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28. 만남과 이별, 그 순환 속에서
탄생 끝의 죽음, 만남 끝의 헤어짐
그 순환 속의 인연들
2019.11.10 (09:00) Viafranca del Bierzo - La Laguna (16:30) (26km)
아침에 눈을 뜨니 7시를 넘긴 시간이다. 흔치 않은 늦잠이다. 6시 20분에 맞춰둔 알람을 듣고는 10분만 더, 하던 것이 까무룩 40분 동안 깊은 잠에 들어버렸다. 어제의 과음이 불러온 응당한 대가다. 묵직하게 내려 누르는 머리가 돌덩이처럼 무겁다. 안개처럼 깔린 흐리멍덩한 숙취 덕분에 한세월이 걸리는 준비를 겨우 마치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다시 돌아와 침구를 정리하려니 머리맡에 작은 종이가 있다. 어젯밤 축구경기를 보러 함께 갔던 이들 중 하나가 남겨놓고 간 쪽지다. 어딘가에 대고 급히 적은듯한 글씨로 오늘 자신의 목적지와, 만나서 반가웠다는 말로 시작하는 짧은 편지와 함께, 'Buen Camino'를 적어두었다.
이토록 나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이라니. 짧은 쪽지를 읽고 또 읽었다. 난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을 그저 지나쳤는데. 왜 난 이런 용기를 낼 수 없었는가에 대한 자책 어린 고민 때문이었는지, 무방비하게 입을 벌어젖힌 채 퉁퉁 불어 터진 잠든 얼굴의 내 모습이 속절없이 드러났을까봐 였는지, 한동안 마음 한켠이 불편했다.
겨우 채비를 마치고 나오니 9시가 넘은 시간. 비가 내렸다. 잠깐씩 그칠 법도 한데 피할 궁리도 할 새 없이 계속해서 내렸다. 땅도 의자도 나무도 하늘도 빗물에 젖어있으니 어딘가에 짐을 내려놓고 쉬고 싶을 때 쉴 수도 없다. 8km 정도씩 되는 지점마다 2시간 사이로 바나 식당에 들러 쉬어가야만 했다. 조금 쉬면서 몸을 녹이고 다시 출발하면 또 다른 8km 정도는 또 힘을 내서 걸을 수 있었다. 지칠 때마다 배낭 앞주머니에 넣어둔 쪽지를 여러 번 다시 꺼내어 읽었다. 그라는 사람이 맺어진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었다. 난 왜 여태 그렇게 할 수 없었는지, 또 그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작은 종이가 빗물에 낡아가고 몇 줄 되지 않는 그 편지의 내용을 모두 외울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는 그냥 그렇게 했음을. 뒤따르는 고민과 생각들은 멈추고, 그냥 그렇게.
마지막으로 들른 Ruitelan에서 카페에 들어섰더니 우유처럼 뽀얀 아기고양이가 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발끈을 풀어 놀아주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지났다. 그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뿌리치고 일어나기가 어려워 몇 번의 신발끈을 풀었다 묶고 있는데, 낯익은 노인이 들어왔다.
순례길 초입부터 마주쳤던 그는, 마주친 곳이 순례길이 아니었더라면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를 행색의 노인이었는데, 말라빠진 몸으로 제 몸집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배낭에 신발과 잡동사니를 주렁주렁 걸어매고는 위태롭게 걸었다. 알베르게에서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서 우리는 그가 밤이 되면 어딘가에서 머물러 가기는하는 것일까 하고 궁금해하곤 했는데 이따금 카페에는 들러가는 모양인가. 그 노인에게선 별로 달갑지 않은 눅눅하고 시척지근한 냄새가 풍겼기에 같은 숙소에 머문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 아니었을 테지만. 그러니만큼 카페에 그가 들어섰을 때부터 고린내가 풍겨 와 하마터면 그의 시야 앞에서 코를 틀어막을 뻔했다.
