편했다. 돌담과 뻗은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돌로 쌓아 만든 집들의 나무 발코니와 붉은 기와지붕의 풍경. 체크인 후에 배정받은 방에 들어가니 이미 몇몇 침대에 큰 짐들이 한 보따리씩 늘어서있다. 포근한 공기가 차가운 바깥바람과 만나 창문 안쪽으로 습기가 어린다. 주고받는 인사말들. 무언가의 지퍼를 열고 닫는 소리. 막 씻고 나온 사람들의 은은한 비누향. 느껴지는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소리와 냄새들. 하마터면 외딴 숙소에서 약한 전기난방을 틀어두고 옹송그린 채 홀로 잠들었을 생각에 그들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졌다. 하루의 끝에 함께 있어주어서 고마워요. 오늘만큼은 그 어떠한 코골이가 찾아온대도 이를 앙다물고 참아볼게요.
식당에서 계란과 베이컨, 감자튀김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셨다. 난로 안에 타오르는 불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숙소에 있던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밖으로 나간다.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 나가봤더니 적어도 30마리는 되어 보이는 새끼 고양이들이 꼬물꼬물 뛰어놀고 있었다. 하얀 고양이, 검정 얼룩무늬의 고양이, 짙은 노란색의 고양이, 양쪽 귀만 까맣게 색칠한 고양이. 저들끼리 엎어지고 뒹굴면서 신나게 노는 모습에 눈으로만 잠깐 훼방을 놓다가 다시 들어와 일기를 마저 적었다. 고단했던 하루 끝에 맥주 두 잔을 연거푸 마시니 금방 취기가 올랐다. '내일도 27km를 가야 한다'라고 적고 있는데 같은 방을 쓰는 외국인들이 의자 위로 다리를 꼬아 앉은 나의 가부좌 자세와 한국어로 빼곡히 적힌 일기를 보고는 신기해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에 얼굴을 들이밀자 반사적으로 살짝 감췄다가는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순 그 어떤 비밀스러운 글을 적는대도 저들은 알아보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야릇한 기분까지 들었다. 당연하지만 다행이게도 그들은 무어라 적었는지 물어오지 않았다.
시골마을의 낮은 짧다. 고도가 높아지고 있다. 슬슬 체력을 비축해야 하니 오늘은 일찍 잠에 들어야겠다. 오늘도 힘들었고, 어제도 힘들었으며, 내일도 힘들겠지만 어쩌겠어, 가야지. 멈출 일은 없는 나의 남은 순례길에, Buen Camino.
Question 24. 넌 괜찮은 사람이야?
어렸던 그때의 나는 이런 고민을 했구나. 5년 전의 일기를 엮어내는 요즘의 나는 마음에 여유가 없다. 지하철에서 앞서가는 누군가의 걸음이 느리다면 답답해서 한숨이 절로 나고, 내 옆에서 꾸벅이며 조는 사람의 쏟아지는 몸을 부러 밀치기도 한다. 누군가의 실수에 너그럽지 못하고 누군가의 성공에는 시새운 마음이 먼저 든다. 그러니 그때의 나에게 미안해진다. '괜찮은 사람일까'라고 고민한다는 의미는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는 의미이니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그 바람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거일 테니까. 더 나은 사람이길 바랐던 과거의 나에게 면목이 없다. 그럼 그때의 나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는가. 어떤 게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인가,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인가,라고 적었다. 그러다 나에게 너무 모질어진다면 스스로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진 않을까, 하고도 적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썼다. 어려워지지 말자, 고. 남을 위하든 나를 위하든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라고, '괜찮고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힘쓰지 말자고. 다른 사람과 나에게 모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날의 나를 보며 다시 생각해 본다. '난 괜찮은 사람인가.' 일기를 덮으며, 여전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