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26. 그 위에 내려앉은 무릎과 기도하는 손
어느 날의 희생, 어느 날의 꿈, 어느 날의 이별들이 메워져 덩어리 진 존재들.
그 사이 빈 공간을 채우는 하얗고 따듯한 위로의 요.
2019.11.08 (08:00) Foncebadón - Ponferrada (17:00) (27km)
밤 사이 잠에 들지 못했다. 빈대 걱정이 2할, 추위가 8할쯤 되었으려나. 추웠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옷이란 옷을 모두 껴입고 침낭 안에 들어가 최대한 몸을 웅크렸지만 미처 숨길 수 없는 코끝은 시큰하게 식어갔고 숨을 내쉴 때마다 옅은 입김까지 새어 나왔다. 빈대는 없는 것 같아 한시름 놓았대도 걔도 추워서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려나. 혹은 다 얼어 죽었거나. '흐 추, 흐 추...' 신음 사이로 이가 달그락거리며 부딪혔다. 춥다 추워.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지만 형편없는 난방에 맞서 항의하거나 강력히 주문할 의욕조차 없었다. 아침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조금씩 동이 터오를 때 즈음이 되어 따듯한 물로 몸을 달구고 난로 앞에 자리를 차지했다.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려는데 찬바람과 동시에 눈이 내리친다. 난로 앞에서 가져온 온기를 방패 삼아 걸으려 했지만 밤 사이 차게 식었던 몸은 온기를 그리 오래 데려가지 못했다. 아직 걷히지 않은 구름 밑으로 흰 눈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
밤 사이 쌓인 눈은 어떤 곳엔 내 무릎만큼도 왔다. 앞서가며 크고 깊은 발자취를 남겨준 이는 러시안 할아버지 스미르노브, 일명 파파스머프다. 언젠가 그의 이름을 말해줄 때, 난 아무리 해도 '스미르노브'까지 밖에 발음이 닿질 않는데 그는 여러 번이고 나의 발음을 고쳐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한국 땅에서 나고 자란 나의 혀로써는 도저히 발음할 수 없는 소리였기에 열심히 따라 하는 척만 몇 번 하고는 그가 만족하는 척, 혹은 포기를 할 즈음이 되어 스머프라고 별명 지어버렸다. 내 친구 파파스머프. 복수심에 나의 한국 이름을 말해주며 따라 해 보라 하니 몇 번 연습한 사람처럼 술술이다. 아, 분하다.
파파스머프와 크로아티아에서 온 카를로는 연신 내가 걱정되었는지 길을 걸으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다음 발걸음을 따라 걷다가 누군가의 기척에 고개를 들면 멀리 서 있는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면 그만치에서 활짝 웃어 보이곤 다시 등을 돌려 앞서 걸었다. 혼자 걷는 걸 좋아하는 나였어도, 오늘만큼은 함께 가는 일행이 참 든든했다. 그들이라면 코를 신나게 골아도 좋을 거라 생각도 들었다. 오래, 오랫동안 함께 걷고 싶었다.
그들의 큼직한 발자국을 따라 산 정상에 오르니 철의 십자가에 다다랐다. 순례자 모두가 지나며 자신의 흔적과 기억, 누군가와의 이별을 묻어두고 간다는 곳. 이 의식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돌멩이와 사진들이 철의 십자가 기둥 아래로 한가득 쌓여있다. 순례길을 따라 집을 떠나며 가방 안에 고이 챙겼을 신성한 돌멩이들. 조금은 슬픈, 조금은 아픈, 작거나 큰 염원 혹은 속죄들. 어느 날의 희생, 어느 날의 꿈, 어느 날의 이별들이 메워져 덩어리 진 존재들. 그 위로 흰 눈이 소복이 덮였다. 비어진 공간을 채우는 하얗고 따듯한 위로의 요.
무수히 해맑게만 보였던 카를로는 철의 십자가 밑에서 한참 동안 무릎을 꿇어내리고 긴 기도를 드렸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을 맞추곤 발 밑에 내려두었다. 어떤 마음일까. 그 모습을 지켜보는 파파스머프의 눈가도 붉어지는 듯했기에 괜히 눈을 피했다. 나는 왜인지 이상하게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매번 사진으로 이곳을 볼 때마다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는데. 역시 이상과 현실은 다른가. 데려온 돌멩이 하나 없으니 내려놓을 것도 없다. 난 무엇하나 두고 갈 수 없는 사람인 걸까. 난 저런 간절한 마음을 마지막으로 품어본 것이 언제였던가. 새삼 그 꿇어앉은 무릎이, 돌멩이가, 내려놓는 손짓이, 모아 잡은 두 손이, 그가 드리는 긴 기도가 부러워졌다.