어차피 일어나려던 차이기도 하고, 공기 중의 습도와 빗물에 젖은 그의 체취가 만나 한층 더 고약해진 터라 급히 일어나 짐을 챙기다가 짧게 적은 일기와 꺼내두었던 쪽지를 보고는 멈추어 섰다. 인연을 대하는 방법에 대하여 고뇌하던 글들이 무색하게도 나는 이렇게 돌아서려 하는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도 용기가 필요해 주춤대는 생각을 멈추고 그에게 다가갔다. 어느 나라 말로 건네야 할지 모르는 인사말이 헷갈려 끝을 흐리고 그의 반응을 살피니 그가 활짝 웃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얼렁뚱땅한 인사말로 물꼬를 튼 나에게 그는 먼저 자신을 '빌'이라고 소개하고는 어디서 왔는지, 이름은 무언지 물어주었다. 내친김에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주는 그의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암으로 부인을 먼저 보내고 함께 오려던 순례길에 혼자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행색이 이 모양 이 꼴이라면서. 누군가 보면 손가락질할 것이 뻔하지만 매기(떠나보낸 부인의 이름인 듯했다.) 없는 자신은 손가락질만 당하면 다행한 일이란다.
"꼭 노숙자 같지?" 그가 묻는다. 아니라고 하기엔 그의 행색이 너무도 형편없고, 맞다고 하기엔 그 책망의 무안을 견딜 수 없어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그가 곧이어 말한다. "나도 알아. 사실 그녀는 나의 집이었지. 난 집을 잃은 것과 다름없다고. 그러니 노숙자로 보일 만도 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여기로 흘러들어온 거야. 흘러 흘러, 흐르고 흘러." 그는 '흘러, 흘러'하는 부분에서 작게 리듬을 만들어 노래를 불렀다. 퀘퀘하기만 했던 그의 체취도 나름대로 구수한 매력이 있나,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도 같았다.
마저 쉬어가겠다는 그를 뒤로하고 길을 나선다. 자칫 지나치려 했던 그와의 인연이 만들어진 순간에, 그와 한 평생을 함께한 인연이었던 매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연이라는 것은 그 크고 작은 덩어리들로 얼마나 많은 의미들을 가지고 있는지. 이 순례길 위에서 난 얼마나 많은 인연과의 헤어짐을 반복할 것인가. 반복과 상실은 그 어울리지 않는 의미들의 이면에서 연결되어 있나. 헤어짐을 반복하면 익숙해질까. 그와 매기를 생각한다. 수 없이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낯설 그 헤어짐 끝에 홀로 남은 사람들.
Las Herrerias부터 산길이 시작됐는데 가히, 길이 정말 진창이었다. 신발이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생전 들어보지 못한 욕을 쏟아냈겠지. 비 때문에 산길 사이에 작은 냇물이 흐르고,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땅이 진흙인지 늪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와중에도 나는 밤을 주워 판초 앞주머니와 배낭 틈 사이를 채웠다. La Laguna에 들어서니 높아지는 고도에 다시금 비가 눈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신발 밑창을 내리 끄는 진흙을 견뎌, 그 사이 길가에 떨어진 밤까지 한아름 주워, 오르막을 오르고 올라 힘에 부쳐 멈추기로 했다.
따듯한 물로 푹 몸을 달구고서 10€의 거금을 내고 저녁을 먹었다. 어제의 과음 탓에 와인은 먹지 말아야겠다 싶었지만 이미 포함되어 있는 무료 와인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래, 해장술이란 것도 있으니까. 옆 테이블에 앉은 팀과 두어 잔씩 나누어 마시고서는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난로 앞에서 발을 말리며 긴 일기를 적는다. 기분 좋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빌은 오늘의 안식처를 찾아 무사히 몸을 뉘었을까. 홀로 누었을 그의 옆에 매기가 함께하기를.
Question 28. 지금쯤의 너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자유롭고 싶었다. 이 질문을 적을 때만 하더라도 왜 나는 항상 남들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는지 자책하고 스스로를 가두는 느낌에 반성하곤 했다. 혼자이고 싶었던 순간들이 많았으니, 그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누군가와의 관계를 피하는 것도 같았다. 인연들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맞겠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착한 아이가 아니라고 손가락질할까 봐? 그들의 생각보다 내가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들통나 버릴까 봐? 그 '시선'이라는 것이 두려운 이유가 나의 날 서고 섣부른 판단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그런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들 때문에 두려운 거라면, 나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오해와는 달리 다른 이들의 시선은 대부분 따스하며, 자애롭고, 너그럽다. '타인의 시선'을 가로선으로 죽 긋고는 '내가 스스로 만든 벽'이라고 질문을 고쳐 쓴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과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대답한다. 물고기는 바닷속에 살아야 하고, 새는 파란 하늘을 활공하며 살아야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