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오라, 오라.

story 25. 방랑자, 예배자, 그리고 여행자여

by JJ
Road called me, 길이 날 불렀어.
네가 찾는 것이 무엇이든,
이 길 끝에 있을 거라고.

2019.11.07 (07:40) Santa Catalina de Somoza - Foncebadón (14:00) (16.5km)


난생 머리 털나고 이런 날씨는 처음이다. 아니다. 5년 전 한겨울 제주도에서 느껴본 것도 같다. 성산의 섭지코지가 하얗게 덮여있던 날이었다. 분명 그날엔 재난문자가 왔다. '기상특보에 따른 주의, 대설·강풍·한파·풍랑 특보에 따른 주의사항 안내, 대설특보, 안전사고, 유의, 가급적...' 아침부터 차디찬 겨울바람이 악에 받친 적군처럼 몰아쳤다. 줄기차게 비가 오더니 10km 정도 걸었을까, 빗방울이 단단하게 부풀고는 곧 눈으로 변했다. 이건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리치던 터라 힘들었다. 근데 이젠 눈보라라니. 겪어야 할 것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걸을 수 있는 길이 갈래로 나 있어 선택해야만 했다면 조금 더 편한 길을 고르다가 결국엔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걸을지 걷지 않을지조차 선택할 수 있었다면 폭삭 주저앉은 마음을 돌이키기에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저, 멈출 수 없어서 걸었다. 이 길을 완주하려면 멈추지 않는 수밖엔 없다. 멈춤의 선택지는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기에 그저 걸었다. 어떻게 하면 편할까, 어떻게 하면 덜 젖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순간부터 고달파진다. 그래 젖어라, 다 젖어버려라 생각하면 좀 낫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경우엔 예외 없이 폭싹 젖는다.) 12km쯤에 있는 Rabanal del Camino를 지나오며 만난 노년의 주민들이 하나같이 염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딸아, 널 어쩌면 좋니'.

곳곳에 무지가 피어있었다. 곧 눈보라가 칠 것도 모르고 기분이 좋았다.

눈보라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한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소리를 지르다가, 우는 시늉을 하다가, 앓는 소리를 내며 신음했다. 독한 년, 독한 년, 하면서. 처음으로 욕지거리를 뱉으며 울먹였다. '씨발, 이딴 짓을 도대체 내가 왜 하고 있는 거야.' 왜인지도 모르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욕을 '존나게'하고 싶었는데 욕도 고루할 줄 모르는 게 한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악에 치받쳐 가 닿지 못하는 증오심에 치를 떨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가만 불러 세웠다. 오며 가며 만났었고 어젯밤 알베르게에서도 지나친 적 있었던 오스트리아 여인 마야다. 그녀는 말 수가 얼마나 적은지, 누군가의 질문에도 곧잘 대답을 않고 웃어 보이기만 했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곤 했었다. 해서 그런 그녀의 부름에 눈이 동그래진 채 무얼 말하는지 들어보려니 마야는 조용히 자신의 판초를 벗고, 배낭을 내려놓고, 배낭의 지퍼를 열었다.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그 모든 걸 아주 차분히 그리고 조용히 해냈다. 그리곤 한 쌍의 장갑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손끝이 뚫려있는 나의 반장갑으로는 이 Irago 산을 넘어가기에 무리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손톱을 드러낸 채 눈보라를 견디고 있는 나의 반장갑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가방 안에 있던 여분의 장갑을 내어준 것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셈도 없이 선할 수 있지. 그리고 왜 난 저렇게 선할 수 없지. 부끄러운 마음에 뱉었던 욕지거리를 주어 담을 수 없어 없던 일처럼 굴었다.

산티아고까지, 253,2km.
산 중턱에 오르니 비가 눈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쌓여가는 눈이 포근한 이불처럼 보일 때 즈음이 되어 '잠깐 여기서 누워볼까, 그럼 죽겠지.'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큰일이 날 것만 같아 Foncebadón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알베르게로 들어왔더니 창도 막도 없이 불길이 전해지는 벽난로가 있다. 딱 이런 걸 바라던 참이었는데. 난로에 몸을 녹이고 있으니 이 미쳐버린 날씨에 걷기로 작정한 미친 사람들이 나 뿐은 아니었는지 설인이 되어버린 꼴로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지 않기에 어지간히 힘들어 조금 더 쉬다가 숙소에 올라가 씻으려나보다 싶었는데 잠시 후 옷을 챙겨 입고는 더 걷는단다. 정신이 나갔지. 진짜 미쳐버린 건가? 어쩌면 카미노를 걷는 이들 모두 자학이 취미인 건 아닐는지.


