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31. 고통은 삶의 또 다른 이름이므로
환희뿐 아니라 비애도 자연으로부터 왔다,
그렇기에 고통은 삶의 또 다른 이름이므로.
2019.11.13 (08:30) Sarria - Protomarin (15:30) (22km)
새벽 내 화끈거리는 목 때문에 침도 제대로 넘길 수가 없었다. 어스름히 몰려오는 졸음 사이로 크고 작은 종소리가 들렸다. 얇고 앙칼진 종소리는 머리를 어찔하게 만들었고 도독하니 우리우리한 종소리는 마음을 축 젖은 빨래처럼 가라앉게 만들었다. 온몸의 피부 아래가 텅 비어버린 것처럼 그 구멍으로 온 생이 콸콸 쏟아지는 듯했다. 열기운에 뜨겁게 달궈진 베개 위로 얼굴을 파묻으니 돌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으나 울지는 않았다. 괜한 눈물치레로 다른 이들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도 그랬지만 바로 밑 침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위안이 된 덕이었다. 사그락거리는 침낭소리, 쌕쌕거리는 숨소리.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살아있는 소리들. 그러고 보면 그렇기에 우린 항상 누군가와 함께이진 않으려나. 외톨이로 살기에 세상은 너무 조용하고 새벽은 너무 어두우니까.
병원에 가야 할까 싶었지만 어찌어찌 까무룩 잠에 들어 한숨 돌리고 나니 기력이 도는 듯도 싶었다.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도 않았고 뭣보다 괜한 잔병으로 약봉지를 주렁주렁 들고는 병자 행색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실비아는 발목뼈가 부러져도 걸었고 서퍼맨은 제 몸보다 큰 서핑 보드를 등에 지고서도 걷지 않았는가. 물집과의 사투로 양말이 피와 고름에 축축하게 젖어있는 이들도 내색 한 번을 않고 웃는 얼굴이질 않았는가. 나약하지 말자, 약해지지 말자 싶었다. 그들 만큼은 강하고 싶다, 단단하고 싶다, 뭐 그런 생각.
오늘의 길은 22km로 작은 마을들을 잇는 길게 난 숲길과 들판을 향해 나있다. 언덕과 구릉을 따라 걸어야 하는 만큼 Sarria를 나서자마자 고즈넉한 산길이 시작됐다. 모처럼 비가 내리지 않아 판초를 접어 둘둘 말아 넣어놓고는 걷는 발걸음이 기분 좋았다. 한껏 이슬을 머금은 산길의 향을 따라 걷고 또 걷다가 가까운 마을에서 풍겨오는 푸근한 음식 냄새를 맡았다. 빵 굽는 냄새인지 콩을 끓이는 냄새인지 잔뜩 고소한 냄새에 취해 짐을 냅다 풀어놓고는 기껏해야 토스타다와 커피를 시켜 먹었다. 그 무슨 냄새인지 물어나 보고 맛이라도 볼걸, 여하간 내 머릿속에는 토스타다 생각뿐이었는지. 그래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워 버렸으니, 아쉽다고 말할 면목이 없다.
길을 걷다 M을 만났다. (혹여나 나와 함께 순례길을 걸은 누군가가 예측할 수 있을까 싶어 약칭으로 적는다, 그녀의 이야기가 공공연히 밝혀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약칭을 초안으로 하여 그녀의 검토 끝에 허가가 떨어진다면 추후 본명으로 고쳐 적도록 하겠다.) 몇 번을 스쳐 지나며 만났던 M은 연방 화사한 얼굴에 장난기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녀는 말끝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오묘하게 올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 탓에 생긋한 얼굴과 더 잘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졌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누군가 무슨 말을 하던지 '정말요?'라든가 '그랬겠어요'라든가 '너무 웃겨요' 같은, 얼핏 들으면 시시해 보이는 반응들을 영혼을 담아 해주는 것이 그녀의 귀여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는데 그런 것들이 꼭 상대방을 응원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는 것 같기도 하다가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그녀의 뼈대 굵은 경력이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듣고는 단박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렴.
누군가와 나란히, 혹은 앞뒤로 걷노라면 목소리가 들릴 정도의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간간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녀는 자신의 걸음이 느리니 신경 쓰지 말라고 열댓 번을 강조했기에 아, 조금 멀리 떨어져 걷고 싶은가 보다 싶어 널찍한 거리를 유지했다. 해서 서로의 시야에는 서로가 있었으나 대화는 없었으므로 함께 침묵하며 걸었다. 거리 덕분인지 초초하지도 답답하지도 않은 침묵에서 편하게 주고받는 대화를 능가하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다음 마을까지 함께 걷다가 잠시 거리가 좁혀졌을 때 즈음 그녀가 말했다. 사실은 오래전 난소암 때문에 한쪽 난소를 들어냈고, 그때 주변에 위치하던 림프절까지 모두 제거하는 바람에 한쪽 다리가 코끼리처럼 부어오르곤 한다고. 그러니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어 이해해 달라며 덤덤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끝이 여느 때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는 슬프거나 탓하지 않고 웃고 있다. '의사 선생님이 산티아고 순례길 간다고 하니까 미쳤다고 했어요. 절대 가지 말라고요. 그래도 간다고 했어요. 두 번째 사는 삶인데 하고 싶은 거 해야죠.'
