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29. 어떤날의 모험, 어떤날의 순례
어설프니 청춘이지 않겠냐. 뭐든 어설프니 그렇게 시퍼렇게 둥둥 뜬 가슴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2019.11.11 (08:00) La Laguna - Triacastela (16:00) (23km)
간 밤에 숙소를 함께한 Tim과 길을 함께 나섰다. 아일랜드에서 온 Tim은 나보다 네 다섯살이나 한참을 어린데도 덥수룩히 덮힌 주황빛 수염 때문인지 나보다 곱절은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끊이지 않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그가 토크쇼의 MC같기도 했고 끊임없이 주제를 뱉어내는 자판기 같기도 했다. 게다가 Tim은 그야말로 투머치토커여서, 내가 한 마디 했다치면 백 마디로 받아치는 텐션의 소유자였다.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인지, 혹은 나와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해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지만 좌우지간 그의 말은 다른 이들보다 1.5배는 더 빨랐고 많은 어휘를 담고 있었으며 그 모든 대화가 영어였다는 점에서 (내 미약한 영어로는 대화의 겨우 40%만 어거지로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우리의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더라면 그건 그의 착각이었으리라. 그렇기에 부끄럽게도 버거운 대화였으나 그 때는 어쩌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에겐 적잖은 인내심이 필요했을 터인데 나와의 소통에 최선을 다해준 것을 그깟 학습의 장으로 삼다니, 면목 없다. 사실 그 외에도 그는 충분히 사려깊고 배려심 많은 친구였기에 동행자로서 또한 손색이 없었다.
함께 길을 나서고 아침식사를 하려 했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었기에 식당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잠시 그 앞에 서서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조금 더 갈까?' 물었고 다른 누군가가 흔쾌히 그러자 답했다. 아침 식사만 함께 하려던 참이었는데 그 길로 하루를 동행하게 된 셈이다. 아침안개가 자욱한 산길이었고 비도 오고 바람도 불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시간도 금방이었다. 1시간 조금 더 걸어 O cebreiro에 도착하고서 바에 들러 토스트와 커피를 먹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Tim은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것을 잘 했다.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으면 벌써 다른 이야기를 끌어 와 와르르 쏟아놓았다. 그 덕에 정신이 폭풍같은 담화의 장으로 빨려 들어갔고 실로 몸을 부딪히며 지나는 거센 바람은 신경 쓸 여력도 없어서였는지 금새 Triacastela에 도착했다.
Tim은 Triacastela에서 멈춰간다고 했다. 나는 본래 Sarria까지 가려고 계획했으나, 그렇게 되면 아무리 평지길이 이어진대도 거의 40km를 육박하는 거리다. 주제도 모르고 포부만 앞세워 세운 계획이었으리라. 도저히 말도 안되는 거리기도 하거니와 배가 너무도 고팠고, 다음 마을엔 슈퍼마켓도 없다. Tim이 같은 숙소에서 묵게되면 저녁으로 아일랜드 시골 할머니 표 까르보나라를 해준다 하기에, 옳다구나 하고 배낭 안에 고히 아껴둔 핵불닭볶음면을 떠올리며 그럼 나는 한국의 매운맛을 보여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국 전통의 매운맛, 아니 사실 '전통'까지는 아니지만 여하간 한국 사람이라면 이 정도 매운 맛은 다 먹을 줄 안다고, 난 괜찮지만 '넌' 정말 괜찮겠냐며 수어번을 되묻고 매운 맛에 단련된 한국인의 혓바닥을 은근히 교만하게 앞세우면서.
서로 으스대던 저녁상을 차려놓곤 긴 이야기를 나눴다. Tim은 하루 종일 멈추지 않던 이야기의 가락을 붙잡다 우리의 젊음까지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여행은 어찌보면 방황이며 그 방황은 젊은 날에 누구나 작전 혹은 숙명처럼 겪어야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여행을 다른 말로 일컫자면 너른 바다 위의 표류이며 그렇기에 탐험이고, 그 너른 삶을 관광(sightseeing)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청춘은 그 살아있음의 모험. 유랑, 어떤날의 일주, 소풍. 어느 정도껏은 고통스럽고 괴롭기에 그 것을 우리는 순례길이라 하는 지도 모른다고.