그들이 떠나고 조금 지나지 않아 호스피탈레로가 사과와 계피를 넣은 따끈한 뱅쇼를 끓여주었다. 장작이 타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달달한 뱅쇼를 잇따라 마시니 후끈히 속도 얼굴도 데워졌다. 잠깐 창밖을 봤는데 눈보라가 아까보다 더 심하게 내리친다. 아까 떠난 사람들은 어딘가에 몸을 피하고 있으려나, 오늘 하루 안전히 살아남기를 바라게 될 정도였다. 호스피탈레로가 한 잔의 뱅쇼를 더 따라주며 말해주었다. 고도가 높아 눈이 오는 거라고. 내일 이 산을 내려가면 다시 비가 올 거라고 했다. 내일 산을 넘는 것도 걱정이다. 이 날씨가 계속된다면 마음의 준비는 필수. 손이 얼어터졌다. 손톱 주변으로 거친 살들이 빼죽빼죽 거스름처럼 올라왔다. 오늘의 목표로 계획했던 26km를 미처 가지 못하고 10km 뒤쳐졌다. '더 갈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어 창밖을 보면 어림없다는 듯 몰아치는 눈보라가 조금 위안이 되었다. 걷고 있는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눈이 쌓이기 시작하던 오후 3시, Foncebadón

따듯한 물 팡팡, 사람들도 복닥거리고 흘러나오는 노래도 좋다. 바작거리며 타오르는 난로도 단연 최고다. 씻고 나와 연거푸 따라주는 뱅쇼를 한잔 더 받아 마시며 난로 앞에 앉았다. 주변 식당을 검색할 겸 구글 지도를 살피니 이 알베르게, 평점이 최악이다. 빈대가 있단다. 주인이 불친절하단다. 내 컵에 뜨끈한 뱅쇼를 한가득 따라주는 이 사람이 주인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이게 친절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어제 분명히 남들의 평가로 다른 무언가를 쉽게 판단하지 말자 다짐했기에 무시하고 넘기려 했지만 여전히 빈대는 쉽지 않다. 온라인에 이런 평점이 남아있으니 모르긴 몰라도 한차례 방역을 했을 것이다, 선곡이 이렇게도 좋은데 인터넷 한 번 살피지 않았을 리 없다, 하며 부단히도 불안한 마음을 설득했다.

타오르는 난롯불 앞으로 순례자들의 옷가지들이 널려있다. (빨간 비니는 내 모자)

난로 앞에 널어놓은 나의 새 장갑을 가만 바라보았다. 그녀가 전해준 장갑 없이 이 산을 넘었다면 손톱이 하나쯤은 빠졌을까. 마야는 오늘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으려나. 나의 반장갑을 깨끗하게 빨아 나란히 옆에 널어 말리고 벽난로 위에 살포시 얹어두었다. 날이 풀리고 해가 뜨는 어느 날엔가 누군가에게 나의 반장갑도 쓸모가 있어주기를.


먼저 다녀간 이들의 흔적이 벽난로 위의 공간을 잔뜩 메웠다. 그중에서도 까만 비석 위에 적힌 잘랄루딘 루미(Jalaluddin Rumi)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Come, come whoever you are, Wanderer, Worshipper, lover of leaving. ours is not a caravan of despair. even if you have broken your Vow one thousand times... Come yet again, come, come.' '오라, 오라. 당신이 그 누구든지, 방랑자, 예배자, 그리고 여행자여. 우리는 절망의 행렬에 속하지 않으므로. 설령 당신이 천 번 맹세를 어겼다 하더라도... 또다시 오라, 오라, 오라.'

알베르게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근처에 식당이랄 것도 많지 않고, 바로 옆에서 피자를 팔고 있었기에 거기에서 저녁을 먹으려 했으나 오후 5시에 영업이 마감되었단다. 오후 5시에? 저녁식사가 한창일 시간인데 장사가 끝났다니, 이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인가. 피자로 오늘의 고되었던 하루를 위로받으려고 했던 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다니 억울한 마음이 들어 한참 동안 식당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식당 주인이 다가와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상황을 설명했다. 중간중간 알아들은 단어, 'Nevando' 눈, 'Mucho' 많이, 'Quitando' 치우다, 와, 그의 삽질하는 몸짓을 미루어보아 오늘은 일찍 마감을 하고 저녁 사이 눈을 치울 모양인가 보다 싶었다. 그러니 피자 한 판을 내어다 달라고 빌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몰아치는 눈보라에 멀리 갈 성싶지도 않아 다시 숙소에 돌아와 몇 안 되는 메뉴 중 참치가 들어간 펜네 파스타를 시켰다.

