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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말없이 걸었다

<유명가수전> 4회

by 뮌헨의 마리


최고의 힐링은 뭐니 뭐니 해도 나 홀로 산책이었다. 한가로운 금요일 오후였다. 마지막 산책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소중했다. 산책 중의 최고는 홀로 걷는 산책일 것이다. 오후의 시간을 산책에 올인했다.



2021. 4. 23. 마지막 오후의 산책. 이 날을 기억하려 한다.



한국에 와서 힐링이 되었던 건 아메리카노. 아아는 아니고. 싫어서가 아니다.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못 마셔서. 아메리카노는 뜨거워야지. 내겐 그렇다. 한겨울의 아아 마니아들이 그렇듯 나 역시 한여름 시원한 카페에 앉아 마시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죽도록 사랑한다. 그 좋아하던 아메리카노를 오래도록 못 마시고 살았다. 독일에선 카푸치노를 마셨다. 암이 생긴 후엔 끊었지만. 누가 그러라고 한 건 아니었다. 내 삶의 방식이 다 잘못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한국에 와서도 참았다. 왜 참지. 그렇게 마시고 싶었던 것을. 친구의 아메리카노를 몇 번 얻어마시다 한 잔을 다 마신 이 있다. 행복하다는 말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거겠지.


샤부의 세계에 입문한 것도 잘한 일이다. 예전에도 샤부를 먹지 않은 건 아니다. 딱히 좋아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먹고 싶었다. 고기이면서 고기가 주가 아닌 메뉴를 찾다 보니 샤부만 한 게 없었다. 고기 냄새도 안 나고 얇아서 더욱 좋았다. 익힌 야채를 곁들이니 금상첨화. 야채와 소고기로 우린 뜨거운 육수는 말해 무엇하랴. 싱싱한 야채를 무한 리필해 주는 우리의 관대한 음식 문화라니. 대체 불가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돌아서면 당장 그리울 것 같다. 나의 샤부.


최고의 힐링은 뭐니 뭐니 해도 나 홀로 산책이었다. 한가로운 금요일 오후였다. 마지막 산책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소중했다. 산책 중의 최고는 홀로 걷는 산책일 것이다. 오후의 시간을 산책에 올인했다. 누구의 방해도 없었다. 마음대로 걷다가 마음대로 멈추었다. 내키는 대로 사진도 찍었다. 말도 필요 없었다. 평소라면 오글거리던 셀카도 찍었다. 이 순간을 기억해 두고 싶어서. 지인들에게도 보냈다. 저 모습으로 기억해 주었으면 싶어서. 건강한 얼굴을 보면 걱정도 줄지 않을까 싶어서. 무리하게 공원의 꽃들을 접수한 이유였다. 해가 없고 구름이 낀 날이었다. 이런 날도 좋아한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해진다. 사진도 잘 나왔다. 솔직히 새 폰 덕분이지만 일부러 밝힐 생각은 없다.



저 벤치, 저 길들, 저 꽃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저녁에는 <유명가수전> 보았다. <싱어게인> 다시 보기와 함께 나를 힐링시킨 프로다. 김범수가 나온다고 해서 이번 주를 손꼽아 기다렸다. 김범수를 정말 사랑한다. 그의 노래로 버틴 시간들이 많기 때문이다. 출산 때문에 귀국한 후 <나가수>에서 김범수를 만났다. 노래와 춤과 끼와 재치와 팬들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까지 두루 갖춘 김범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면 외모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아시잖나. 그 외모까지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관리한 군살 없는 몸매도 멋지다. 군살은 팬들의 몫. 프로다워서 좋다. 어제도 김범수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후두염으로 20주년 콘서트를 취소하고 작년에 안식년을 가졌다는 건 어제 알았지만.


12회 중 네 번을 봤으니 나쁘지 않다. 김범수를 보고 나니 미련이 남지 않는다. 남은 건 내년에 와서 다시 면 되니까. 어제 내가 감동한 포인트는 김범수가 준비한 차. 정홍일에게 즉석에서 선보인 홈트레이닝. 이승윤에게 전수한 목 풀기 비법. 특히 갓 무명을 벗은 이승윤에게 자신의 노래 편곡을 맡긴 것.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옷을 입은 자신의 노래를 이승윤과 듀엣으로 부르며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솔직히 상태도 노래도 예전만은 못했다. 그래도 좋았다. 언제나 최상의 상태일 수는 없지. 늘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도 없고. 찐 팬으로서 그의 노래를 오래 듣고 싶다. 레전드의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오늘의 미션은 코로나 테스트. 아침 9시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택시보다 안전한 지하철과 공항철도를 이용했다. 1시간 30분이 걸렸다. 내가 받을 테스트는 PCR 테스트. 비용은 13만 원 정도. 오전 11시에 테스트를 마쳤고, 결과지는 오후 4시 30분까지 기다려야 한다. 인천공항 제2 터미널(지하 1층). 한식당도 있고 파리 크루아상도 있었다. 나의 파리 크루아상. 오랜만에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내일이면 한국을 떠날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정말 정말 맛있었다! J언니도 왔다. 저 아래 사진의 한식집에서 우리는 같이 점심을 먹을 것이다. 사랑받는 걸 피곤해하면 안 되지. 앞뒤 안 재고 달려오는 사람을 막을 길은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사랑은 쟁취하는 자의 몫이라서.



2021. 4. 24. 인천공항 제2 터미널(지하 1층). 여기서 코로나 테스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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