그 후로 잠에 들기 전까지 우린 청춘이라는 이야기를 매듭짓지 못했다. 응당 그럴 주제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젊은 날의 고민에 대해 덮수룩히 덮힌 수염처럼 많은 고민들을 하며 지내는 듯 싶었다. 그가 이렇게 물었다. "삶의 막바지에 이렇게 불타듯 젊은 날이 있어야 할 것 같지 않아? 삶의 미련이 없도록 말야." 응당 그럴 것도 같았다. 그는 청춘이라는 게 너무도 어설퍼서 가끔은 화가 난다고 했다. 그렇잖아, 시퍼렇게 주름하나 없이 살아있는 젊은 시간동안 우리는 무얼 고민하느냔 말야. 기껏해야 내일 애인과 뭐하지, 난 뭐하고 살지, 뭐 먹고 살지, 복권이라도 당첨됐으면 좋겠다, 그런 고민들만 잔뜩 버무려지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지. 라며 울분을 토하는 그를 가만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설프니 청춘이지 않겠냐. 뭐든 어설프니 그렇게 시퍼렇게 둥둥 뜬 가슴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또 내심 한켠으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젊은이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는 고민들로 살아간다니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핵'불닭볶음면은 나로써도 처음이었고 매운거 깨나 먹는다고 자부했던 나조차도 혀가 아려올만큼 매운 맛이었다. 한국인이라면 으레 이정도는 꼬맹이 때 부터도 먹는다며 어줍잖은 자랑질을 하던 자존심이 무색하게도 눈가가 울멍거리며 달아오르는 맛이었는데, Tim은 불닭볶음면의 맛이 한국인의 정서라도 되는 양, 한 입 먹고는 맵단 말도 못하고 목 위로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를 숨기지도 못한 채 고장난 로봇처럼 맛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의 포크는 세 번 이상 나의 불닭볶음면 위로 가 닿질 않았지만. 야, 가끔 그렇게 눈물나게 매운게 청춘이야 임마.
앞으로 산티아고까지 140km정도 남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 했던가, 모르는 사이 스페인어도 많이 늘었고 영어도 보다 편해졌다. 그 사이 살도 좀 빠졌더라면 좋을텐데. 오늘은 이 큰 알베르게에 Tim과 나 뿐이다. Tim이 오늘 나눈 이야기에 때아닌 감명을 받아 깊은 고심에 빠지면 그의 이야기 자판기가 잠시 멈추려나. 깊은 잠이 필요하다. 어둔 밤이 지나면 또 우리는 청춘을 닮은 순례길 위를 걷고 지나며 뒤에 두고 떠나야 하니까. 이처럼 어둡고 깊은 새벽을 지나고 있는 청춘들에게도 'Buen Camino'처럼 만사 잘 될거라는 주문이 있으면 좋으련만.
Question 29. 어떤 순간이 제일 행복해?
하루의 길 끝에서 마지막 발을 내딛고 알베르게에 들어와 짐을 풀고 따듯한 물에 몸을 녹일 때. 개운한 몸으로 궁금한 눈과 입을 헤아려 슈퍼를 구경할 때. 주린 배를 맛있는 음식으로 채울 때. 달고 떫은 와인 한 잔에 불콰한 술기운이 오를 때. 푸근히 달궈진 몸을 침대에 파묻고 뻐근한 몸을 널부러트릴 때. '제일'행복한 순간을 단 하나만 꼽자면 그저 이 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야할까. 이곳은 걸핏하면 행복할 수 있는 참 단순한 곳이다. 많은 것을 바라기 보다는 소소한 것으로 충분한 행복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라고 적었던 지난날의 일기를 받아 적기에 오래 걸렸다. 길게 고민도 않고 생각나는대로 적었는지 글씨가 가라앉지 않고 종이 표면에 날려있다. 이토록 작고 부족하며 연하고 지워질 듯 아슬한 순간에도 행복할 수 있었던 나라는 사람은 같은데 지금의 나는 충분히 행복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나. 그 날에 Tim과 나누었던 대화속에 흔들리고 겨우 간신했던 청춘에 오히려 세상을 더 사랑할 수 있지는 않았나. 요즘 사람들은 행복 별거 없다고 한다. 많이 하기도 듣기도 하는 말이다. 정말 별거 없나. 우리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사실은 모두 유별난 하루이며 대단한 '별것'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