피자집을 실패하고 숙소에서 주문해 먹은 파스타. 비주얼은 이래 보여도 맛이 기가 막히다.

전자레인지가 끝나는 소리와 함께 내 식탁에 내려진 그릇은 누가 봐도 삶은 펜네 파스타 면 위로 토마토소스를 성의 없이 뿌리고 참치캔 하나 뜯어 올리고는 전자레인지로 돌린 듯했다. 분명 그랬는데, 분명 재료도 몇 되지가 않고 분명 정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음식이었는데, 놀랍게도, 이게 아주 맛이 기가 막힌다. 바닥난 기대심에 주린 배나 채우자 싶어 포크로 대충 찍어 한 입에 넣었더니 토마토소스와 참치, 약간의 치즈가 꾸덕하면서도 절묘한 조화를 이뤄낸다. 비워지는 그릇이 아쉬워 맥주만 네 잔을 마셨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이 파스타의 비슷한 맛이라도 찾아보려 여러 번의 시도를 거듭했지만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들이키는 맥주에 알싸해지는 정신을 누르며 일기를 적었다. 짐을 챙기고 저 문을 나서던 이들의 비장한 눈빛을 떠올리며 '나도 더 갈 수 있지 않았을까'하고 적고는 잠깐 후회하다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등 뒤로 꺼지지 않고 타닥이며 공간을 데우는 장작 난로, 나무로 만든 창 밖으로 몰아치는 눈보라, 참치 토마토 펜네 파스타와 맥주. 그리고 주인장의 선곡 센스가 돋보이는 플레이리스트로 'The Lumineers의 Blue Christmas', 'Tash Sultana의 Notion', 'Silvana Estrada의 Te Guardo'가 순서대로 흘러나왔다. 노래를 들으며 맥주를 홀짝이다 보니 어느샌가 난로의 열기에 취하고, 맥주의 술기운에 취하고, 얼마나 몰아치든 상관이 없어진 눈보라에 취한다. 간드러지게 귀에 붙는 노래들에 또다시 취한다. 식사를 모두 비우고, 식기가 달그락거리며 물에 씻겨나가는 소리가 끝나고, 바깥 길에 눈이 쌓여 오르고, 장작불이 더 이상 타오르지 않을 때까지 공간에 남아있었다. 오래, 아주 오랫동안.


Question 25. 넌 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걸으려고 했을까?

왜였을까.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라거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한 고행이라거나, 도전과 성취, 치유와 회복, 동경, 경험, 연결, 연대와 관계... 그럴싸한 단어를 하나라도 갖다 붙여 예쁘게 포장하고 싶지만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나는 그런 맛깔진 단어들과는 별개로 그저 낯선 땅에, 그것도 걷기만 하면 된다는 지구 반대편 세상에, 걷는 것 외에는 아무 걱정도 없이 하루의 날 끝에 몸을 뉘일 곳과 물집만 건사하면 된다는 곳에, 나를 버려두고 싶었다. 그 모든 허례와 허식을 벗어두고서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었다. 글쎄, 나에겐 일종의 증명이었던 것 같다. 확인과 확신. 내가 나와 그 누군가의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는 것. 생각보다 나는 더 많은 걸 할 수 있고, 더 멀리 갈 수 있으며, 더 많은 걸 경험하고 더 힘든 걸 견딜 수 있다는 것. 스스로 더 많은 걸 생각하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길의 중간을 지나고 나니 이런 이유야 이제 더 이상 중요치 않다. 지나며 만나는 이들에게 걷는 이유를 묻는 것도 그친 지 오래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그 질문을 들은 것도 오래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마주하는 질문엔 언젠가부터 이렇게 대답한다. 'Road called me, 길이 날 불렀어.' 뭐 하나 볼품 있는 이유 없는 나는 그 말 자체로도 많은 것들을 대신할 수 있다. 뭐,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니. 그렇다고 하자. '길이 날 불러서 여기에 왔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