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에게

story 32. 미안하지만 그렇게 됐다

by JJ
조금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그래도 어때, 이 정도면 잘 컸잖아.

2019.11.14 (08:30) Protomarin - Palas de Rei (16:40) (25km)


아침부터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 추워진 날씨에 비마저 내리니 판초를 뒤집어쓰고 다음 발걸음으로 시선을 옮기며 멍하니 걷기만 하다가 문득, 코 끝을 스치는 공기의 냄새가 어린 시절 뛰어놀던 놀이터에서의 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습도로 가득 찬 흙과 풀의 냄새.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죄다 불러들이는 냄새. 손 끝이 새카맣게 물들 때까지 놀다가 해가 눅을 때 즈음 멀리서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는 달음박질로 집으로 돌아가던 날의 추억을 닮은 냄새. 그때의 10살짜리 꼬마인 나와 함께 걷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다른 여자 아이들보다 조금 더 작으나 딱 그만큼 더 앙칼진, 쪽 째진 눈에 앞니는 하나 어디 가고 없는. 꼭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어른이 되면 뭘 좀 알게 될 줄 알았더니, 아직 제 자신 하나도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몰라서 세상 반대편을 헤매고 있는 거냐고. 미안하지만 그렇게 됐다. 고깟 네가 비아냥대면 어쩔 거야.

Protomarin을 나서던 길

어렸을 때부터 난 말괄량이였다. 얌전이라 하면 내가 가질 수 없던 유일한 덕목이었고 밖으로 나돌며 뛰어놀길 좋아했기에 많이도 다쳤으며 그럴 때마다 후회를 하거나 반성을 하기는커녕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찢어지고 터진 상처를 가지고도 약초놀이를 한다고 들풀을 짓이겨 상처에 바르고 덧나고 고름을 달고 다니며도 놀았다. 치마를 제일 싫어했다. 쓸데없이 달린 꽃무늬 프릴이라 하면 말할 것도 없었고. 한때는 엄마가 그런 나에게 예쁜 원피스 한 번 입혀보는 게 소원인 적도 있었다. 한 번 입고 나가면 간식이나 용돈을 주겠다며 온갖 회유를 해보기도 했지만 순간뿐이었고 겨우 입힌 꼬까옷도 한 번 입고 나갔다 올 때면 놀이터 흙물이 들어 꾀죄죄 해지거나 현관문을 들어오기가 무섭게 훌렁훌렁 벗어 허물처럼 남겨두곤 했더랬다. 까끌한 느낌이 싫었고 쓸데없이 치렁치렁한 것도 싫었다.


누가 그렇게 크라고 한 적도 없는데 희석되지 않는 고집 센 성격은 곧이곧대로 자랐다. 밖을 좋아하니 피부는 새카맣게 그을렸고 몸의 근육들은 어린 여자애가 가질 수 있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어렸을 땐 그게 그렇게 싫었다. 어째서인지 우악스럽고 사나운 것만 같은 말투도 별로였고 맹랑한 목소리도 맘에 들지 않았다. 사춘기 시절엔 길고 곱게 뻗은 다른 여자애들의 매끄러운 종아리가 부러웠고 땅딸막한 손과 다리는 계속해서 움츠러들었다. 생겨먹은 대로 살아야지, 뼈대는 어쩔 수 없으니 별다른 돌파구가 없었던 나는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살았다.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같다. 나는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Portomarín을 지나 언덕을 따라 나 있는 오늘의 길

생각해 보면 우린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질 않는가. 대화를 나눈다. 한 주간의 날씨나 오늘 아침에 마신 커피의 맛 같은 시시콜콜한 것들부터 취미 혹은 가정사 같은 지극히도 개인적인 이야기, 때로는 경제, 정치, 문화, 예술 같은 사회 분야도 종종 어렵지 않게 주제에 오른다. 우리는 알고 싶은 누군가에게 묻고 대답한다. 때로는 걱정하고 속삭이고 요청하고 반문하고 다그치고 설명한다. 또 가만히 살펴보기도 한다. 나누고 싶은 어떠한 경험이나 감정들을. 하물며 스쳐가는 남들과도 시도 때도 없이 목소리와 눈빛들을 나누는데, 가만 보면 나 자신과는 그런 적 있던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채 허공만 둥둥 맴도는 생각이나 상상 말고, 돌덩이처럼 꿰차고 있어서 매일 조금씩 핥아 없애야 하는 고민 같은 것들 말고. 사람대 사람으로서 대화를 나누고 살펴보았던 적이.

비 오는 길 너머 피어오른 무지개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또 어떤 것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떠나온 여행인 만큼 나와의 대화가 절실했기에 홀로 걷노라면 스스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을 때도 있었고 옆에 여러 시절들의 나를 상상하며 세워두고는 혼잣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 사이 난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었으며 어떠한 것들을 알게 되었을까. 오늘 같은 날에는 앞니 빠진 어린 여자아이와 걸어야 했으므로 가로로 길게 난 눈매 아래 바둑알 같은 까만 눈동자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그것들을 빛나게 할 수 있는 순간들은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한 것 같다. 조금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그래도 어때. 잘 좀 봐봐,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잘 큰 것 같지 않냐? 그러니까 퉁쳐.