눈보라 치는 언덕에서는 몸을 피할 곳 하나 없었기에 카를로의 긴 기도를 마지막으로 다시 길에 올랐다. 그 사이에 더 쌓여 오른 눈이 푹푹 찔리니 스틱의 이음매 부분이 힘없이 쑤욱, 하고 빠지더니 고장 나버렸다. 고깟 스틱 값 좀 깎아줬다고 아저씨를 들볶던 여인의 눈빛이 떠오른다. 잘났어 정말. 산 중턱에서 고칠 수 있는 뾰족한 수도 없는 노릇이라, 물집용 테이프로 둘둘 감아 임시방편을 마련해 놓고 조심, 또 조심하며 걸었다. 경사가 완만해지는가 싶더니 곧 평지를 따라 내리막이 이어졌다. 고도 1300m 지점인가부터 눈이 녹기 시작하고 날도 완연한 봄이었다. 하루 사이 여러 계절이라니, 신기하기도 하지. El Acebo에서 쉬어가며 점심으로 보카디요와 카페라테(café con reche)를 먹었다. 바게트 안에 베이컨과 치즈 외에 들어있는 것도 없는데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그만큼 맛이 좋을 수가 없다.
너무도 예쁜 산길이었다. 갈 길이 먼 것도 잠시 잊고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오래도 즐겼다. 가만히 시선을 따라간다. 햇빛이 묻어 반짝이는 나뭇잎, 흐르는 산등성이, 비슷한 키의 나무들. 물 대신 돌이 흐르던 작은 길. 그리고 한 마리의 송아지처럼, 반짝이는 눈을 껌뻑거리는 나. 낯선 나. 철저히 방목된 나. 아무런 역할 없이 존재하는 나. 느껴지는 바람, 코 끝을 타고 흐르는 숨. 새와 나비에게 고향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날개가 달린 자유로운 존재들의 고향. 세상에 나고 떠나고 흐르고 돌아오길 수없이 반복해도 그대로 아름다울 것만 같은 풍경들. ponferrada로 향하는 길 동안 편하고 빠른 지름길의 요행을 행할 수 있었던 기회가 여러 번이었대도 모두 카미노를 선택했다. 고마워, 나의 느리고 자랑스러운 송아지야.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기부제로 운영되는 알베르게였기에 사람도 많고 정겨웠다. 카를로가 음식을 만들었고 나와 팀은 샐러드와 발사믹소스를 준비했다. 주방장 출신이라던 카를로의 음식이 기가 막히게 맛있다. 포슬하게 익은 감자 사이로 치즈를 넣고, 버섯과 함께 녹진하게 끓여낸 스프를 둘러내 완벽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탓에 저녁에는 소식을 하리라 다짐했건만 역시나 실패다. 식사 끝에 정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내일 아침거리를 사러 나간다는 카를로를 따라나섰다. 한 마디의 영어도 쉽지 않은 그와 크로아티아어를 모르는 나는 당연히 언어의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기에, 어색한 길 위에 꺼내든 나의 비장의 카드. 일명 '너네 나라 말로 뭐야' 챌린지다. 손가락이 닿는 모든 것을 가리키며 '이건 크로아티아말로 뭐야?'라고 물으니 그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대답했고 나는 크로아티아어로 별(시에스타)과 차(아웃둬), 시장(두챠)과 나무(드로워), 하늘(네보)을 배웠다. 그도 같은 것들을 한국말로 발음하는 법을 배웠다. 언어의 장벽이 또 다른 언어의 장이 되는 기적의 챌린지. 누군가, 언젠가, 먼 이국땅으로 떠나 낯선 이와의 어색한 기류를 감당해야만 한다면 '너네 나라 말로 뭐야' 챌린지를 꼭 써먹어보시길. 물론, 그곳이 순례길이라면 역시나 하나의 말로 통하겠지만. 'Buen Camino'
Question 26. 10년 후의 너는 어떤 모습일 것 같아?
이 일기를 적을 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5살이 어렸으니, 벌써 그날의 일기에서 예상한 날의 반이나 지난 셈이다. 2019년의 나는 이렇게 적었다. '아이의 엄마이려나, 아마 그렇겠지,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거나, 성공한 커리어 우먼, 이고 싶다'고. 보자, 5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려면 지금 당장 지나는 아무나 붙들고 사귀어달라 애원을 한 다음, 두어 달 만에 식을 올리고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빠듯한 일이다. 그러니 5년 전의 나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바랐던 이상에 가까워지기보다는 그저 5년 전의 너와 별 다를 바 없는 내가 되었다. 아직도 철없이 노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마음이 가는 모든 것들을 좋아하며 살고 있다고. 그러니 앞으로 5년 후의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근데 뭐 아무렴 어떤가. 새와 나비의 고향은 아직 잊지 않았어, 순례길 위에서 만났던 모든 풍경과 관계들도. 한 치 앞도 헤아릴 수 없는 세상에서 그거면 되지 않나. 그날의 너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아직도 여전히 꾸준히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는 거. 지금도, 5년 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