죽음을 이겨낸 사람의 눈빛이 저리도 의연한가, 그녀는 말에 덧붙혀 이런저런 취미가 생겼다고 했다. '나 스쿠버 다이빙도 배웠어요. 지구의 절반 이상이 바다잖아요. 하나님이 만든 세상 중에 절반 이상이 바단데. 이 세상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 바닷속은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아, 그녀가 죽음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죽음이 도망간 것이로구나. 그녀를 데려가기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빛나는 눈이 너무도 눈부시니까. 감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난 그녀만큼 죽음과 가까운 병에 다가갔던 적 없으니까. 한낱 지나가는 감기로 베개를 적시려던 지난밤이 부끄러워 자꾸만 고개를 숙였다.
그녀와 함께 걸으며 잘 여문 무화과와 사과를 따먹고, 사진도 찍고 고즈넉한 시골길도 즐겼다. 어느새 다다른 Protomarin에서 동키서비스를 이용한 M은 짐을 찾으러 지정된 구역으로 가야 하기에 내일 만나자며 작별 인사를 하고는 헤어졌고 나는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 신라면 한 봉지를 샀다. 찾아두었던 알베르게에 들어와 따듯한 물로 몸을 조금 삶아(?) 낸 후에 저녁을 해 먹으려 식당으로 내려가니 이미 익숙한 얼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순례길은 매일 낯선 곳에서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곳. 프랑스에서 온 로제가 계란을 넣어 만든 까르보나라를 기막히게 볶아왔고, 나는 뜨거운 물을 팔팔 끓여 괜히 수프를 있어 보이게 탁, 탁 털어 라면을 만들어냈다. 함께 나눠먹는 하얗고 빨간 저녁상을 말끔히 비우고 나서 침대에 올랐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약기운에 어른거리던 졸음이 번뜩 스쳐가고 눈을 뜨니 아직 사람들이 어수선한 것이 늦은 저녁은 아니겠구나, 아, 이곳은 Polvo(문어를 부드럽게 삶은 후 얇게 썰어 감자 위에 올리고 올리브 오일, 굵은소금, 파프리카 가루를 뿌려 만든다)가 유명한 곳이라는데, 그걸 먹어야 되는데, 그 일념 하나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식당으로 나왔다. 든든히 먹은 저녁 덕분에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았지만 갈리시아 지방에서 유명하다는 제대로 된 Polvo 요리를 먹어보고 싶었다. 순례자의 주머니 사정엔 어울리지 않는 12€의 거금이었지만 감기 기운에 투둑 하니 걸쳐있는 찌뿌둥한 기운을 날려보고도 싶었고 스페인에서 할 수 있는 몸보신으로 화끈하게 몸을 데우고도 싶었다. 와인과 함께 마시며 의도대로 따듯하게 달궈진 손바닥으로 오랫동안 일기를 적었다.
막상 맛을 보니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걸쭉한 초장에 고추냉이를 한껏 풀어 찍어먹고 싶기만 했으므로 우연찮게 옆자리에 앉은 로제에게 나누어 주었다. 본래 탄산음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속을 뒤덮은 올리브유의 늑진한 맛에 식당을 나서자마자 콜라 한 잔을 모두 비웠다. 그래도 느끼함이 가시질 않아 알베르게에 있는 음료수 자판기에서 오렌지 주스를 먹으려는데 자판기가 1유로를 먹어놓고는 주스를 채 뱉어내기도 전에 멈춰버렸다. 이봐, 내 오렌지주스 내놓으라고. 자판기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팀과 마크, 마이크가 와서 무슨 일이냐 묻는다. 자초지종 상황을 설명하니 팀은 자판기를 설득하기 시작했고 (자판기와도 대화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나) 오랜 대화를 걸친 끝에 해결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우리 뒤를 따라 숙소로 들어왔고 긴 대화 끝에 깊은 잠을 잤다.
Question 31. 2층 침대의 1층이 좋아? 2층이 좋아?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1층을 선호한다. 오르고 내리지 않아 접근성도 용이한 데다, 순례자들은 하루 종일 걸어야 하기 때문에 대체로 발목이나 무릎 따위가 쑤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다리를 오르내려야 하는 작은 충격에도 부담이 되는 것이 그 이유다. 손이 닿는 곳에 짐을 두고 필요할 때마다 무언가를 찾아 꺼내거나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한몫한다. 공교롭게도 이런 장점으로 모두의 선호 대상이 되어버린 1층침대보다 난 2층이 훨씬 좋다. 누군가 불쑥 고개를 밀어 넣고 쳐다볼 일도 없고, 무방비하게 딱 벌어진 잠든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켜버릴까 마음 쓸 일도 없으며, 내 위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육중한 몸이 간밤에 내 위로 떨어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긴 그런 일련의 것들보다 단순히 뻥 뚫려있는 시야가 난 좋다. 천장을 보며 잠에 들 수 있으니 마음도 편하다. 마음껏 손을 모아 기도하다가 잠에 들 수 있고, 무방비한 자세로 잠에서 깰 수 있다. 왜 이런 것들이 난 궁금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을 때 1층 침대와 2층 침대의 선호도가 어떤 역할을 하길래. 별거 아닌 질문이 우습다. 우스우니 귀엽고 또 귀여우니 나답기도 하다. 그냥 난 남아있는 침대가 좋아. 뭐든 좋아. 하룻밤 잠을 지샐 수 있다면 그걸로 다행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