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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귀국 보고서

다시 뮌헨의 일상으로

by 뮌헨의 마리
귀국 다음날 독일의 아침 식사는 브렛첼.



귀국


9월 초 토요일 아침 인천을 출발. 토요일 현지 시각 오후 5시에 뮌헨에 도착했다. 인천에 살고 있는 대학 동기 M이 차로 서울까지 와서 나와 아이를 공항으로 태워주었다. 부산의 C와 인천의 M. 둘 다 막역한 대학 남자 동기들이다. 이 나이까지 착한 남자 동기들이 있다는 건 누가 뭐래도 전생에 내가 지은 복이 꽤 된다는 뜻이라고 우기고 싶다. 가족들과는 집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공항까지 따라 나와봐야 차 한 잔 나눌 시간 여유도 없고, 공항에서 가족들과 이별하면 마음이 안 좋아서다. 이상도 하지, 친구들과는 웃으며 손을 흔들 수 있는데 가족들은 그게 안 된다.


도착 다음날 아침 남편이 차려준 아침 식사로 브렛첼을 보며 독일에 왔음을 실감했다. 그 와중에 브렛첼은 왜 맛있던 건지. 한국에서 지나치게 찬 음료와 매운 음식으로 거북했던 속이 인천공항 파리 바게트에서 먹은 따듯한 샌드위치 하나로 거북함이 사라지고, 다음날 독일의 브렛첼 하나로 싹 정리되는 게 더 슬펐다. 나, 벌써 독일 사람 다 된 건가 싶어서. 독일살이 겨우 5년 차에.



다시 오른 테게른제 노이로이트 산을 내려오며 바라본 호수.



출근


출근은 도착 이틀 후다. 8월에 출근을 시작했던 새 직원이 그만두어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 했다. 첫 주는람이 없어서 주 4일 근무를 했가를 마치고 난 직후라서 피곤했다. 급한 사람이 우물 판다지 않나. 불교 모임에서 만난 친구에게 SOS를 했다. 마침 친구도 알바 자리를 찾고 있서 타이밍이 좋았다. 둘째 주는 친구에게 일을 알려주려 다시 주 4일 근무를 했다. 책임감 있고 성실한 인상 꼼꼼고 눈썰미도 있는 것 같고 머리까지 좋아서 일은 금방 파악할 것 같았다. 틀 같이 근무했는데 손발이 척척 맞는 느낌랄까? 아니다. 기대가 크면 부담을 가질 수 있으니 이쯤에서 그만하자. 내가 바라는 건 오래가는 것이니까. 어떤 사람을 좋은 친구로 좋은 동료로 만난다는 건 무엇보다 기분 좋은 일이다.


생각해 보니 친구가 와서 좋은 건 병원 정기 검사 등 급한 일이 생겨도 가게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 것 같다는 것. 친구와 근무일을 바꾸면 되니까. 거기다 친구도 나도 김나지움 다니는 아이가 하나씩 있어서 학기 중 방학 때도 서로 일정을 조정해서 휴가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장점이다. 이래저래 믿을 만한 친구가 와서 든든하다. 교차 근무라 함께 근무할 기회 많지 않다 건 아쉽지만.



이자르 강변의 로젠 가르텐에서 시작하는 맨발 걷기 길.



맨발 걷기와 등산


뮌헨에서도 맨발 걷기를 시작했다. 독일에 오자마자 이곳저곳 장소를 바꿔가면서 시도를 해봤다. 지금까지 로젠 가르텐에서 몇 번 걷고, 이자르 강변 산책로에서도 걸었다. 발바닥이 아파서 양말을 신고 걷다가 숲 속 공원 놀이터의 고운 모래밭에서는 양말을 벗고 걷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산책을 갈 때마다 땅바닥을 자세히 살피는 게 습관이 되었다. 어디가 맨발 걷기로 가장 적합할까 고민면서. 당분간은 로젠 가르텐에서 걸을 것 같다. 처음 맨발 걷기를 하던 날 어떤 독일 할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걷기 명상을 하는 건가요?" 얼떨결에 네, 라고 대답을 하면서 속으로는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나, 적어도 미친 여자로 보지는 않겠구나 어서.


돌아오자마자 등산도 새로 시작했다. 목표는 1주일에 두 번. 평일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남편과 아이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어 가능했다. 장소는 변함없이 테게른제 노이로이트 산장. 적당한 경사길이 있고, 등산객이 많고, 오르고 내리는데 3시간이면 충분하다. 뮌헨 중앙역에서 테게른제역까지 기차로 1시간. 교통 시간 왕복 두 시간에 반나절이면 거뜬하게 등산을 다녀오고 남는다. 그것도 뮌헨에서! 산이 없는 독일에서 기적 같은 일이다. 사방이 산인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이 안 가시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독일엔 남쪽을 빼면 산이 없다. 국토가 거의 평지. 그럼 좋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에겐 산이 필요하다. 대신 독일에는 빽빽한 숲이 있. 신선한 산소를 마시고, 몸도 따듯해지고, 다리 근력까지 키울 수 있어 운동이 필요한 내게 이보다 좋은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 7,8월 두 달을 쉬었는데도 별로 힘들지 않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쾌거다. 자마자 바쁜 일상이 시작되어 외로울 틈이 없는 건 덤이고.



아침의 과일과 주말 아침의 과일 쥬스, 아이가 직접 준비하는 간식 도시락(위). 저녁의 샐러드(아래).



음식


아침의 과일과 저녁의 샐러드를 다시 시작했다. 출근하느라 바쁠 땐 과일 주스를 직접 갈아서 한 잔씩 마신다. 남편과 아이의 건강도 고려해서 어떤 식으로든 아침 과일은 꼭 챙겨 먹으려 한다. 사과, 바나나, 키위, 오렌지, 빨간 오미자. 오미자는 과일 주스 색을 핑크빛으로 물들여준다. 아이가 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아침저녁으로 삶은 계란도 꼭꼭 먹으려 한다. 나도 같이 먹고.


아이는 올해 9월 김나지움 8학년이 되었다. 만 열세 살. 키워도 키워도 열세 살이지만 그래도 변화는 있다. 올 가을부터는 학교 간식 도시락을 직접 싸겠다고 선언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본인이 먼저 파파에게 부탁해서 아마존으로 새 도시락을 주문했고, 나는 과일과 야채를 미리 사다 놓고 깨끗하게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개학한 지 1주일째 잘하고 있다. 일찍 일어나서 씻고 부엌으로 와서 야채와 과일을 먹기 좋게 잘라 도시락 통에 챙겨 넣는다. 다음 주부터는 학교가 끝나는 오후 1시 15분에 바로 귀가하지 않고 친구들과 공공 도서관에 가서 숙제를 하고 오겠단다. 점심 도시락도 직접 싼다고 해서 내심 기대 중이다. 독일의 열세 살은 부엌과 도서관에 익숙해질 나이인가 보다.


다시 독일이다. 다시 시작이다. 다시 살아야 한다. 다시 멀리 있지만 외롭지는 않다. 한국에서 넉넉하게 충전하고 왔기에. 그리운 샘과 다정한 언니들과 정다운 친구들의 애정을 넘치도록 받고 왔다. 충분하고 만족한다. 내가 만나고 온 모두에게 그리고 내 삶에도 감사한다.



새벽 출근도 아닌데 출근하는 날은 일찍 일어난다. 우리집 부엌에서 발코니를 통해 보이는 사시사철 익숙한 저 풍경이 내가 독일로 돌아왔음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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