대화에 생각을 집중하고 싶었지만 비와 우박이 번갈아 내리는 너무도 추운 날씨였다. 스틱을 잡은 손이 차갑게 얼어 그대로 굳어버렸다. 쥐었다 피기에도 힘든 지경이 되어서 오늘만이라도 차를 얻어 타고 가야 하나, 내일 비가 그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하고 수없이 고민했지만 내일 비가 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주변에 있던 순례자들과 함께 눈빛을 주고받으며 걷다 보니 시간은 흘렀다. 그래, 멈추지 않으면 언젠간 가 닿게 되겠지. 함께 걷던 상상 속 10살짜리 꼬마아이는 걷는 동안 자라고 자라 중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되었다가 길가에 떨어진 작은 알밤들을 주울 때 즈음 사라져 버렸다.

비 오는 숲을 따라 걷는 길

밤을 가득 주워 판초 앞주머니에 담으며 걷다 보니 마을에 거의 도착한 참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따듯한 물로 씻고 비와 땀에 젖은 옷가지들을 빨아 널었다. 아, 이걸 하루종일 얼마나 고대했던지. 저녁거리를 사러 나갔다가 시장이 욕심만 불러 혼자서 12€어치 장을 봤다. 오자마자 빵을 한 봉지 뜯어 먹어치우고는 닭고기를 삶아 먹으려는데 바로 뒷 테이블에서 한국인 무리가 비빔밥을 기가 막히게 비벼놓고는 도대체 어디서 났는지 모를 참기름까지 뿌려 꼬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남의 음식 쳐다보지 않는 거라 배웠고 상너머를 훔쳐보며 츱츱하게 굴고 싶지 않아 눈빛을 거둔다고 거뒀는데 숨겨지지 않는 먹성에 티가 난 모양이었는지 그쪽에서 먼저 비빔밥을 크게 한 국자 떠서 내밀어주었다.


'한국분이시죠? 비빔밥 좀 드세요. 참기름도 넣었어요.' 그러게요, 안 그래도 냄새가 너무 좋더라구요, 맛있겠어요, 잘 먹겠습니다, 마음을 길게도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는 겨우 감사합니다, 하고 한 마디만 새어 나왔다. 시시하게. 벌그죽죽한 나의 삶은 닭고기를 건넨다. 음식을 나눠먹고는 오는 길에 주웠던 밤을 함께 구워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국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밤을 한아름씩 주워왔다. 나도 깨나 주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은 자신의 보조배낭 하나를 밤으로 가득 채웠다. 까먹고 벗겨진 밤 껍질들을 한데 모아 쌓아 올린 밤껍질이 꼭 불암산 중턱에나 있을 법한 소원을 쌓은 돌탑처럼 보였다.


아, 어제가 지나갔듯 오늘도 지나가겠지. 리셉션 옆에 앉아 간식 자판기 조명을 의지하며 일기를 적는다. 이 순간도 모두 지나가겠지. 생장을 떠나왔던 날처럼 산티아고에 곧 도착할 테고, 또다시 산티아고를 떠나갈 테고, 언젠간 이 길 끝에 도착하겠지. 오랜 시간이 지나면 떠나왔던 모든 날의 기억도 흐려질 것이고 감동도 사그라들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난다고 하더라도. 내가 견뎌낸 모든 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벅차고 싶다. 난 그 모든 것들을 견뎌냈고 모든 순간들에 최선을 다했으며 모든 이들과 함께 행복했다고. 또 어느 날엔가 혹시 모르지, 순례길 위에 있었던 날 옆에 세워두고 대화를 나눌 날들이 올 지도.


Question 32. 어떤 흔적들이 남을까?

지나오며 남겨놓은 나의 얼룩과 냄새, 흔적들은 모조리 소독될 것이다. 씻기고 닦이고 사라지겠지. 난 잠시 살다 갈 뿐인 여행자니까. 내가 걸어오며 남겼던 발자국들은 바람에 날려 흩어질 것이고 흘린 땀들은 비에 씻겨 길 위에조차 나의 흔적들은 남지 않겠지만. 어딘가에 나의 흔적들이 남는다면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의 기억 속이려나. 내 일기장에 한 줄 한 줄 적혀질 그날의 기억과 감정들이려나. 또 누군가의 흔적이 남는다면 나의 기억들 속에 걸음과 식사와 술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길의 흔적이 남는다면 지나오며 마주쳤던 풍경과 그날의 날씨와 냄새가, 또 발등 위에 새겨 넣을 카미노 심볼의 타투가 남아 있으려나. 어떤 의미로든 크게 남아있을 흔적들이겠다. 내 젊은 날에 최선을 다했던 35일간의 기록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